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만
-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금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금석문. 조선 후기 명신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1646~1715]은 남구만(南九萬)과 박세채(朴世采)의 학문을 이었으며, 현종·숙종 대에 고위 관료로 활동하였다. 만년에 낙향하여 금곡에 태극정(太極亭)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으며, 금곡리 옥천병자(琴谷里玉川屛字)는 그와 관련된 유적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
조선 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영의정 충경공 남재(南在)이며, 아버지는 병조의랑을 지낸 남문경(南文景)이다. 아들로 황해도관찰사를 지낸 남윤(南倫), 손자로 남흔(南忻)과 남칭(南稱)을 두었다. 남지(南智)[1400~1452]는 17세인 1425년(세종 7) 음보로 사헌부감찰이 되었으며, 그 후 경상도관찰부 경...
-
충청북도 진천군에서 생산되는 벼루. 벼룻돌은 함경북도 종성석, 평안북도 위원의 위원석, 평양 근처 대동강 변의 대동강석, 황해도 장산곶의 해주석, 충청남도 보령의 남포석, 충청북도 진천의 상산자석 등이 유명하다. 상산자석은 진천의 옛 지명인 상산에서 나는 붉은 돌이라는 뜻이다. 충청북도에서는 상산자석벼루 외에도 영춘공예특선단지의 단양자석벼루가 있는데, 특히 벼...
-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터. 소강정(小江亭) 터는 진천읍 신정리 소강정마을 백곡천 변에 있다. 마을 사람들이 유원지로 이용했던 작은 동산이 있는데 이곳에 있던 정자 터를 가리킨다. 백곡천의 옛 이름은 세금천으로, 이 세금천의 절벽 위에 약천(藥泉) 남구만(南九萬)이 정자를 세웠다고 전한다. 창건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
-
남군보를 시조로 하는 충청북도 진천군 세거성씨. 의령남씨(宜寧南氏)는 755년(경덕왕 14)에 안렴사(按廉使)로 일본에 다녀오다 풍랑을 만나 신라에 표류했던 중국 봉양부(鳳陽府) 여남(汝南) 사람 김충(金忠)이 신라에 정착하면서 비롯되었다. 경덕왕이 김충에게 남씨를 사성하고 영양현(英陽縣)을 식읍으로 내리자, 김충은 남민(南敏)으로 개명하였다. 남민의 7세손...
-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남지의 묘소 및 신도비. 남지(南智)[?~?]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지숙(智叔)이다. 세종~단종 대의 문신으로, 영의정 남재(南在)의 손자이다. 좌의정으로 있을 때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와 함께 문종으로부터 단종을 보필하라는 고명(顧命)을 받았으나 풍질로 낙향하였다가 병사하였다. 남지가 죽은...
-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초명은 석만(錫萬), 자는 여시(汝時)·여화(汝和), 호는 존와(存窩)·명곡(明谷). 증조할아버지는 최기남(崔起南)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이며, 아버지는 한성좌윤 완릉군(完陵君) 최후량(崔後亮)이다. 어머니는 안헌징(安獻徵)의 딸이다. 응교(應敎) 최후상(崔後尙)에게 입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