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학자 윤증이 무주의 덕유산을 기행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글. 덕유산은 남쪽의 명산으로 오래전부터 이름나 있었던 듯하다. 1652년이면 윤증(尹拯)의 나이 24세가 된 때이다. 글 첫부분에 '내 평생 몸이 약해'라고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티끌 세상 싫어하고 오직 물과 돌밖에 몰랐다'라고 한 것처럼, 실제로 윤증은 36세에 학문이 뛰어나 내시교관(內侍敎官)...
조선 후기 무주에 거주한 이유태가 사서에 관한 문답을 적은 책. 이유태(李惟泰)[1607~1684]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할아버지는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 이대방(李大邦)이고,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서(李曙)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았으며,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을 따라 『상례비요...
조선 중기 무주에서 활동했던 유학자 박이겸의 일제 강점기 시문집. 박이겸(朴以謙)[1553~1613]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字)는 덕후(德厚), 호(號)는 각재(殼齋)·삼암(三巖)이다. 주부(主簿) 도원(桃源) 박인정(朴仁挺)의 후손으로 옥천(沃川)에서 태어나 무주에서 살았다. 타고난 성품이 순수하고 비범하였으며, 위기지학(爲己之學)에 매진하였다. 조식(曺植)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