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군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192
한자 韓將軍傳說
이칭/별칭 한장군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 「한장군 전설」 『경산문화유적총람』에 수록
관련 지명 버들못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 지도보기
성격 인물 전설
주요 등장 인물 한장군|한장군의 누이|무당|구경꾼|왜병
모티프 유형 기지를 통한 적의 퇴치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에서 한장군제와 여원무의 유래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한장군 전설」은 자인 지역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한장군(韓將軍)이 기지를 발휘하여 왜병을 물리친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한장군에 대한 인물 전설이면서 한장군과 관련 있는 참왜석(斬倭石)[검흔석(劍痕石)]에 대한 사물 전설이기도 하다. 한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자인 지역에서는 단오가 되면 한장군제와 여원무(女圓舞)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채록/수집 상황]

1996년 경산대학교 경산문화연구소에서 간행한 『경산문화유적총람』을 비롯해, 2002년 간행된 『경산의 전설과 민담』, 2005년 간행된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도 같은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채록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한장군은 신라 혹은 고려 시대 사람이라고만 전해올 뿐 정확한 생존 시기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인 사람들은 그가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믿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그를 지역의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다.

한장군이 살던 당시 왜적이 도천산에 진을 치고 백성들을 괴롭히자 장군은 이를 해결할 방도를 고민하다 묘안을 마련하였다. 장군이 여자로 가장하여 그의 누이와 함께 화관을 쓰고 도천산 아래 버들못 둑에서 춤을 추었다. 화관을 쓰고 춤을 추는 광대들이 그들을 둘러서서 놀음을 벌이고 풍악을 울려 흥을 돋우었다. 버들못에는 화려하게 꾸민 배를 띄웠다. 그러자 놀음판이 벌어진 버들못 주위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고 춤과 가락은 한결 흥겨워졌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여원무이다.

장군의 계획대로 구경꾼 중에는 도천산에서 내려온 왜적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왜병은 흥겨운 여원무와 놀이판의 분위기에 취해 정신을 놓은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때를 노려 장군은 미리 준비한 칡으로 만든 그물로 왜구를 얽어 포획한 후 칼로 찔러 죽였다. 아름다운 꽃춤의 주인공이 한순간에 무서운 장군으로 바뀌었다. 무당과 구경꾼들의 손에도 비수가 번쩍였다. 그물에 휘말린 왜적의 무리들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차례로 쓰러져 갔다. 춤추던 이들도 모두 한장군이 미리 배치해 두었던 무사들이었으며, 칡으로 만든 그물도 미리 깔아 두었던 것이다. 왜적들은 몰죽음을 당하였고 못 물은 피로 물들었다.

지금도 못 둑에는 한장군의 칼 흔적을 지니고 있는 바윗돌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참왜석(斬倭石) 또는 검흔석(劍痕石)이라고 부른다. 한장군 사당자인면서부리원당리, 진량읍 마곡리, 용성면대종리송림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 중 용성면 송림리 숲에 있던 한장군 사당은 일제 강점기 말에 철거되어 지금 그 주변에는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한장군 전설」의 모티프는 ‘기지를 통한 적의 퇴치’이다. 한장군은 자신이 여자로 가장하여 놀이판을 벌이고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방심한 왜병들을 물리친다. 「한장군 전설」뿐만 아니라 자인 지역에는 한장군과 관련하여 한장군 무덤, 장군바위, 말 무덤 등 다양한 증거물과 전설이 전하고 있어 한장군이 지역민에게 숭상의 대상임을 알 수 있다. 한장군을 기념하는 한장군제와 여원무는 매년 단옷날 단오행사와 함께 성대하게 실시되고 있다. 단옷날 오전 8시가 되면 자인면 서부리 경산자인의계정숲 한장군 사당에서 대제의 막이 오르고 제전 집사에 의해 제사가 모셔진 뒤, 한장군놀이와 여원무, 팔광대 놀이, 가장행렬, 씨름, 윷놀이, 농악 놀이, 무녀굿, 노래자랑, 그네뛰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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