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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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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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여등(汝登), 호는 습정재(習靜齋). 생원 하명(河洺)의 손자이며 하윤우(河潤宇)의 아들이다. 평소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고, 젊었을 때 문예가 이미 숙성해서 과거 급제에 필요한 글을 짓는데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향시에 3번이나 급제했으나 1721년(경종 1)~1722년에 걸쳐 일어난 신임사옥(辛壬邪獄) 등 당쟁이 극심한 것을 보고는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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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윤우가 자녀에게 재산을 분급하기 위해 작성한 금급문기. 하윤우(河潤宇)는 슬하에 3남(하응운(河應運), 하응일(河應一), 하응휴(河應休)) 2녀(첫째사위 정상길(鄭相吉), 둘째사위 강공일(姜公一))을 두었는데, 그들에게 몫에 따라 재산을 분급하기 위해 작성했다. 종이에 묵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44㎝×275㎝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을유(1645)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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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하응운(河應運)이 장자 하재악(河載岳)에게 한 유언을 적은 문서. 하응운 유언은 1월 23일 작성되었는데, 이로부터 5일이 지난 28일에 향년 71세의 나이로 하응운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하응운에게는 부실과 서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 재산에 대한 처리와 당부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또한 치상 시에는 모나 방사 등을 사용하지 말고, 마나 면, 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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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진양(晋陽). 자는 찬언(贊彦), 호는 행정(杏亭)이다. 생원 하락(河洛)의 현손이며, 하재악(河載岳)의 아들이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9세 때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조희맹(趙希孟)에게 수학하다가 19세 때 스승에게 울면서 어머니 봉양을 위해 돌아갈 것을 고하고 돌아와서는 50년 동안 하루같이 노모를 효성으로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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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찬[하진태] 남매가 부모 사후에 합의하여 재산을 나누는 화회문서. 하찬(河鑽)[1737~1800]은 하재악(河載岳)[1695~1742]의 장남이나 순서상으로는 1남5녀 중 막내였다. 분재가 이루어진 10월 28일은 하찬이 혼례를 올리고 신행을 끝낸 직후인데, 분재기 서문에 따르면, 다른 남매들은 상제례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고 셋째 사위 한용만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