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700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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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夢煃待士碑 |
영어음역 | Kim Monggyu Daesabi |
영어의미역 | Memorial Stone for Kim Monggy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29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홍순만 |
성격 | 대사비(待士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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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759년 |
관련인물 | 김몽규(金夢楏) |
높이 | 88㎝ |
너비 | 38㎝[위]|33㎝[아래] |
소재지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298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제주목사 김몽규를 기리는 비.
[개설]
김몽규 제주목사 겸 방어사는 1752년(영조 28) 12월에 제주도에 부임하고 1754년(영조 30) 10월에 파면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삼읍성문(三邑城門) 바깥에 옹중석(翁仲石) 일명 우형석(偶形石)을 새로 세웠으며, 운주당(運籌堂), 관덕정(觀德亭), 읍진창(邑賑倉), 동진창(東賑倉) 등을 중수하였다.
또한 군기(軍器), 궁시(弓矢), 조총(鳥銃), 쟁고(錚鼓) 등을 보수하고, 나팔(囉叭) 28쌍(雙)과 북수구철시(北水口鐵矢)를 새로 만들었으며, 남문 밖으로 향교를 이전하는 일에 힘썼다.
[건립경위]
김몽규는 당시 여악천(嘉樂泉) 동쪽 냇가에 있던 향교를 남문 밖 광양으로 옮길 계획을 세워 이를 추진하였으나 갑자기 파직되는 바람에 일을 끝맺지 못하고 떠났다. 제주향교에 있는 비는 1754년 그의 공로를 기념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웠다. 1760년(영조 36) 4월 진해현감을 지낸 고처량(高處亮)이 글을 짓고 장의(掌議)로 있던 변성운(邊聖運)이 글을 썼다.
[형태]
비석의 크기는 비신(碑身)이 높이가 88㎝, 너비는 위가 38㎝, 아래가 33㎝, 두께는 위, 아래 모두 10.5㎝이다. 대석(臺石)은 높이 21㎝, 앞 너비 67㎝, 옆 너비 30㎝이다.
[금석문]
비의 앞쪽 가운데에는 “牧使金公夢煃尊聖去思碑(목사김공몽규존성거사비)”, 앞쪽 좌우로는 “향교를 옮겨 세우니 선비들의 바램이 이루어져 기뻐하였네 유림에서 덕을 우러르니 세상이 다하도록 김공을 잊기 어려워라(移建鄕校 快遂士願 儒林仰德 沒世難煃)”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 면에는 “전에는 가락천 위에 있었는데 1885년에 옮겨 세운다(舊在加樂泉上 光緖乙酉移竪)”고 쓰여 있고, 비의 뒤쪽에는 “1759년 4월에 훈장 전현감 고처량이 짓고 장의 변성운이 글씨를 썼다(乾隆 二十四年 四月 日 訓長前縣監高處亮撰 掌議邊聖運書)”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