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
○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
○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
○ 손경인(孫景仁) : 자는 사원(士元)이요,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문과에 올라 습독(習讀)을 지냈다. ○ 강희(姜僖) : 문과에 올라 정언(正言)을 지냈으며 본관이 진양(晉陽)이다. ○ 손형(孫炯) : 습독(習讀)을 지냈고 본관이 밀양(密陽)이다. ○ 하준해(河遵海) : 찰방(察訪)을 지냈다. ○ 손경례(孫景禮) : 자는 사형(士亨)이요, 본관이 밀양(密陽)이니 직장(直長)을...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민족사학 교육재단. 3·1운동 이후 민족자각(民族自覺)의 기운이 일어날 무렵, 경상남도의 유지들은 조국의 독립이 오직 인재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민족재단을 세워 교육사업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독립과 인재양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9년 11월 진주군 지수면의 부농 허준(許駿)이 5백석짜리(당시 7만원 상당)...
-
박재호가 작곡한 경상남도 진주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 노래 「진주라 천리길」은 1941년에 만들어진 곡으로, “천리길 진주 잘 오셨습니다.”라는 진주를 찾는 이들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인사말이 진주라 천리길에서 착안 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진주라 천리길은 진주시민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던 ‘진주의 노래’ 중의 하나로 조명암이 작사하고 이면상이 작곡하였으며, 이규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