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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문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708
한자 朱子文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세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557년연표보기 - 『주자문록』 편찬
간행 시기/일시 1998년 - 『주자문록』간행
소장처 전남대학교도서관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33[용봉동 300]지도보기
간행처 고봉학술원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3[광산동 599]지도보기
편자 기대승
간행자 고봉학술원
권책 4권 1책
규격 26㎝[세로]

[정의]

조선 중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성리학자인 기대승이 『주자대전』을 발췌하여 엮은 문집.

[개설]

『주자문록(朱子文錄)』은 16세기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난 성리학자 기대승이 주희(朱熹)의 『주자대전(朱子大全)』 중에서 중요한 문장을 발췌하여 본집 3권과 속집 1권으로 엮은 문집이다.

[저자]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1527년[중종 22년]에 광주 소고룡리(召古龍里) 송현동(松峴洞)[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서 부친 물재(勿齋) 기진(奇進)과 모친 진주강씨(晉州姜氏) 사이에서 5남 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인 복재(服齋) 기준(奇遵)이 그의 숙부이다. 숙부 기준이 기묘사화의 피화를 입어 세상을 떠나자, 부친 기진이 가족과 함께 광주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세거하였다. 7세 때부터 가학으로 여러 경서를 두루 읽으며 학문을 익혔고, 과거에 급제하기 전까지 성리학에 심취하여 31세 때인 1557년[명종 12년]에 『주자문록』을 완성하였다. 이후 당대 유학자들의 스승 격이었던 김인후(金麟厚)·이항(李恒)·정지운(鄭之雲)·이황(李滉) 등과 성리학에 대해 상론할 만큼 30대 때 이미 학문적으로 큰 성취를 이루었다. 1558년[명종 13년]에 32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후,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를 시작으로 다양한 요직을 두루 거쳤다. 1572년[선조 5년]에 대사간을 지내다가 병이 깊어져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였는데, 고향으로 오던 중에 전라도 태인(泰仁)에서 병이 더욱 악화되자 사돈인 김점(金坫)의 집으로 거소를 옮겼다. 선조가 병증을 듣고 어찰(御札)을 보내 위문하며 어의 오변(吳忭)을 내려 보냈으나, 어의가 오는 도중에 병을 이기지 못하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590년[선조 23년]에 ‘문헌(文憲)’의 시호를 받았으며, 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에 있는 월봉서원(月峯書院)에 배향되었다. 기대승의 학문과 사상은 그의 유고 문집인 『고봉집(高峯集)』에 전하고 있다.

[편찬/간행 경위]

1557년[명종 12년]에 기대승이 본집 3권을 편차하고, 그의 제자인 송정황(宋庭篁)이 속편 1권을 편집한 것을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가 1561년[명종 16년]에 초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군에게 도난을 당하면서 국내에 원본이 한 권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후 1976년에 13대손 기세훈(奇世勳)이 일본 내각문고(內閣文庫)에 소장된 『주자문록』을 영인하였고, 1998년 광주의 고봉학술원(高峰學術院)에서 중간(重刊)하였다.

[형태/서지]

원본이 국내에 없기 때문에 저본은 고봉학술원에서 편찬한 중간본이다. 문집은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전체 면수는 160쪽이며, 책의 크기는 세로 26㎝이다.

[구성/내용]

기대승이 편찬한 본집 상·중·하 3권은 『주자대전』에서 총 129편의 다양한 문장을 선정하여 체재를 갖추었다. 장르별로 보면 부(賦) 2편, 주차(奏箚)·봉사(封事)류 6편, 서간류 18편, 잡저류 15편, 서(序)·기(記)·발(跋)류 60편, 명(銘)·잠(箴)·찬(賛)·표(表)·축(祝)류 12편, 제문·비문류 14편, 행장·유사류 2편 등이다. 이들 문장들은 잡저류에 선정된 「원형이정설(元亨利貞說)」·「인설(仁說)」·「관심설(觀心說)」 등과 같이 대부분 주자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속편은 대체로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주차·봉사류가 많다.

[의의와 평가]

기대승이 성리학에 깊이 심취하던 시기인 31세 때 완성된 『주자문록』은 그의 철학과 사상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이다. 또한 주자의 저술에 대한 학문적 심화가 시작되던 시기에 『주자문록』이 편찬되었기 때문에 조선 전기 주자학을 고찰하는 한 방편을 제공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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