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이씨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관마리 관마마을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 진도군 지산면 관마마을에서 오류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600m 정도 가다보면 길 우측으로 작은 소로가 있다. 이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길 좌측으로 관마 고분군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은 관마마을의 배후산인 큰부엉산[188m]의 남동쪽 사면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현재 광산이씨 세장산(光山李氏 世葬山)으로...
-
조선 중기 이후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의 후예로, 송악(松嶽)에서 태봉국(泰封國)을 세웠던 궁예(弓裔)의 6세손 이종금(李宗金)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이종금은 1010년(고려 현종 원년) 거란의 40만 대군이 침략하였을 때 강감찬(姜邯贊)의 휘하로 들어가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1018년(현종 9) 3차로 재침해 온 거란의...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삼당리에 속하는 행정리. 1624년 곽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쪽에는 삼당산(三堂山)[272m]의 줄기가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어 100~200m 내외 산지를 이루고 있다. 비교적 농경지가 적은 편이며, 마을 앞에는 석교천의 지류가 있다. 면의 중앙 동부에 있으며, 동쪽은 석교천을 건너 임회면 고성리, 서쪽은 인지리, 남쪽은 부용산...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의 지명은 민둥재라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마을의 입향조는 광산이씨로 1400년 경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진도군 지산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리와 독치리를 병합하여 인지리가 되었다. 서쪽에 부흥산(富興山)[171m] 등 높은 산은 없으나 대부분이 낮은 산으로 되어 있다. 인천제(仁川堤...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뱀재 밑이 되며, 산의 모양과 산세가 뱀을 닮았다 하여 배암골, 뱀재, 뱀골, 사령, 사동(巳洞)이라 하였다. 1700년 초 김해김씨 김인석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이전에도 구씨·안씨·강씨 등이 살았다고 하나 자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폐동리를 병합하...
-
전라남도 진도를 본관으로 하거나 진도에 세거해 온 성씨. 조선 초기에 편찬된『세종실록 지리지(世宗實錄 地理志)』 ‘진도군조’는 진도 토박이 성씨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세종실록 지리지』 ‘진도군조’에는 조선 개국 후 없어진 고을 이름과 토성(土姓)이 나오는데, 이 토성들이 고려 때 진도 토박이 성씨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타난 진도 성씨는 임씨(...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삼당리에 속한 행정리. 마을이 삼당산 밑에 자리하고 있어 삼당 또는 삼댕이라 하였다. 외삼당리는 1784년 이씨가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내삼당, 외삼당, 마상동을 병합하여 삼당리라고 하였다. 해남에서 진도대교를 건너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읍을 지나 801번 지방도를 가다 지산면 소재지에 도달하기 전에...
-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에 속하는 행정리. 1800년 경 광산이씨 이종달과 진주강씨 강극세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 진도군 임일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호구리·도장리와 함께 용호리로 병합하여 임회면에 편입되었다. 여귀산[458.7m]에서 분기한 산릉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입지한다. 산록 완경사면은 밭으로 개간되었다. 용산제(龍山堤)는...
-
진도 출신의 금융인 . 광산이씨 23세손이다. 이차문(李次文)의 둘째아들로 1910년 진도읍 교동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이 원주이씨이며 아들은 이만성(李萬城) 등 3명이 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다. 산업은행부총재, 한국투자금융사장 등을 지냈다. 재경진도군 향우회 제6대 회장,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제15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
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광산이씨 11세손이다. 기축옥사로 삼족이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이다. 아버지 이길도 이때 죽었다. 아들은 이준기(李俊基)이다. 기축옥사로 온 집안에 참화가 미치자 동생 이원준과 같이 제주도로 도망가던 중 진도군 고군면 원포에 내렸다. 무안박씨들의 도움으로 의신면 거룡에 정착했다. 후손으로 독립운동가 이병영(李炳英...
-
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기축옥사는 동인과 서인의 당쟁으로 정여립(鄭汝立)[1544~1589]의 모반을 조작해 동인(東人)들을 숙청했던 사건이다. 이때 동인계의 실권 배후 인물이 광산이씨 이발(李潑)[1544~1589]이었기때문에 그의 형제와 어머니와 아들 등 삼족이 죽임을 당하는 참화를 입었다. 본관은 광산. 아버지는 이길(李洁)이다. 이길은 1589년의 기축옥사로 형인 이발(...
-
조선 중기의 진도 입도조. 본관은 광산. 기축옥사를 피하여 전라남도 진도에 자리잡은 광산이씨 입도조이다. 할아버지는 기축옥사로 멸문을 당한 이발(李潑)[1544~1589]의 조카인 이길(李洁)이다. 아버지는 당시 진도군 고군면 원포로 피신해 정착한 이원섭(李元燮)이다. 주로 조도와 성남도(城南島)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
독치리(禿峙里)는 현재 행정구역상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독치마을의 법정리인 인지리(仁智里)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전의 인천(仁川)마을과 독치마을을 병합하면서 새로 생긴 명칭이다.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1912년)에 인지리의 명칭이 보이지 않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반영하여 작성한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
-
독치리는 1400년 광산이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70년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진도군지』, 1973) 밀양박씨[24], 김해김씨[20], 순창설씨[21], 동복오씨[16], 광산이씨[21], 경주이씨[12], 안안차씨[12], 강진김씨[9], 경주최씨[8] 등이 거주하였다....
-
「남도들노래」의 고장 인지리는 진도 남서쪽에 위치한 지산면의 면소재지이다. 과거 해남군 화원지방에 있던 목장을 지산면 지력산으로 옮기면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초기에 임회면에 부속되어 오다가 조선시대 중엽 목장면이라 칭하고 관마리에 청을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산면 인지리의 절대적 위치인 경,위도 좌표는 북위 34도 25분 27초이고, 경도는 126도 10분 00초로 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