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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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麒壽 |
영어음역 | Jeong Gisu |
이칭/별칭 | 응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응성(應聖)이고, 익혜공 정난종(鄭蘭宗)의 후예이며, 참봉 정대훈(鄭大勳)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정기수는 힘이 세고 기개가 있었으며, 1574년(선조 7)에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첨정에 이르렀다. 그는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때 그의 6촌 아우인 정지심·정지우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들과 함께 하동과 순천의 싸움에 참여하여 많은 적을 베어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뒤에 마도만호가 되었는데 바다에서 적선 7척과 맞부딪치자 계책을 써서 그 배들을 불태우고 많은 적을 죽였다.
이어 정기수는 남원이 적에게 포위되어 위급하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남원성을 향해 곧바로 달려갔다. 도중에 적을 만나 격전 끝에 적장의 머리를 칼에 꿰어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니 적병이 크게 흩어졌다. 또한 양성의 소사에서도 적병 수십 명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상훈과 추모]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선무원종공신에 녹훈(錄勳)되고 군수에 임명되었다가 다시 벽단(碧團) 첨사(僉使)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