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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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김준걸(金俊傑)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여생(金麗生)이며, 할아버지는 김명립(金明立)이다. 아버지는 청천재(淸川齋) 김상침(金尙琛)이며, 어머니는 윤효일(尹孝一)의 딸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다. 정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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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인선(仁善), 호는 농산(聾山).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태권(金泰權)은 1880년(고종 17)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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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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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은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하고 굳세며 반듯하고 정직하였으며, 지기(志氣)가 총명하고 민첩하며 용기가 있었다. 학문을 익힐 적에는 선생이 감독하지 않아도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였고,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여 대의(大義)를 분별할 수 있어 약관의 나이에 문무(文武)를 겸비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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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문인 최기필의 문집. 최기필(崔琦弼)[1562~1593]의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순절하였으며, 조정에서 병조참의직을 추증하였다. 그의 사적(史蹟)은 국승(國乘)과 야사(野史)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를 제향하는 진주 창렬사(彰烈司)는 사액되었다. 최기필의 5세손 최주국(崔柱國)이 집안에 내려오는 유적(遺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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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지역은 남해와 섬진강을 끼고 있어 해상 교통이 편리할 뿐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접경지대로 오랜 옛날부터 지리적 요충지로서 주목 받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도로와 시장이 발달하고 물산이 풍부했던 반면에 침략을 받기도 쉬운 이중적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고려 후기에는 왜구의 잦은 침략을,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겪었다. 그러나 정유(鄭愈)나 정기룡(鄭起龍) 같은 이들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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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존중을 시조로 하고 김태백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하동군의 세거 성씨. 용궁 김씨의 시조인 경숙공(景肅公) 김존중(金存中)은 고려조에 좌승선 태자소보(左丞宣太子小保)를 역임한 후 용궁군(龍宮君)에 봉해졌다. 이후 후손들이 용궁(龍宮)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루었다.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1560~1593]은 1593년 진주성 싸움에서 수성장으로서 순절하여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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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하동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아버지는 최정(崔涏)이다. 최기필(崔琦弼)은 1562년(명종 17)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반듯하여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참봉이 되었으며, 사옹원봉사·진주목판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벼슬을 그만두고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초당(草堂)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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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처음의 자는 원칙(元則)이었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면서 치장(穉章)이라 했으나 처음의 자가 널리 알려져 그대로 썼다. 호는 계남(溪南), 초명은 최유민(崔有民). 전주 최씨는 최아(崔阿)를 시조로 삼는데, 그의 아들 최용생(崔龍生)이 경상도안찰사로서 원나라 사신에게 미움을 받아 사천(泗川)에 거주하면서부터 경상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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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양보면 운암리 관어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중원(金重元)의 유물. 퇴장암(退藏庵) 김중원[1680~1750]은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책록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다. 1891년(고종 28) 가선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