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번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두길리에서 바위에 새겨진 글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빙어약소와 설치자투소」는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두길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모두 두촌(斗村) 이만경(李晩景)[1691~1776]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서 제자들이 파 놓은 것으로, 글자에 유래한 효자 감응담이자 인물담이다.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의 나제통문(...
-
1728년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과 남인의 급진 세력이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련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일으킨 사건. 1724년 경종이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영조가 노론(老論)의 지지를 받으면서 즉위하였다. 노론의 집권으로 정권에서 소외되었던 소론(少論)과 남인(南人)의 급진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세제(世弟) 책봉의 부당성, 경종의 사인(死因) 의...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에 있는 수령 약 250~500년의 느티나무 9그루. 무주군 무풍면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 느티나무속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학명은 Zelkova serrata Makino이다. 일본, 중국, 대만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 평안남도까지 각지에 자라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수가 줄어든다. 성장이 빠르고 높이...
-
전라북도 무주군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 역사. 무주군은 비록 산간 지대이지만 선사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삶을 영위하였음이 나타난다. 구석기 유적은 발견된 바 없지만, 남대천(南大川) 수해 복구 현장에서 신석기 시대 토기가 발견된 바 있고, 설천면 기곡리 일대에서 간 돌도끼[마제 석부], 간 돌살촉[마제 석촉]이 수습되었으며, 적상면 사천리 일대에 고인...
-
조선 후기 무주 출신의 효자이자 충신.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진(君珍), 호(號)는 두촌(斗村). 형은 이만번(李晩蕃)이다. 이만경(李晩景)[1691~1776]은 1691년(숙종 17)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태어났다. 이만경은 성품이 올바르고 학문도 뛰어나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따랐다. 뿐만 아니라 청렴하여 사사로운 물욕이 없었다. 그래서 집안은 늘...
-
조선 후기 무주 출신 무인. 이만번(李晩蕃)[1680~?]의 본관은 흥양(興陽), 호는 두천(斗川)이다.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서 출생하였다. 무술 실력이 뛰어나 정희량(鄭希亮)이 살고 있는 경상남도 안의까지 그 소문이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정희량이 가끔 이만번에게 금품과 사람을 보내 가까이 지내려고 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을 일으키...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번의 충신각. 이만번(李晩蕃)[1680~1762]의 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군욱(君郁), 호는 두천(斗川)으로 찬성(贊成) 이서원(李舒原)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동조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일어나 서울로 진격하려던 정희량(鄭希亮)을 치기 위해 동생 이만경(李晩景)[1...
-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 역사.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는 고려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1414년(태종 14)에 전국을 8도제로 바꾸는 행정 구역 개편을 실시하였다. 주계(朱溪)와 무풍(茂豊)이 통합되어 무풍의 '무(茂)'와 주계의 '주(朱)'를 따서 '무주(茂朱)'라는 새로운 지명이 만들어졌...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이만경의 효자각. 이만경(李晩景)[1691~1776]의 자는 군진(君珍), 호는 두촌(斗村), 본관은 흥양(興陽)이다. 어렸을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여러 해를 지나자 병이 더욱 깊어져 옆으로 돌아누울 때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하고, 말마저 어눌하게 되어 말끝을 맺지 못하게 되었...
-
조선 후기 무주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유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호는 채포(蔡圃). 죽헌(竹軒) 최활(崔活)의 6세손이다. 최봉래(崔鳳來)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좋은 거인(巨人)이었다. “살아서 세상에 유익함이 없고, 죽어서 후세에 남김이 없으면 누가 대장부라 하랴.” 하면서 경사(經史)를 두루 탐구하고 무예를 열심히 닦았다. 1728년(영조 4)...
-
이언림을 시조로 하고, 이맹훤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흥양이씨(興陽李氏)의 시조인 이언림(李彦林)은 고려 의종 때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 등 요직을 역임한 후 흥양(興陽)[현 전라남도 고흥군]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이에 후손들이 흥양을 본관으로 하였다. 한편 7세손 이길(李吉)은 문과에 올라 봉상대부(奉常大夫) 통례문 부사(通禮門副使)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