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근대 무주에서 활동한 학자 이용우의 시문집. 이용우(李用雨)[1875~1963]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몽필(夢弼), 호는 경산(耕山)이다. 활계(活溪) 이대유(李大㽕)의 후손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간재(良齋) 전우(田愚)와 담재(澹齋) 김진명(金振明)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평소 글 읽기를 무척 좋아했으며, 만사(晩沙)...
-
무주 문화원에서 무주의 읍지인 『적성지』를 한글로 번역한 향토 사료집. 『적성지(赤城誌)』는 무주의 산천, 풍토, 인물, 사적 등을 기록한 귀중한 향토사 자료이다. 그러나 한문으로 되어 있어, 현대인이 쉽게 알아보지 못하여 전통문화에 대해 깊이 교감할 수 없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무주 문화원에서 국역(國譯)을 통해 조상의 빛나는 문화를 오늘날에 재조명하고...
-
근대 무주에서 활동한 학자 강지형의 시문집. 강지형(姜芝馨)[1844~1909]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덕찬(德燦), 호는 우당(愚堂)이다. 통계(通溪) 강회중(姜准仲)의 후손이다. 단성(丹城)에서 출생하였으나 무주군 안성면에서 살았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행(學行)이 높았고, 관선계(觀善契)를 조직하여 매년 봄과 가을에 많은 유생...
-
근대 무주 출신 유학자 유인성의 시문집. 유인성(柳寅誠)[1867~1938]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호는 화은(華隱), 자는 길중(吉中)이다. 충경공(忠景公) 유양(柳亮)의 후손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산골에 은거하며 후진들을 가르치면서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일생을 보냈...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덕찬(德燦), 호는 우당(愚堂). 통계(通溪) 강회중(姜淮仲)의 후손이다. 강지형(姜芝馨)은 단성(丹城)[경상남도 산청군] 출신으로, 덕유산(德裕山)으로 거처를 옮긴 뒤 지금의 무주군 안성면에 머물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을 사사하고 학문을 연마하였다. 동학(東學)이 일어나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이고...
-
전라북도 무주군에 전해지는 문자로 기록해 놓은 문집 및 고문서 등 기록물. 전라북도 무주군에 전해지는 문집류는 주로 무주 출신 문인이나 무주에 세거하는 후손들에 의해 보관되어 온 기록이다. 고문서(古文書)는 특정한 주체가 어떠한 용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에게 전달한 글과 도장, 수결(手決)이 담긴 것을 총칭하는 것으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연심당(淵心堂).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계현(金啓鉉)이다. 동생은 연서 김영구(金永龜)이다. 김영규(金永圭)는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향리에 은거하면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고종(高宗) 대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후진을 양성하...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사재(思齋). 충목공(忠穆公) 김여석(金礪石)의 후손이다. 김영조(金永祚)의 정확한 생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우당(愚堂...
-
전라북도 무주군 지역에 있는 누정.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누정은 살림집과 달리,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건립한 것이 특색이다. 그래서 누정 건축은 사방이 탁 트인 구조로 되어 있거나 아니면 중앙이나 한쪽에 방이 위치하지만 주로 대청마루로 되어 있다. 누정은 궁실을 위한 원림(園林)의...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에 있는 개항기 정자. 만벽정(晩碧亭)은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덕산리 덕곡 마을에 있다. 마을 앞을 지나는 덕산로의 남쪽 변에 자리하는데, 동쪽의 덕산제에서 흘러내리는 구룡천이 흐르는 북안(北岸)에 자리한다. 1892년(고종 29)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서문(序文)을 쓰고,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이 규약(規約)...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있는 명승지. 무주 구천동 일사대 일원은 무주 구천동 33경의 제6경이자 3대 경승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문화 유적지이다. 원당천이 돛대 모양의 기암을 휘어 감고 도는 모습이 마치 물로 성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하여 수성대(水城臺)라고도 불린다. 개항기 우국지사이자 우암 송시열의 9세손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국운이...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 있는 명승지. 무주 구천동 파회·수심대 일원은 기암괴석이 절벽을 이루고 병풍처럼 세워져 마치 금강산과 같다고 하여 '소금강(小金剛)'이라고 불렸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중국의 무이 구곡(武夷九曲)을 본떠 무주 구천동에 ‘무계 구곡(武溪九曲)’이라 이름 지은 명소 가운데 하나이다. 무주 구천동...
-
조선 후기 무주 지역으로 이거한 학자.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환(而煥), 호는 관일당(貫一堂)·정관재(靜觀齋).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지사(知事) 박중엽(朴重燁)이다. 어머니는 강위경(姜渭擎)의 딸인 진주 강씨(晋州姜氏)이다. 박문건(朴文健)[1770~1805]은 경상남도 진주(晉州)에서 출생하였다. 1805년(순조 5) 지금의 전라북도...
-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박수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반남박씨(潘南朴氏)는 도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후손인 박응주(朴應珠)를 시조로 한다. 박응주는 고려 고종 때 반남현[현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호장(戶長)을 지냈다. 박응주의 6세손 박은(朴訔)[1370~1422]은 조선 태종 때 반남군(潘南君), 반성군(潘城君)과 좌의정을 거...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원당천 주변에 있는 개항기 정자.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7]이 낙향하여 머물면서 호남과 영남 지역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서벽정(棲碧亭)이 자리하고 있는 일대는 천연의 절경을 이루어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았으며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각 계곡을 ‘무계구곡(武溪九...
-
개항기 무주 지역에서 은거하다 순국한 유학자. 송병선(宋秉璿)[1836~1905]은 회덕(懷德) 출신으로 여러 차례 관직에 기용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여러 차례 정부에 시무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885년(고종 22) 무주로 낙향하여 서벽정(棲碧亭)을 짓고 은둔하면서 영남·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면서 도학을 강론하는 데 전...
-
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 뒤에 유형(柳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인성(柳寅誠)[?~?]은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여 감영(監營)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스승의 사후에는 산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마에 전념하였으며 때때로 향교인 명륜당(明倫堂) 양사재에서 후학을...
-
송대원을 시조로 하고, 송봉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우리나라 모든 송(宋)씨의 도시조(都始祖)는 당나라의 호부 상서(戶部尙書)였던 송주은(宋柱殷)으로 알려져 있다. 은진 송씨는 송천익(宋天翊)을 시조로 하였으나 송천익 이후 세계(世系)가 실전되는 바람에 고려 때 판원사(判院事)를 지내고 공을 세워 은진군(恩津君)에 봉해진 송대원(宋大原)을 시조로...
-
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몽필(夢弼), 호는 경산(耕山). 동림(東林) 이이순(李以恂)의 후손이다. 할아버지 향사(香沙) 이규탁(李圭鐸)은 학행(學行)이 있었으며, 아버지 운촌(雲村) 이종익(李鍾翊)은 효행(孝行)으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는 정극순(丁克舜)의 딸 창원 정씨(昌原丁氏)이고, 부인은 박희양(朴熙陽)의 딸 반남 박씨(潘南朴氏)이다....
-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 있는 유인성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화은 선생의 본명은 유인성(柳寅誠)으로 본관이 문화(文化), 자는 길중(吉中), 호는 화은(華隱)이다. 충경공(忠景公) 유량(柳亮)의 후손이며 유기찬(柳基燦)의 아들이다. 무주군 무주읍 당산리에서 태어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산골에 은거하면서 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