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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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19세기 중엽부터 조선 사회는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 지배 체제에 반대하는 민중 세력의 힘이 성숙됨과 동시에 일본과 서구 열강 세력의 침투 및 일제 강점기에 직면하였다. 진안 지역은 이 시기 동학 농민 운동 준비 단계에서의 중요한 거점이었고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한 의병의 중심지였다. 1895년(고종 32) 5월에 반포된 칙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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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진안 지방은 진안현(鎭安縣)·마령현(馬靈縣)·청거현(淸渠縣) 등 세 고을이 전주 계수관 관할 아래 전주와 진례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고려 말에 진안에 감무가 파견되어 마령을 겸하였으며, 청거현은 충선왕 때 용담현(龍潭縣)으로 개칭되어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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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의 주요 도로와 교통수단 및 관련 시설. 교통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수상 교통·항공 교통으로 나누어지고, 육상 교통은 다시 도로 교통·자동차 교통·철도 교통 등으로 나누어진다. 교통의 발달은 정치 중심지를 핵으로 하여 사방으로 확산되어 나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형과 지세의 복잡성은 교통로 발달을 저해하였고, 교통로의 미발달은 지역 간 문화적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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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용덕리를 거쳐 전라남도 해남군과 충청남도 금산군을 연결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 국가 지원 지방도 55호선은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충청남도 금산군을 이어 주는 도로이다. 해남군을 기점으로 강진군~장흥군~영암군~나주시~화순군~광주광역시~담양군~순창군~정읍시~임실군~완주군~진안군~금산군으로 이어진다. 이 노선은 진안군 지역을 두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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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금당사에 있는 고려 시대 석탑 금당사 석탑의 제작 양식이나 수법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크게 파손되었으며, 조선 시대 숙종 때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진안 로터리에서 마령 방면으로 7㎞로 가면 ‘마이산’ 이정표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5분여 정도 들어서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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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진안에서 활동한 학자. 이석용의 창의에 가담하였고, 1924년에는 현현계(賢賢契)[면암 제자 모임]에 참여하였다. 후에 현현계를 회덕계(懷德契)로 바꾸고 고종의 위판을 마이산단으로 옮겼는데 이것이 이산묘의 기초가 되었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경(重敬), 호는 우당(愚堂). 조선 개국공신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의 후손이며 김태희(金泰熙)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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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진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긍구당 김중정(金重鼎)의 10세손이다. 김영필(金永弼)[1896~1975]은 진안군 주천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김태현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2세에는 사립 화동 학교(華東學校)[현 주천 초등학교의 전신]에서 수학하였으며 졸업 후 이곳의 교사가 되어 한일합방의 통한을 달래면서 후학들에게 배일 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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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67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난진아현(難珍阿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만든 이름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의 지명이 난진아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삼국사기』에서 벽계군(壁谿郡)[지금의 장계면] 소속의 현으로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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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와 백운면 덕현리에 걸쳐 있는 산. 내동산(萊東山)은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와 외궁리·백운면 덕현리·마령면 계서리에 걸쳐 있는 887m의 산이다. 경위도 상으로 북위 35° 41′, 동경 127° 23′에 있다. 일명 백마산이라고도 한다. 금남 호남 정맥의 팔공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마령치~구름재~전라북도 임실군 성수산~대운치~구신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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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가옥.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비사랑 마을에 있는 고지집은 산간 지역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귀틀집이다. 귀틀집은 통나무나 죽각재를 가로로 포개어 벽체를 꾸민 집으로 모서리와 교차부는 서로 아래위를 따서 물리거나 부재의 틈을 진흙으로 마감하는 형식으로 남부 지방에서는 강원도 산간 지방, 지리산 주변 소백산맥 일부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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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을 통하여 농업 생산력의 증진과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협동조합. 농업 협동조합은 농업인이 모여 협동 조직을 만들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나가기 위한 농업 생산자 단체이다. 농업 협동조합에 가입한 농업인은 농업 협동조합 조직을 통해 농업 자재를 구입하고 생산 농산물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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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 전주-장수 간 길목에 위치하여 단령역(丹嶺驛)이 있었으므로 역말(驛村)이라 부르다가 단령과 사양동(斜陽洞)의 이름을 따서 단양으로 고쳤다고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하도역촌·하도사양동·하도일동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역촌의 단령역과 사양동의 이름을 따 단양리라 하고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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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 중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 고지도. 『대동여지도』 「진안·용담현」 지도는 축척을 명시한 약 1:160,000 정도의 고지도이다.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를 남북 120리 간격 22층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층을 1첩으로 만들고, 22첩의 지도를 상하로 연결하여 전국 지도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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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원동촌 마을에서 돌탑에 지내는 마을 제의. 돌탑은 주당산으로 모셔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하위 당산으로 모셔진다. 즉 마을에 산신제나 당산제를 모신 이후에 탑제를 지내게 된다. 돌탑이 주당산으로 모셔지는 경우는 정천면 월평리 하초 마을, 정천면 월평리 원월평 마을, 주천면 용덕리 미적 마을, 상전면 수동리 내송 마을, 진안읍 단양리 내사양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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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1018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마돌현(馬突縣)이라는 이름에서 ‘마’는 크다 혹은 높다는 뜻이다. 이때의 ‘마’는 ‘머리’를 뜻하여 ‘마리’·‘모리’·‘모래’라고도 하며 줄여서 ‘말’·‘몰’이 된다. ‘돌’은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는 마돌을 마진(馬珍)·마등량(馬等良)으로 불렀다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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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초등학교. 2012년 3월 1일부터 전라북도 교육청 혁신 학교로 지정되어 ‘배움이 즐거운 행복한 학교’라는 지표 아래 모든 교육 가족이 소통·열정·사랑으로 참여하여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배우는 게 즐거워서 학교에 가고 싶은 어린이, 교사들에게는 가르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여 근무하고 싶은 선생님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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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진안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북으로는 부귀면·진안읍, 동남으로는 백운면, 서남으로는 성수면과 접하고 있다. 고려 때부터 마령현이라고 불렸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안으로 읍을 옮기고 과거의 이름을 따라 마령면이라 불렀다. 진안의 상징인 마이영봉(馬耳靈峯)은 마령면 동촌리가 원줄기라고 볼 수 있다. ‘마이(馬耳)’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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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412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마령현(馬靈縣)은 마돌현(馬突縣)의 개칭된 이름이다. ‘마’는 크다 혹은 높다는 뜻이다. 이때의 ‘마’는 ‘머리’를 뜻하여 ‘마리’·‘모리’·‘모래’라고도 하며 줄여서 ‘말’·‘몰’이 된다. ‘돌’은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서는 마돌을 마진(馬珍)·마등량(馬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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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은수사에 있는 제사 유적. 마이산은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까지 소사(小祀)의 대상으로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서 서다산(西多山)이 백해군(伯海郡) 난지가현(難知可縣)에 있다고 했으며, 『고려사』에서도 진안현의 마령에 “마이산이 있는데 신라에서는 서다산이라 불렀으며 소사에 실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면 마이산의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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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 있는 돌무지 떼. 마이산 탑은 마이산에 있는 80여 기의 돌탑들로 건립에 대해서 분명하지 않다. 다만 전설만이 전해질 뿐이다. 조선 후기 임실에 살던 이갑룡(李甲龍)이라는 사람이 은수사(銀水寺)에 머물면서 솔잎 등을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돌을 쌓기 시작하여 10년 동안에 120여 개에 달하는 여러 형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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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에 있는 소방 행정 기관. 1994년 전주 소방서 진안 출장소가 개소된 이래 2004년 진안·무주·장수·장계의 119안전 센터가 무진장 소방서 관할로 편입되어 진안 지역의 소방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지역의 화재 예방 및 진화 등 소방 업무와 응급 환자 후송 및 조치를 위해 설립되었다. 1994년 3월 24일 진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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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진안 문학의 대상 범위는 진안에서 태어나 진안에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 진안에서 출생한 뒤 타지에 가서 활동한 작가, 진안을 배경으로 한 문학, 진안 지역의 문학 활동에 참여하여 진안 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들과 작품들이다. 진안 문학은 역사적으로 고려 이규보(李奎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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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행해지는 모든 문화 예술 활동. 예로부터 산세가 험준하고 길이 구불구불한 진안은 낙향한 선비들이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혀 음풍영월하기에 최고의 지역으로 손꼽는다. 진안은 타 지역에 비해 문학, 미술, 무용, 농악 등에서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 주었다. 특히 진안은 화려하며 수려하고 맛난 8경(景) 8품(品) 8미(味)로 유명하다. 8경은 마이산, 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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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지역에서 과거에 전승되었거나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지역 공동체, 또는 또래 문화를 반영한 여러 가지 놀이. 민속놀이는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 대다수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마을 단위의 집단 놀이와 소집단, 또는 또래들끼리 재미를 즐기기 위한 전래 놀이를 포함한 개념이다. 진안군은 농경지가 협소한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마을 단위로 행해지는 집단 놀이가 상대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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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속하는 법정리. 반월리는 풍수상 운중반월(雲中半月)[구름 속의 반달]이라 해서 반월리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 말 진안군 두미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외기리[산재]·송내리[솔안]·지소리[산수동]·고암리·금마곡[지매실]을 병합하여 반월리라 하여 진안면에 편입하였다. 1979년 5월 1일 진안면이 읍으로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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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에 속하는 행정 구역. 백운면은 진안군의 가장 남단에 위치한 면이다. 서부는 성수면, 서북부는 마령면, 북부는 진안읍, 동부와 남부는 전라북도 장수군, 남서부는 전라북도 임실군과 접한다. 백운면의 지명은 옛 백운동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 전한다. 백운면은 본래 마령현의 지역으로 마령현 남쪽에 있다하여 남면(南面)이라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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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에 있는 물레방아. 백운면의 물레방아는 물을 동력으로 이용하여 물레를 돌리는 전통적인 물레방아로 전라북도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지에서는 ‘도르메 방앗간’이라고 한다. 현재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의 원운교 마을은 섬진강 본류와 마치천, 미재천이 합수하여 마령 방향으로 흘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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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진안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백제의 변방이라는 단순한 인식 속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중반 용담댐 수몰 예정 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발굴 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확인됨에 따라 진안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특히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있는 와정 토성과 인근의 월계리 황산 고분 떼, 삼락리 승금 유적 등에서 백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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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한국 불교 태고종 소속의 전통 사찰.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원강정 마을 북쪽 계곡 광대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태고종 소속의 전통 사찰이다. 그러나 지금도 주민들은 북수사(北峀寺)라 부른다. 마령 쪽에서 보면 광대봉이 북쪽에 있어 예전에 북수로 불렸는데, 그 아래에 절이 있었으므로 북수사로 불려진 것이다.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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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25일~4월 중순까지 진안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진안 지역의 만세 운동은 3월 25일의 진안읍 장날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주천면·마령면·성수면 등으로 이어졌다. 만세 운동이 끝난 후에도 그 영향을 받은 지역민들 다수가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일본은 1910년에 국권을 강탈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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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남아 있는 흙이나 돌로 축조된 고대의 방어 시설. 전라북도 진안군 내 성곽은 삼국 시대의 산성과 통일 신라 시대의 평지성 등이 있으며, 축성 재료에 따라 석성과 토성 등으로 분류된다. 진안 지역에는 백제 때 난진아현(難珍阿縣)[진안읍], 물거현(勿居縣)[용담면], 마돌현(馬突縣)[마령면]이 있었던 곳으로 이들의 치소성과 더불어 교통망이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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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근원은 고대 중국의 성씨 제도의 영향을 받아 고조선 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왕족을 중심으로 다른 씨족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상징적인 호칭이 성(姓)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후 귀족들도 성을 사용하게 되다가, 전체 국민들도 성을 사용하게 되었다.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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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를 할 때 부르는 민요. 「양산도」는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논농사 민요[들노래]이다. 「양산도」를 부르는 시기는 김매기 과정 중에서 특히 아침나절에 새참과 농주로 휴식한 뒤에 부른다. 이 노래는 절도가 있으면서 매우 호방함을 느끼게 한다. 「양산도」는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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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대로 올라갈수록 진안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문헌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상고 시대와 고대 그리고 중세를 잇는 교량인 후삼국 시대 진안의 역사를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토대로 몇 가지 시사점을 갖는 차원에서 진안의 시작을 언급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진안의 역사와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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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와 고려 후기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부귀면·상전면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월량현(月浪縣)은 기록의 미비로 백제가 어떠한 목적으로 지명을 정하였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단지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오늘날의 진안군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월량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고려사(高麗史)』에서 진안현의 연혁을 상고하면서 이를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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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공자 이래 발달한 유학과 관련된 전반적인 활동. 유교(儒敎)는 공자[B.C. 551~B.C. 479]가 창시한 사상, 혹은 학문 체계를 뜻하며 유학(儒學), 유가(儒家), 유도(儒道)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절대자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절대자의 위치에 조상신을 자리하게 하면서 조상에 대한 효(孝)를 강조하였다. 효는 유교의 기본 원리라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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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에 있는 개항기의 비석. 1892년(고종 29)에 진안 현감(鎭安縣監) 유원규(柳遠奎)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세운 비석이다. 유원규(柳遠奎)는 1892년(고종 29) 4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이듬해 11월 보성 군수로 전임하였다. 유원규가 고을을 떠나자 백성들이 그를 위하여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고종실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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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안 출신 효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선일(善日), 호는 소능(小能). 동곡(桐谷) 이조(李晁)의 10대손이며 경무공(景武公) 이제(李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광범(李光範)이다. 이도문(李道文)[1861~1930]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지극하게 섬겼다. 글을 좋아하여 최흠재와 교유하면서 학문을 논하고 남의 집 비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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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연장리에 있는개항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이익응(李益應)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송덕비이다. 이익응은 1876년(고종 13) 9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79년 4월에 재임 중 사망하였다. 이익응이 재임 중이던 1877년에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애민 선정비를 세웠다. 진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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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에 있는 개항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이익응(李益應)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선정비이다. 이익응은 1876년(고종 13) 9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79년 4월에 재임 중 사망하였다. 1879년 9월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이익응 영세 불망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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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성수면 구신리에 있는 개항기의 비석. 진안 현감(鎭安縣監) 이중익(李重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현민들이 건립한 송덕비이다. 이중익은 1888년(고종 25) 4월에 진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1889년 6월에 화순 현감으로 이임하였다. 1889년 1월 선정을 기리기 위하여 고을 백성들이 영세 불망비를 세웠다. 1892년 2월과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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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진안군은 진안읍을 비롯하여 용담면·안천면·동향면·상전면·백운면·성수면·마령면·부귀면·정천면·주천면의 11개 읍면과 77개 법정리, 303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진안 지역은 동쪽으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백두 대간, 서쪽으로는 주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호남 정맥과 주화산에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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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안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재지 사족은 향촌의 지배 세력으로 수도에서 관직에 종사하다가 국가 변란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 등 특정 시기에 본향(本鄕)으로 낙향한 가문과 다른 지역으로부터 처향(妻鄕)·외향(外鄕) 등의 이유로 이주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한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과 사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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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진안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일본의 무단 통치에 전 조선인이 비폭력 평화적으로 저항하던 만세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보익(補益), 호는 운암(雲巖). 전대현(全大鉉)의 아들이다. 전영상(全永祥)[1889~1958]은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에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뒷산에서 오기열(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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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진안 지역은 조선 건국 후 진안현(鎭安縣)과 용담현(龍潭縣)의 2현으로 재편되었다. 진안 지역은 웅치 전투, 기축옥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조선 시대에 용담현은 본래 청거현(淸渠縣)으로 금산의 속현이었는데 1313년(충선왕 5) 용담현으로 개칭되면서 독립하였다.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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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이산묘 옆 암벽에 새겨진 각자.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마이산에 30일간 머물며 건국의 대의를 품었는데 「주필대」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암벽에 새긴 각자라고 한다. 주필(駐蹕)이란 임금이 거둥길에 잠시 머무르거나 묵고 간 것을 뜻하는데 조선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1380년에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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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에 있는 진안 지역을 관할하는 치안 행정 기관. 진안 경찰서는 지역 주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범죄 예방, 기타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경찰 업무에 치중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넘어 지역민들의 생활 편리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진안군의 치안 업무를 관장하기 위한 기관으로 지역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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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진안군은 전라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으로 남동쪽으로 전라북도 장수군, 북동쪽으로 전라북도 무주군, 서쪽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남서쪽으로 전라북도 임실군, 북쪽으로 충청남도 금산군과 각각 접하고 있다. 수리적(數理的) 위치는 동경 126°16′[동향면 학선리]~127°38′[성수면 중길리], 북위 35°31′[백운면 신암리]~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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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진안현(鎭安縣)의 정확한 지명 유래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아 있는 기록을 토대로 보면, 현재의 진안군의 일부를 이루는 지역의 백제 시대 지명이 난진아현(難珍阿縣) 또는 월량현(月良縣)이었고, 이 지역을 신라가 장악한 후 767년(경덕왕 16)에 진안현(鎭安縣)으로 개정하면서 벽계군(壁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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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을 상징하는 군화. 철쭉은 ‘사랑의 즐거움’ 및 ‘줄기찬 번영’을 의미한다. 줄기찬 번영을 기원하며 1914년 무렵 군화(郡花)로 선정되어 지금까지 진안을 상징하고 있다. 철쭉은 연분홍색 꽃이 잎과 함께 핀다. 둥그스름한 달걀 모양으로 길이 5~10㎝ 정도의 잎이 가지에 어긋나게 달리며 가지 끝에는 4~5장씩 모여서 달린다. 5월 무렵 가지 끝에 연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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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토성(土姓)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성씨에 대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진안에 토성(土姓)으로 이(李)·전(全)·백(白)·한(韓)·유(庾)의 5개 성씨를 기록하고 있으며, 진안의 속현이었던 마령(馬靈)에는 한(韓)·송(宋)·장(張)·가(價)[어떤 본에는 가(賈)로 되었다.]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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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와 부귀면 신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과거 마령 지역과 백운 지역에서 전주 지역을 갈 때 판치재를 이용하였다. 장승 삼거리에서 길에 합류해 곰치재나 적내재를 넘어 전주 지역으로 향했다. 판치재 앞뒤로 있는 판치 마을을 구분하기 위해 내판치 마을과 외판치 마을로 부른다. 덕천리에 있는 널재[판치] 마을에서 생성되었다. 널재는 뒷산이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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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평지 토성. 평지리 토성은 진안군 마령면 소재지의 동쪽 송내 마을에 있는 평지 토성으로 송내 토성(松內土城)으로도 불린다. 토성은 주변의 비고 차가 13m 정도로 낮은 동산에 있으며, 평면 형태는 동벽이 짧고 서벽은 길며, 남벽과 북벽의 길이가 비슷한 방형이다. 성벽은 외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안쪽은 완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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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석성. 합미산성은 마이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 능선을 따라 축성된 포곡식의 석성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이며, 둘레는 611m이다. 성벽은 지대가 낮은 서쪽은 편축, 나머지 쪽은 협축하였으며 높이는 약 4~5m이다. 합미산성은 동서, 남북의 사통 팔달한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동국여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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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편찬한 『해동지도』에 수록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고지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8세기 조선의 각 도·군·현을 그린 지도이다. 경기도, 해서 전도 및 관서 전도, 관동 전도 및 북관 전도, 서북 피아 양계 전도, 영남 전도, 호서 전도, 호남 전도, 대동 총도가 차례로 1책으로 묶여 있다. 전라도 지도책에는 전라도 전도, 주기, 각 군현 지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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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 이후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진안군은 전라북도의 동부 산악 지역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지주들의 수탈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고 이해되었다. 그러나 비록 거대 지주들은 아니지만 상당수의 중소 지주들이 진안군의 토지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1943년에 조선 총독부는 진안군에 4개의 저수지[반월제·포강제·월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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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호족이란 주로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의 사회 변동기에, 변동을 주도한 계층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진안 지역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당시 진안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진안 지역의 호족 세력을 고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