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04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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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貞松里 |
영어음역 | Jeongs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정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정섭 |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정충리는 마을 뒤편에 모셔진 황진 장군의 사당 정충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반송리는 원래 새술막이라 했다. 이곳은 과거 전주, 곡성, 순창, 남원으로 통하는 길목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곳으로, 이들을 위한 새로 생긴 주막이 있어 새술막이라 불렀다. 그 뒤 마을 뒷산에 반송정이란 정자가 있어 마을 이름을 반송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중기에 최씨가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 남원양씨 용성군파 양주운의 후손이 뒤이어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뒷산 황진 장군을 모신 사당인 정충사를 창건한 뒤 마을 터가 빛이 나 부촌을 이룬다는 설이 나돌자 김해김씨, 밀양박씨가 차례로 이주해 오면서 오늘날의 정충리를 형성하였다.
황진 장군은 청백리 영의정 방촌 황희의 5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충천 병사로 진주성 싸움에서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때 선조가 무민공의 시호를 내렸고 그 후 진주에는 창렬사를, 남원에는 정충사를 세워 제향하였다.
정충리는 원래 남원군 주포면 충촌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반송리, 정충리와 대곡면 노산리 각 일부가 병합되어 정충과 반송에서 이름을 딴 정송리에 편입되었다.
반송리는 조선 중기인 17세기 무렵에 이웃의 주포면 영촌리에서 흥성장씨가 이거하여 최초로 정착하였고, 그 후 밀양박씨, 김씨, 이씨, 신씨, 안씨, 양씨, 권씨, 강씨 등이 정착하였다.
조선 중기부터 원동이 형성된 이곳이 중심 마을이 되었고, 남쪽에 뱀재가 들어앉고, 서북 협곡에 홀아비재가, 동쪽 수덕봉에 좁은덕마을이 각각 형성되었는데 이를 합하여 반송이라고 한다.
반송리는 본래 남원군 주포면 반송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반송리, 정충리와 대곡면 노산리 각 일부가 병합되어 정충과 반송에서 이름을 딴 정송리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정충리는 평야 지대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뒤에는 수덕봉이 우뚝 솟아 있고, 앞으로는 옥율천이 흐르며, 북쪽은 남원~순창 간 국도 24호선이 지나가고, 남쪽으로 200m 떨어진 지점에 전라선 철도가 통과한다. 반송리는 중산간 지대로 국도 24호선이 동서로 지나고 있다.
[현황]
정충리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7세대 149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남자가 68명, 여자가 81명이다. 경지 면적은 27.9㏊로 밭이 9.6㏊, 논이 18.3㏊이고, 임야는 정송리 전체가 88㏊이다.
전답들이 홍수로 인하여 논농사의 침수 피해가 많아 영농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농수로를 개선하여 지금은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1970년대 들어 새마을 사업으로 이웃 상동리로 이어지는 교량과 효동리로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하였다.
마을 주변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바구니처럼 아늑하고, 가파른 경사지에 층층으로 주택이 들어서 있어 야경이 아름답다. 마을 앞에 버드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거기에 수덕정이 있었다 하며, 당시에는 왕래하는 선비들이 여름철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잠깐 이곳에서 쉬어가면서 책읽기를 즐겼던 곳이라 한다.
반송리에는 2014년 12월 31일 현재 총 79세대 16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남자가 68명, 여자가 93명이다. 경지 면적은 24.6㏊로 밭이 4.5㏊, 논이 20.1㏊이고, 임야는 정송리 전체가 88㏊이다.
반송리는 지질이 토박하고 수도작의 경우 생산량이 저조한 편인 산간 지역이다. 남원경찰서 주생면파출소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1983년 면 종합 청사 설치 계획에 따라 주생면 제천리로 신축, 이전되었다. 반송교회가 있으며, 주요 기업으로 원일기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