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재
-
이상설(李相卨)은 1870년 음력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아버지 이행우(李行雨)와 어머니 벽진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순오(舜五), 호는 부재(溥齋)이다. 고려 말 대학자인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23대손이다. 이상설은 1876년 6세 때 승정원동부승지 이용우(李龍雨)의 양자가 되어 서울...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위패를 모신 사당.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였다.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국도 21호선을 타고 진천교를 지나 성석사거리, 신성사거리를 거...
-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진천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870년(고종 7) 12월 7일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산직마을에서 이행우(李行雨)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전 이조참판 이용우(李龍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894년(고종 31) 이상설(李相卨)은 조선 왕조 마지막 과거인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춘방시독관에 제수되고...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을 기리는 유허비.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폐기를 상소하였고, 일제강점기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다가 1917년 3월 니콜리스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광복장[현재의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9...
-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북도 진천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 행정단위 및 명칭으로서 ‘진천현(鎭川縣)’이 제정되어 오늘날의 ‘진천(鎭川)’이라는 지칭의 기원을 이루었다. 행정직제상으로는 종6품관 수령인 현감이 설치되었으며, 진천현감은 청주진관 소속의 절제도위를 겸하였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에서 경기도 죽산을 거쳐 충주와 청주를 잇는 교통로와 경기도 소사를 거쳐 청...
-
조선 후기 및 개항기 충청북도 진천 지역에서 활동한 유교 학파의 하나. 강화학파(江華學派)는 정제두(鄭齊斗) 이후 가학(家學)으로 양명학을 전수해간 일련의 관료 유학자들이며 하곡학파(霞谷學派)라고도 한다. ‘강화학(江華學)’이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 양명학의 정립자인 하곡(霞谷) 정제두가 강화에서 가학으로 학문을 전수했던 것에 착안하여, 후대의 연구자들이 붙인 용어이다. 강화학파는...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생가. 이상설(李相卨)[1870~1917]의 자는 순오(舜五), 호는 보재(溥齋)이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정사로 파견되었으며, 전 생애를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썼다. 진천 이상설 생가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산척리 134-2번지[이상설안길 10]에 있다. 중부고속도로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