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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701478
한자 龍潭支石墓群
영어음역 Yongdam Jiseongmyogun
영어의미역 Dolmens in Yongdam
이칭/별칭 용담 고인돌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
시대 선사/청동기,선사/철기
집필자 고재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1년 8월 26일연표보기 - 용담지석묘1호~4호 제주시 기념물 제2-1호~제2-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용담지석묘1호~4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고분
양식 고인돌
건립시기/연도 청동기시대 또는 초기철기시대
소재지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2동 581|용담2동 588-6|용담2동 2002|용담2동 2002|용담2동 2704-1|용담2동 2623-1지도보기
소유자 건설교통부|제주시|개인
문화재 지정번호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또는 초기 철기 시대의 고인돌.

[개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거대한 바위가 지상에 드러나 있고 그 밑에 고임돌·묘역 시설·무덤방 등이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고 있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것도 있다.

[형태]

용담 고인돌 6기가 1971년 8월 26일 제주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이 중 용담지석묘5호, 6호는 2012년 5월 17일 지정해제되었다. 용담지석묘1호~4호는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1) 용담지석묘1호

제주시 용담2동 581번지에 위치해 있다.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북서쪽 구내에 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270㎝, 폭 207㎝, 두께 50~105㎝이며, 장축은 북동방향이다. 남서쪽이 낮은 경사면에 축조되었다. 남서쪽으로 상석의 하부가 노출되고 그 좌우에 판석상 지석을 고여 용담동 발굴 고인돌과 같은 형식임을 보여 주고 있다. 노출된 남서쪽 좌우의 지석 2매는 각각 65×60×10㎝, 50×63×12㎝의 크기를 갖고 있다.

(2) 용담지석묘2호

제주시 용담2동 588-6번지에 위치해 있다. 주택가의 텃밭에 자리하고 있으며, 상석의 규모는 길이 155㎝, 폭 124㎝, 두께 45㎝이다. 상석의 상면은 자연면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하면은 다듬어져 있다. 지석은 3매로 판석이며, 서·남·북편에 고여져 있다. 남·북편의 지석은 길이 150㎝, 폭 90㎝로 완전하게 고여 있고, 서편 지석은 길이 100㎝, 폭 80㎝, 두께 25㎝로 상석에서 이탈하여 누워 있다. 북방식 고인돌과 유사하나 지상 위석형 고인돌로 판단된다.

(3) 용담지석묘3호

제주시 용담2동 2002번지[공항로 2]에 위치해 있다. 제주공항 이전 고인돌로 속칭 먹돌생이에 있었던 것을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275㎝, 폭 212㎝, 두께 55~75㎝이며, 괴석상 지석이 네 군데 고여 있다.

(4) 용담지석묘4호

제주시 용담2동 2002번지[공항로 2]에 위치해 있다. 제주공항 이전 고인돌로 속칭 먹돌생이에 있었던 것을 이전하여 복원한 것이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285㎝, 폭 205㎝, 두께 35㎝이며, 할석상 지석이 네 군데 고여 있다. 상석 윗면에 성혈이 1개 확인되었다.

(5) 용담지석묘5호

제주시 용담2동 2704-1번지에 위치해 있다. 현재 주택가 골목길 귀퉁이에 있다. 상석의 규모는 길이 320㎝, 폭 255㎝, 두께 40~70㎝이며, 장축은 정남북방향이다. 상석이 들린 북쪽에 길이 49~70㎝, 폭 37~40㎝, 두께 10~12㎝의 괴석상 지석을 3매 고이고, 남쪽에는 길이 35~40㎝, 폭 25~35㎝의 괴석상 지석을 3매 고였다. 상석 윗면에 7개의 성혈이 보인다.

(6) 용담지석묘6호

제주시 용담2동 2623-1번지[서천길 8]에 위치해 있다. 1959년 조사할 때 오라리 5호 고인돌로 소개된 것으로 상석의 규모는 길이 315㎝, 폭 217㎝, 두께 105㎝이며, 장축은 정남북방향이다. 지석은 높이 68~90㎝, 폭 39~74㎝의 잘 다듬어진 판석 11매로 상석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병풍처럼 고여 있다. 매장부는 1959년 조사시 길이 160㎝, 폭 100㎝의 장방형 테두리를 괴석으로 돌리고, 바닥면에 자갈돌을 깐 시설이 지석으로 이루어진 석실 한 가운데에서 확인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의의와 평가]

용담 고인돌군이 위치한 한천변은 고인돌뿐만 아니라 주거지·무덤·제사 유적·유물 산포지 등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이것은 이 일대가 선사 시대부터 대규모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음을 반증해 준다. 이곳의 고인돌은 제주도 내 다른 고인돌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편이다. 형식상 개석식과 기반식 고인돌을 비롯하여 제주도 특유의 지상 위석식 고인돌이 확인된다.

[문화재 국문안내문]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용담동 지석묘는 모두 6기가 있는데 각 지석묘에 관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제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운동장 남쪽에 있는데, 고인돌의 남서쪽을 제외한 주위가 흙과 잡석으로 묻혀 있다. 형태는 바둑판식이나 덮개돌 밑에 여러 매의 넓고 납작한 돌을 둘러 돌방을 만들어서 개석식으로 재분류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7m, 너비 2.07m이며 남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받침돌은 5매가 있으나 북동·남동부분에 받침돌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아 원래 모두 7매였을 것으로 보인다. 덮개돌의 남서쪽은 받침돌 없이 막음돌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받침돌의 크기는 북쪽 것은 길이 1.5m이상 되고 남쪽 것은 0.6m 이상 된다.

이곳에서는 돌도끼와 사람뼈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연대는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철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2) 여러 개의 판석이 덮개돌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받치고 있어 언뜻 보면 탁자식으로 보이나, 판석을 무덤의 벽으로 삼아 매장부를 지상에 마련한 형태의 제주도식 고인돌이다. 현재는 동쪽의 판석이 없어졌다.

판석 위의 덮개돌은 윗면의 굴곡이 매우 심하나 아랫면은 잘 다듬어져 있으며, 크기는 길이 1.55m, 너비 1.24m이다.

이 고인돌은 조사 전에 도굴되어 발견 당시에는 작은 홈돌 1점만이 확인되었으며, 만들어진 시기는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철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3) 원래 제주시 용담동 755번지에 있었는데 공항부지 확장공사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형태는 바둑판식이나 덮개돌 밑에 여러 매의 넓고 납작한 돌을 병풍모양으로 둘러 돌방을 만들어서 개석식으로 재분류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75m, 너비 2.12m이며, 받침돌은 4매이다. 덮개돌은 옆면과 뒷면이 다듬어져 있고, 귀퉁이에서 홈줄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만들어진 시기는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철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4) 원래 제주시 용담동 751번지에 있었는데 공항부지 확장공사 때 공항 앞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형태는 바둑판식이나 덮개돌 밑에 여러 매의 넓고 납작한 돌을 병풍 모양으로 둘러 돌방을 만들어서 개석식으로 재분류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85m 너비 2.05m이며, 넓고 납작한 4매의 받침돌이 있다. 덮개돌은 윗면과 주변을 다듬은 흔적이 뚜렷하고, 덮개돌 윗면에 원형 또는 타원형의 작은 알구멍〈성혈(性穴):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식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구멍〉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청동기시대 후기 또는 철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5) 제주시 용담동 서문파출소 뒤쪽 50m 지점에 있으며, 형태는 바둑판식이나 덮개돌 밑에 여러 매의 넓고 납작한 돌을 병풍모양으로 둘러 돌방을 만들어서 개석식으로 재분류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2m, 너비 2.55m이며, 덮개돌 윗면에 원형과 타원형의 작은 알구멍〈성혈(性穴):풍년을 기원하거나 자식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든 구멍〉이 7개 있다.

받침돌은 모두 6매가 있는데, 북쪽에는 길이 0.49~0.7m, 너비 0.37~0.4m의 넓고 납작한 돌 3매가 있고, 남쪽에는 길이 0.35~0.4m, 너비 0.25~0.35m의 자연석 3매가 있다. 북쪽 받침돌 모두가 남쪽 부분의 받침돌보다 높아 북쪽으로 들려 있으며, 들린 부분의 받침돌은 원래부터 막음돌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6)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이 고인돌은 바둑판식으로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덮개돌의 길이는 3.15m, 너비는 2.17m이며, 잘 다듬은 판석 11매를 덮개돌의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받침돌로 받쳤다.

무덤방은 지상에 마련되어 있는데 길이 1.6m, 너비 1m로 땅을 파고 바닥에 자갈을 얇게 깔았으며 테두리는 깬돌을 이용하여 돌상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용담지석묘6호는 외형은 바둑판식인데, 지상에 무덤방을 마련한 것으로 보아 제주도 고인돌 중 특수형에 속한다. 또한 적갈색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만들어진 시기는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철기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문화재 영문안내문]

준비중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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