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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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우석(姜佑錫)은 1901년(고종 38) 3월 9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1286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 3·1 운동에 참가하여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해 9월 기독교 게통의 진주 광림학교(光林學校) 교사로 재직 중, 홍수원과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위한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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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아동 문학가. 남대우(南大祐)는 193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쥐와 고양이」가 당선되어 아동 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동보통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는 우리말과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쳤으며, 주옥같은 동시들을 발표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고운 심성을 지니도록 애쓴 문학가이자 교사였다. 남대우는 1913년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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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문영빈(文永彬)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17세손이며, 직하재(稷下齋) 문헌상(文憲尙)의 6세손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한일 합방이 선포되자 독립 기구에 참여하고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상해 임시 정부의 전신인 배달학회(倍達學會)[주석 이시영]에서 총무부장직을 맡아 당시 외교부장이던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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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광평리와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를 연결하는 다리. 섬진강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라는 점에 착안하여 섬진교로 명명되었다. 총길이 420m, 총폭 15.5m, 유효폭 10.2m, 높이 16m이며, 경간 수 10개, 최대 경간장 60m이다. 상부구조는 강상자형교이며, 하부구조는 T형교각, 설계하중 DB-24이다. 철제 박스 거어더교[Steel Box G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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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었던 신간회의 하동 지회. 신간회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된 전국적인 민족 운동 단체로서, 안재홍(安在鴻)·이상재(李尙載)·백관수(白寬洙)·신채호(申采浩)·신석우(申錫雨)·유억겸(兪億兼) 등 34인이 발기했다. 진주·하동 지역에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두 학자 하재화와 정태석 등이 발기인과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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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지역 주민에게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정기 간행물의 한 종류. 신문은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의 하나인 신문지를 매체로 하는 언론 현상으로, 신문사라는 조직체가 뉴스나 정보를 수집·처리·제작하여 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제공하면서 독자의 정신적 욕구를 만족시키고 그 대가를 받는 공공성과 기업성을 함께 지닌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다. 현재 하동 지역에서 발간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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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간행한 경상남도 하동군 출신의 아동 문학가 남대우의 유고 작품집. 『우리 동무』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공간의 아픔을 노래와 이야기로 표현한 동요 동화집이다. 남대우는 1913년 12월 16일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18살 때부터 아동 문학에 뜻을 두고 동화와 동시, 동요 등을 창작하였다. 1934년 『동아일보』 신춘 현상 문예 동화 부문에 「쥐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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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하동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몽석(鄭夢錫)은 1896년 4월 16일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508번지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계통인 진주 광림학교[현 봉래초등학교]에 입학하여 4년간 신학문을 배웠다. 1919년 2월 고종 황제의 인산에 참여하러 상경하였다가 3·1 운동을 직접 목도하고, 「독립선언문」과 격문을 지니고 진주로 귀향하였다. 이후 정몽석은 강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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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결성되었던 노동 단체의 하나인 조선노동공제회의 하동 지역 지회. 조선노동공제회는 일제 치하에서 생존권을 위협받던 노동자·농민들이 권리 신장과 함께 일제 지배에 거부하는 투쟁을 전개한 민족 운동 단체로서의 성격을 지닌 노동 단체이다. 1920년 4월 서울에서 박중화(朴重華) 등에 의해 창립되었으며 조선 노동 사회의 지식 계발, 저축의 장려, 품성의 향상, 위생 향상,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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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하동군에 있었던 청년 조직. 하동청년동맹은 풍속 교정, 덕성 함양, 문자 보급, 지식 계발, 애국 계몽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1927년 8월 20일 창설되었다. 『동아일보』 1927년 8월 24일자에 의하면 하동청년동맹이 8월 20일 발회식을 거행하였고 대표 임원들은 김익원, 김계영, 우용현, 문태규라고 밝혔다. 회원들은 대부분 하동 지역의 유지급 청년들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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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포구 80리’는 그 명칭이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하동포구 80리를 하동포구의 문학적[시적]·정서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동포구 80리라는 명칭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30년대 발표된 문학 작품의 영향이 크고, 이후 197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몇몇 대중가요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하동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