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소재의 가요로 살펴보는 진주의 역사. 진주는 도심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南江)이 빚은 천혜의 풍광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멋과 풍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교방문화(敎坊文化)가 꽃 피웠던 곳으로 예로부터“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다. 그 전통은 자연 현대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를 만드는 등 한...
조선 말기의 기녀. 기녀 산홍은 진주 교방 소속의 기녀이다.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사람인 이지용(李址鎔)이 1906년(광무 10)에 진주에 왔다. 진주에 온 이지용이 산홍을 보고 마음을 빼앗겨 천금을 내놓고 첩이 되어달라고 했다. 그러자 산홍이 큰소리로 “세상사람 역적의 첩이 될 수는 없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이지용이 노하여 산홍을 때렸다고도 하고 죽였다고도 하는데 자세...
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진주지방에 전하여 내려오는 칼춤으로서 중요무형문화제 제12호(1967년 1월 16일 지정)인 진주검무는 검기무(劍器舞)라고도 하는데, 교방춤의 하나로서 우아하고 화려한 장단과 춤사위를 잘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궁중계열의 무용 중에서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춤. 검무는 서기 660년경 신라시대에 발생된 춤으로, 고려 말까지 가면을 쓰고 연출되었는데,...
절개와 풍류를 지닌 진주 기생들의 생활 모습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상. 진주의 논개(論介), 평양의 계월향(桂月香)으로 인해 ‘남 진주, 북 평양’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진주의 풍류와 멋은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