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촌
-
조선 후기 무주에 거주한 이유태가 사서에 관한 문답을 적은 책.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비요...
-
조선 후기 무주로 이거한 문신 이유태의 시문집.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 비요(喪禮備要)』를...
-
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 낙향한 문신이자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고, 어머니는 청풍 김씨(淸風金氏)이다. 이유태(李惟泰)[1607~1684]는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금산은 본래 전라도 지역에 속하였으나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 김집(金集)의 천거로 1...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장기(場基)’라는 지명이 나오게 된 안성 장터는 현재 하천으로 변해 버린 효자촌(孝子村) 앞 개울 건너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917년 대홍수가 일어나 안성 장터는 모두 떠내려 가는 참상을 당하였고, 장터는 하천으로 변해 쓸모 없는 땅이 되고 말았다. 이에 황무지였던 비들목 건너편 빈들[廓坪]에 면사무소[현재 주민 자치 센터...
-
조선 후기와 개항기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김해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는 옛적부터 장터가 있어 진안(鎭安), 장수(長水), 함양(咸陽) 등지의 장꾼들이 문물을 교역하던 곳이다. 본래 금산군에 속했는데 1674년 무주 도호부 승격 때 무주에 편입되어 이안면에 속했으며, 1914년 안성면 소재지가 되었다. 그 당시 장기리에는 산미촌(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터.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는 처음에는 지금의 상산(上山)인 산미촌(山味村)에서 살았는데, 이 터에 서재(書齋)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초려정(草廬亭)’이라 하였다. 초려정에서 매일 학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며 수련하였다고 한다. 이유태는 스승 김집(金集)의 천거로 1634년(인조 12)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