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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197
한자 光州日報
영어공식명칭 Gwangju Ilbo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3가 9-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은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간 시기/일시 1952년 2월 10일 - 『전남일보』 창간
창간 시기/일시 1960년 9월 26일 - 『전남매일신문』 창간
창간 시기/일시 1980년 12월 1일연표보기 - 『광주일보』 창간
폐간|종간 시기/일시 1980년 11월 30일 - 『전남일보』, 『전남매일신문』 종간 및 『광주일보』로 통합
속간 시기/일시 1980년 6월 2일 - 『전남일보』 발행 재개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1년 4월 - 『전남일보』 전일방송 개국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 - 『전남일보』 5.18민주화운동으로 10일간 발행 중단
제작|간행처 광주일보사 -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4[금남로3가 9-2]지도보기
성격 연속 간행물
관련 인물 이은상|김일로
발행인 김여송
총호수 제21641호[2021년 11월 25일 기준]
URL http://www.kwangju.co.kr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광주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일간지.

[개설]

1980년 창간하여 현재까지 발행되고 있는 신문으로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지역의 뉴스를 전하고 있다.

[창간 경위]

『광주일보』의 전신은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다. 각각의 신문사로서 광주 지역 언론을 이끌어 오던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은 1980년대 군부정권의 언론 탄압 조치로 합쳐져 『광주일보』라는 신문이 되었다. 즉, 군부정권의 언론 통폐합으로 『광주일보』가 탄생한 것인데, 『광주일보』는 1988년 이후 언론 관계법이 개정되기까지 광주 지역의 단일한 언론으로 주도적 위치를 가졌다.

[형태]

『광주일보』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주 5일 발행된다. 1999년 4월부터 전면 가로 쓰기를 시행하고 있으며 현재 6단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2021년 11월 기준, 총 24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투데이, 종합·해설, 지방자치, 사회, 시티 라이프, 기획, 건강·의료, 경제, 농수산, 문화, 스포츠, People·Life, 오피니언 등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전남 중부권, 동부권, 전북 등 각 지역에도 지면이 할애되어 있다.

[변천과 현황]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통합되어 『광주일보』가 창간된 만큼 변천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따라서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으로 나누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전남일보』6.25전쟁 후 민심 수습을 겨냥한 보수 언론인과 관료들에 의해 전라남도 기관지의 성격으로 출발하였다. 6.25전쟁 직후 언론계가 정돈되지 못한 틈에 『호남신문』의 시설을 임의로 접수하여 발행한 것이었다. 따라서 『호남신문』 인사들과 신문의 정통성 및 발행 시설의 소유권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반발에 밀려 1951년 11월 발행을 중단하였다. 그러나 1952년 2월 10일 『전남일보』는 새로운 진용을 갖추고 재출범하여 민간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전남일보』는 195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광주 지역을 대표했던 『호남신문』과 『광주신보』가 경영난과 조직 내부 갈등 등으로 쇠퇴하면서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다.

1960년 9월 26일 김일로(金一鷺)에 의해 『전남매일신문』이 창간되었다. 『전남매일신문』은 『호남신문』 등에 종사했던 언론인들을 다수 받아들여 지방지로서는 최초로 매일 8면 발행을 시도하였다. 또한 '지역사회 개발에 앞장서서 봉사하는 신문'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대중의 신문, 대중의 이익을 위한 신문'을 표방함으로써 기존 신문과 차별성을 부각하고자 하였다.

이후 광주 지역의 언론은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이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은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사설 및 여타 보도를 통해 5.16군사정변을 지지하였고, 1972년 유신체제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전남일보』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언론 기업으로 성장하였고, 이른바 '전일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매스컴 센터 설립을 겨냥한 '전일방송[호출부호 HLAA, 주파수 1220㎑, 출력 20㎾]'을 개국하기도 하였다. 『전남매일신문』은 1960년대부터 지속적인 재정난을 겪어 왔는데, 1971년 7월 심씨(沈氏) 가계 자본이 인수하여 본격적인 성장을 도모하게 되었다. 이후 1973년 경영 체제를 개편하면서 『전남일보』와 경쟁적 위치로 올라섰다.

1980년대 군부로부터 언론이 물리적 탄압을 받으면서 통폐합되었다. 1980년 11월 29일 『전남일보』는 지령 제9643호를 끝으로 종간하였고, 『전남매일신문』은 지령 제 5806호를 마지막으로 종간하였다. 이후 1980년 12월 1일 『광주일보』가 창간되었고, 『광주일보』 단일 신문 체제가 이어졌다. 이러한 『전남일보』와 『전남매일신문』의 통합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군부정권의 강제에 의한 것이었기에 광주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광주일보』는 1982년 3월 22일 사옥을 광산동 『전남매일신문』 사옥에서 금남로1가 『전남일보』 사옥으로 옮겼다. 이후 옛 『전남일보』의 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창간일 12월 1일을 폐지하고 『전남일보』의 법인 등기 날짜인 4월 20일을 창간일로 변경하였다.

1990년대 다신문(多新聞) 시대에 접어들면서 『광주일보』는 자율적인 언론 환경 조성 및 지역 내 신문 경쟁 체제 구성과 동시에 그동안 소홀해 왔던 지역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였다. '무등산을 살리자'라는 캠페인과 '서해안 시대'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여 자연 환경 보호와 낙후 지역 발전을 도모해 나갔다. 또한 지역 문화와 예술 진흥을 위해 '남봉문화재단'을 세워 지역 문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광주일보』에서 운영하는 주요 행사로는 호남예술제, 3.1절 전국마라톤대회, 무등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일보 리더스아카데미 등이 있고, 정기 간행물로는 월간 『예향』이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일보』는 창간 과정이 자율적이지는 않았으나 오랜 기간 동안 광주 지역의 언론지로서 지역 문제를 보도하고 지역 발전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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