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승안(姜承顔) : 경진년에 합격했다. ○ 하경복(河敬復) : 좌찬성(左贊成)을 지냈고 시호는 양정공(襄靖公)이며 이하리(籬下里)에 살았다. ○ 정세창(鄭世昌) : 현감(縣監)을 지냈고 진성(晉城)에 살았다. ○ 하순(河恂) : 현령(縣令)을 지냈고 진성(晉城)에 살았다. ○ 하한(河漢) : 동지중추(同知中樞)를 지냈고 시호는 강장공(剛莊公)이다. ○ 강숙량(姜淑良) ○ 윤계(...
○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에 있는 정자 조선 중기의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 700명을 이끌고 공을 세운 관란(觀灡) 허국주(許國柱)가 난이 끝난 후 청담리 염창나루 가에 이 건물을 짓고 은거하였다. 『속진양지』에 의하면, 허국주는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을 닥치는 대로 쳐부수었다. 1812년(순조 12) 고장의 선비들이 임금에게...
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김해. 호는 관란(觀瀾).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우후(虞侯)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700명을 모집하여 왜적을 대파하는 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염창강 언덕에 관란정(觀瀾亭)을 짓고 술로써 여생을 보냈다. 1812년(순조 12) 고장의 선비들이 조정에 임진왜란 때 허국주의 공을 알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