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700318 |
---|---|
한자 | 靑銅器時代 |
영어의미역 | Bronze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진천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범철 |
[정의]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석기시대를 벗어나 청동을 이용하여 도구를 제작·사용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
[개설]
청동기시대라는 명칭은 인류 선사문화의 발달을 석기-청동기-철기문화의 순서로 정리한 톰센[C. J. Thomsen, 1788~1865]의 삼시대법[Three Age System]에서 연원한다. 금속기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기술적 진보 외에도, 청동기시대가 되면 세계 몇몇 지역에서는 도시와 문명의 등장과 같은 사회적 변화도 나타난다. 고전적 의미에서 청동기시대는 청동기의 제작·사용이 시작되면서부터이지만,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무문토기의 등장 시점을 청동기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이른 시기 청동기는 생활용구라기보다는 의기(儀器)로 사용되었다. 또한 지석묘와 같은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이 축조되고, 쌀을 중심으로 한 농경이 본격화되었으며, 사회적 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시작과 종말의 연대는 남·북한이 다소 심한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기원전 15세기 무렵에는 남한 지역에서도 청동기시대가 시작되며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존속한 것으로 판단된다. 청동기시대 문화의 변화상은 조기·전기·중기·후기의 분기와 표지적인 문화 유형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사리유형[조기], 역삼동·가락동·흔암리유형[전기], 송국리유형[중기], 점토대토기문화[후기] 등은 각기를 대표하는 고고학적 문화 유형이다.
[청동기시대 유적]
진천 사양리 유적, 진천 신월리 유적, 진천 내촌리 당골 유적, 진천 장관리 유적 등에서는 집자리들이 발굴되어, 진천 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양리 유적에서는 위석식 노지가 시설된 장방형 주거지 5기와 이중구연에 단사선문을 시문한 토기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요소들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가락동 유형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한편, 진천 신월리 유적에서는 모두 9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장방형을 띠며, 내부에서는 구순각목토기를 비롯한 몇몇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입지, 내부 시설, 출토유물 등을 볼 때 청주 용암, 청원 송대리·풍정리·황탄리 등 충청 내륙 지역에 확인된 청동기시대 전기 가락동 문화의 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취락유적 외에도 그간의 조사를 통해 진천 지역에는 총 2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진천 지역 청동기시대 거석기념물 축조의 일면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