동아일보
-
경기도 남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정치인. 김우평(金佑枰)[1898~1967]의 본관은 영광이며, 호는 종산(種山)이다. 아버지는 김한승(金漢昇)이다. 김한승은 대한제국기 전라남도 여수군[현 전라남도 여수시] 주사와 군수 서리를 지내고, 1910년대 여수지방금융조합장이 되었다. 1920년대에는 여수금융조합장을 지냈고, 1930년대 조선총독부 중추원참의가 되었다. 김우평의 형 김인평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에 거주하였던 독립운동가. 이석영(李石榮)은 백사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후손으로 명망가의 자손이었다. 하지만 이석영은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여섯 형제와 함께 독립운동 전선에 나섰다. 국망 이후 서간도로 망명하여 한인 자치 단체 경학사(耕學社)를 창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1920년대 이후...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에 묘가 있는 개항기 관료. 박영효(朴泳孝)[1861~1939]의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오창공(梧窓公)파 11세손이다. 초명은 박무량(朴無量), 자는 자순(子純), 호는 춘고(春皐), 필명은 현현거사(玄玄居士)이다. 일본 망명 때 야마자키 에이하루[山崎永春]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흥덕현감, 공조참의, 도총부도총관, 공조판서를 지낸...
-
일제 강점기 경기도 남양주에 은거한 문인. 이광수(李光洙)[1892~1950]는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이다. 1905년 일진회의 추천을 받아 일본에서 유학하였다. 1910년 귀국하여 당시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의 오산학교 교사가 되었고, 1911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를 거쳐 미국으로 가려고 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
해방 직후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일어난 신탁 통치 반대 면민 대회. 연합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기 전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전후 처리 문제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였다. 결국 연합국의 전후 처리 문제 합의는 1945년 12월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영국·소련 간의 3국 외상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3개국은 한국에 임시 민주 정부를 수립...
-
경기도 남양주시에 묘소가 있는 일제 강점기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한기악(韓基岳)[1898~1941]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명오(明五), 호는 월봉(月峰)이다. 아버지는 한정우(韓正愚)이고, 어머니는 한양 조씨(漢陽 趙氏)이다. 조선 왕조의 개국 공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한상경(韓尙敬), 광해군 때 사회 개혁안을 제시한 한백겸(韓百謙)의 후손이다. 1911년 의령 남씨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