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평리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조선시대의 수리시설.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제언(堤堰)조」에 고택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호구조사가 있었고, 『진주목읍지』도 그러한 제도에 근거 하여 작성되었는데 현재 1832년(순조 32)의 『진주목읍지』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보관되어 있고, 이를 근거로 추정할 때 적어도 1832년 이전에...
-
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후기의 축곡리와 내동리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내동리에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축곡리(杻谷里), 말동리(末洞里), 내평리(內坪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말동리와 내평리를 축곡리에 합하였다가 1832년(순조 32)에 축곡리와 내동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유곡면과 내동...
-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내동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상남도 진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문산읍], 15개 면[내동면, 정촌면, 금곡면, 진성면, 일반성면, 이반성면, 사봉면, 지수면, 대곡면, 금산면, 집현면, 미천면, 명석면, 대평면, 수곡면], 16개 행정동[천전동, 성북동, 중앙동, 상봉동, 상대 1동, 상대 2동, 하대 1동, 하대 2동, 상평동, 초장동, 평거동,...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진주군 축곡면 내평동, 연행동, 수거동과 곤양군 곤명면 조평동 일부를 통합하여 내평리라고 하였다. 내평리는 진양호의 수변지역으로 북쪽으로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 남강댐과 가화천에 접하고 있다. 북쪽은 100m 내외의 산지이나 경사가 다소 급한 편이다. 동쪽은 삼계리, 서쪽은 사천시 곤명면, 남쪽은 유수...
-
민족의 독립과 통일을 위하여 힘쓰는 애국운동. 진주사람들은 “진주에는 진주정신(晋州精神)이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김시민(金時敏) 장군과 진주지역의 주민들이 보여준 애국 및 외세저항의 진주성전투, 1862년(철종 13) 농민들이 주체가 되어 봉건사회의 모순에 대해 저항하였던 농민운동,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려는 진주동학군의 치열한 전투, 일제침략...
-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계마을에서 유래하였는데 약 200여 년 전에 태안박씨가 정착하면서 서쪽으로 덕천강, 북쪽으로 경호강, 남쪽으로 유수천이 흘러 세 강이 합친 곳이라 하여 삼계(三溪)라고 불렀다 한다. 또는 삼가래라고도 한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축곡면 산기동 일부와 마동을 합하여 삼계리(三溪里)라 하였다. 삼계리는 서쪽으로 진양호에 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