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본관은 진주. 호는 벽촌(僻村). 정3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한 강재순의 4남 1녀 중 장남이다. 1882년(고종 19)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넉넉한 경제적인 여건을 배경으로 신학문을 접한 후 일찍부터 사회운동에 눈을 돌렸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진주에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29명 중 한 사람으로 대구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의 징역을 살기도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형평운동에 반대하여 일어났던 운동. 1923년 백정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형평운동은 백정에 대한 신분차별을 사회적 관습으로 여겨오던 반대 세력들과의 충돌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인해 진주에서 형평사 발기(發起) 직후 열린 축하연에 기생(妓生)도 나가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노동자·빈민까지도 형평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을...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1893년 진주에서 태어나 망경동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신영균, 어머니는 여산송씨이다. 사회운동으로 평생을 보냈으며, 1961년 68세로 사망하였다. 1911년 진주제1보통학교(현 진주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일본에 있는 중학교를 수료하였다. 1920년 전후 토지조사국에서 조선일보 진주지국장으로 옮겼으며, 이후 다양한 조직에서 사회운동을 하였다. 1...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1882년 경상남도 의령의 백정 집안에서 태어나서 백정의 신분해방운동에 평생을 보냈다. 해방 후에는 우유업에 종사하다가 1970년대 중반 사망하였다. 백정 신분 때문에 정식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독학으로 글을 익히며 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20살을 전후해 진주에 살던 일본인 지주 겐지로의 도움으로 일본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법학을 전공한 장지필은 조선...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운동노선 전환의 계기가 된 회의.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는 창립 10개월만에 12개 지사와 67개 분사가 설립되는 등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강상호·신현수·하석금 등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과 전라·충청·경기·강원도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장지필·조귀용·오성환 등이 운동노선과 주도권 장...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되었던 사회운동단체. 백정은 도살업·제혁(製革)·유세공(柳細工) 등에 종사하는 천민층으로 주로 삼남일대에 많이 거주하였다. 갑오개혁의 중요한 성과는 법제적으로 이들에 대한 신분제 해방을 가져왔다. 그런데 강고한 인습에 따른 이들에 대한 차별대우는 잔존하는 등 이러한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도수규칙(屠獸規則)」 제정 등 각종 부가세는 이들에...
경상남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을 일컫는다.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들의 신분해방이었다. 이때 백정들 가운데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자산가가 많았고, 교육을 통해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분의 불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