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산과 구룡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189
한자 九龍山-九龍井
이칭/별칭 구룡산과 구룡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9년 - 「구룡산과 구룡정」 「구룡산과 구룡동」이라는 제목으로 『경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6년 - 「구룡산과 구룡정」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 수록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02년 - 「구룡산과 구룡정」 김종국으로부터 채록
관련 지명 구룡산 -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 지도보기
채록지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덕천리 지도보기
성격 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용왕|왕비|용왕의 딸|아홉 용
모티프 유형 계모 갈등|말썽꾸러기 막내|승천 실패|부정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에서 구룡산구룡정의 유래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구룡산과 구룡정」은 경상북도 경산시·청도군·영천시에 걸쳐 있는 구룡산(九龍山)의 지명 유래 전설이다. 동해 용왕의 딸이 터전을 잡고 아홉의 자식을 둔 곳이라 하여 ‘구룡산’이라 하고 용들이 승천한 샘을 ‘구룡정’이라 한다. 구룡리 인근의 용암에 대한 전설도 이 이야기와 함께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6년 경산문화원에서 간행한 『경산문화유적총람』을 비롯해, 1989년 김한중이 엮은 『경산지』, 2002년 간행된 『경산의 전설과 민담』, 2005년 간행된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도 같은 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경산 지방의 설화문학연구』에는 2002년 용성면 덕천리 주민 김종국[남, 당시 53세]으로부터 채록했다고 한다.

[내용]

경산시 용성면 매남4리 동북쪽에 해발 400여m 고지를 이루고 있는 우뚝 솟은 산이 바로 구룡산이다. 이 산은 세 개의 행정 구역을 경계로 하고 있어 ‘청도 구룡’, ‘영천 구룡’, ‘자인 구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룡산의 이름과 관련하여 동해 용왕과 그 자손들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동해의 용왕에게는 딸이 셋 있었는데, 어느 날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용왕은 새 왕비를 맞아들였다. 새로 들어온 왕비는 처음에는 전처소생인 세 공주를 사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공주들을 학대하기 시작하더니 그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 이를 지켜보던 용왕은 용궁에서 학대받는 딸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그중 한 딸을 육지에 나가 살도록 했다. 세상으로 나온 용왕의 딸은 해동조선의 정기를 지닌 명산 금강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용왕의 동생이 이미 터를 잡고 하늘의 비를 다스리고 있어서 공주는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남쪽의 태백산 줄기를 따라 살기 좋은 남으로 계속 내려오다가 수목이 울창하고 정상이 평평한 좋은 산을 발견하고 그곳에 영주의 터전을 잡게 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구룡산이라 한다. 동해 용왕의 셋째 딸이 이곳에 터를 잡아 하늘을 다스리며 장성하여 어느덧 아홉의 자식을 두게 되었는데 이것이 곧 ‘구룡’이란 지명의 유래이다.

용왕의 딸이 낳은 자식 중 여덟 용은 모두 어미의 말을 잘 따르며 효성 또한 지극하였으나 유독 막내아들이 말썽을 부리며 어미 용의 속을 태웠다 한다. 어미는 항상 막내를 타이르고 막내가 바르게 자라기를 바랐지만 한 번 빗나가기 시작한 막내의 행실은 바로잡히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용이 지켜야 할 계율마저 저버리고 말아 어미를 몹시 난처하게 하였다. 그래도 어미 용은 계속 막내를 설득하며 바른길로 이끌려고 했으나 막내는 끝내 듣지 않았다. 어미는 하는 수 없이 동해의 부왕을 찾아 막내아들을 벌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바다의 용왕은 딸의 고생을 안타깝게 여겨 딸을 다시 용궁으로 부르고, 아홉 용은 더 높은 하늘에 올라가 생활하게 하였다. 이때 아홉 용이 승천한 샘이 바로 구룡정이다. 높고 넓은 하늘로 올라간 용들은 세상의 비와 구름을 관장하며 하늘을 다스렸는데 말썽꾸러기 막내는 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결국 용왕의 영을 거역하고 본래 살던 곳을 그리워하며 구룡산으로 치닫다 상왕의 노여움을 사 병을 얻어 그만 죽게 되었다. 막내 용이 죽은 자리가 바로 반룡산(盤龍山)이라 전해진다. 구룡산의 아홉 용이 하늘로 올라간 뒤부터 이 산 정상에 생긴 마을을 ‘구룡리’라 부르게 되었다.

구룡리 인근에 있는 용암에 대한 전설도 함께 전하고 있다. 구룡리 북서쪽 건너편의 장재라는 자연 부락 앞 냇가에는 용암이라는 큰 바위 굴이 있다. 옛날 이곳에 살고 있던 용이 막 승천을 하려는데 느닷없이 한 여인이 나타나 피 묻은 빨래를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용이 큰 바위에 머리를 박고 승천하지 못하였는데 그때 그 용이 들이받은 바위를 ‘용암’이라 부른다. 이 용암에는 용이 살았다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은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깊고 물 색깔이 짙푸르러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않으며 지금도 이 샘가를 지나면 마치 용이 나타나 금세 입에 불을 뿜으며 승천하려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구룡산과 구룡정」의 주요 모티프는 ‘계모 갈등’, ‘말썽꾸러기 막내’, ‘승천 실패’, ‘부정’이다. 동해 용왕의 딸이 구룡산으로 가게 되는 계기는 새 왕비와의 갈등 때문이다. 용왕의 딸이 낳은 아홉 용 중 막내만 말썽꾸러기인데, 막내가 문제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는 신화나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다. 막내는 대개 말썽을 부리고 기존 질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데 「구룡산과 구룡정」에서도 막내는 문제를 일으키고 상왕의 노여움을 사서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 뒤에 첨부된 용암 전설에서는 용이 승천하지 못한 이유로 여인의 피 묻은 빨래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의 이러한 행위가 부정으로 작용한다는 전승 집단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막내가 하늘 다스리기를 거부하고 본래 살던 곳을 그리워하여 구룡산으로 내려오려 했다는 것으로 보아 막내는 다른 형제들이 신적 면모를 지닌 것과 달리 인간적 면모를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룡산, 구룡정, 용암 등 모두 이름에 용이 들어가 있는 것은 용의 신성성을 믿는 용신 사상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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