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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642
한자 齊非郞山城
영어음역 Jebirangsanseong
영어의미역 Jebirang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제비랑산성(齊飛郞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 산32
집필자 백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 산32 지도보기
성격 성곽
양식 석성
크기(높이, 길이, 둘레) 1㎞[둘레]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에 있는 석축 산성.

[개설]

제비랑산성은 해발 502.2m의 형제봉과 그 서쪽 작은 능선의 봉우리를 돌아 북향한 계곡 상단을 에워싸서 축조한 마안형(馬鞍形)의 산성으로 둘레는 1㎞ 가량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제비랑고성(齊非郞古城)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상고(上古)에 성묵산(城墨山)[제비랑산]에 제비왕(齊飛王)이 성을 쌓고 난리를 피하였다고 하며, 아직 성터가 남아 있다”고 하였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천험을 이용하여 일부 석축의 붕괴된 흔적이라 생각되는 돌이 있다”고 하였다. 제비랑산성은 산의 정상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가파른 경사면을 이용하여 축조하였는데 현재는 성벽의 흔적만 남아 있다.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가 개략적인 지표 조사를 하였다.

[건립 경위]

제비랑산성의 축조와 관련하여 『조선환여승람』의 기록을 따르면, 제비왕이 난리를 피하기 위해 축성하였다고 전한다. 전설의 제비랑은 제(齊)나라의 비왕(飛王), 혹은 비랑(飛郞), 비왕(非王), 비왕(裨王)으로도 전해지며, 혹은 단순하게 제비왕, 또는 제비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의 위치와 석축 산성임을 고려하면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제나라, 또는 남북조 시대의 제나라나 연(燕)나라와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보다 정확한 건립 시기를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위치]

제비랑산성이 위치한 곳은 충북선 철도와 국도 38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달리는 남쪽의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이곳은 남북으로 원주에서 남쪽으로 물길을 따라 내려와 제천을 거치지 않고 솔치나 모래재를 거쳐 청풍에 이르는 옛 교통로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에 해당한다. 또한 제비랑산성은 제천 서쪽의 장평들과 주포들로 이어지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동쪽으로 4㎞ 떨어진 제천분지의 중심에 위치한 성산성과 함께 제천분지를 감시하기에 좋은 위치이다. 멀리로는 북쪽의 감암산성이 12㎞ 가량 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금수산 줄기의 작성산성이 바라다 보인다.

[형태]

제비랑산성은 부정확한 사각형 모양으로, 북동쪽의 제비랑마을 방향에 계곡부를 형성한 윗부분을 성벽으로 돌린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이른바 마안형(馬鞍形)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나 계곡의 일부가 포함되었다. 즉 해발 502.2m의 형제봉 봉우리와 해발 457m의 안부 및 해발 463.7m의 봉우리에서 북쪽을 향한 능선을 따라 성벽을 축조하였다.

[현황]

제비랑산성의 내부에는 계곡부에 형성된 문지 1개소와 주변 조망이 양호한 평탄지에 조성된 추정 망대지 4개소가 있는데, 주로 북벽에서 서벽을 거쳐 남동벽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위치한다. 성벽은 대부분 천연의 지형을 이용하여 암반을 조정하거나 삭토하여 방어벽으로 구성하였고, 북쪽 계곡의 문터와 주변은 석축으로 성벽을 축조하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성벽의 둘레는 문지 주변 110m, 동북 구간 120m, 동벽 170m, 남벽 75m, 남서벽 185m, 서벽 200m, 서북벽 100m, 그리고 동북쪽 및 북쪽과, 차단벽 등을 포함한 구간 300m 정도로, 전체 둘레는 1㎞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계곡부의 석축은 대부분 붕괴되어 흔적만 남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제비랑산성충북선 철도와 제천~충주 간 국도 등 제천의 서쪽 지역에서 갈라지는 모든 교통로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평천 일대의 조망이 매우 좋아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발굴 조사 등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내에서 유물이 확인되지 않고 있어 정확한 축조 시기나 방법 등을 알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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