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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496
한자 良洞市場
영어공식명칭 Yangdong Market
이칭/별칭 사정시장,천정공설시장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천변좌로 238[양동 5-10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성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양동시장, 광주교 아래 개장
개칭 시기/일시 1945년 9월연표보기 - 양동시장, 천정공설시장에서 양동시장으로 개칭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69년 12월 - 양동시장, 민영시장으로 운영 시작
최초 설립지 양동시장 - 전라도 광주시 양동
현 소재지 양동시장 - 광주광역시 서구 천변좌로 238[양동 5-101]지도보기
성격 상업 시설
면적 10,582㎡[대지 3만 5천평]|7,703㎡[건물 2만 5천평]|7,045㎡[매장 2만 3천평]|310개[점포 수]
전화 062-366-0884
홈페이지 광주양동시장(https://yangdongmarket.modoo.at)

[정의]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에 있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

[개설]

1910년대에 광주교 아래 백사장에서 매달 2일과 7일에 열렸던 장이 양동시장의 기원이다. 일제 강점기 때인 1940년, 신사(神社) 주변 정리사업의 일환으로 장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9년 12월 이전에는 시영시장으로 운영되다가 그 후부터 민영시장으로 바뀌었다.

[건립 경위]

1940년대 일제강점기에 광주공원의 신사(神社)가 신사 아래에 위치한 사정시장이 시끄럽고, 미관과 위생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양동시장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시장이 생겨나게 되었다. 사정시장 때부터 일해왔던 상인들이 그대로 양동시장에 정착함으로써 양동시장이 대표적인 대상권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한 예로 '손영관'은 사정시장에서부터 바늘, 실과 같은 잡화류와 면포를 팔면서 양동시장으로 옮겨왔고, 들도부장사[보부상의 방언]를 하는 장꾼에서부터 시작하여 '백마표 메리야스'라는 중견기업의 대표로 발돋움하였다.

[변천]

해방 이후, 양동시장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전 양동의 이름이었던 천정(泉町)으로 이름지어진 '천정공설시장'에서 양동시장으로 개칭하면서 우리말 이름의 시장이 되었다. 이후 상품의 거래가 더욱 활발해지면서 시장은 더욱 성장하였다. 1965년에 일어난 화재로 점포가 70동이나 전소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지만, 자력으로 바로 피해 복구를 할 정도로 규모와 저력이 있는 시장으로 변모해갔다. 수산물도매시장을 흡수하면서 1969년 12월 광주시로부터 시장 부지를 불하(拂下) 받아 시영시장이었던 양동시장은 민영시장이 되었다.

[구성]

상가는 가동, 나동, 다동, 라동의 4개 동으로 구획되어 각 동마다 취급하는 상품이 특화되어 있다. 가동과 나동에서는 공산품을 판매하고 다동에서는 수산물을 판매하고 라동에서는 채소류를 주로 판매하고 있다. 시장의 서쪽 부근은 '닭전머리'라고 불리는 축산물 거래 구역이 있다, 1972년에 시장 옆에 복개상가가 생겼고, 지금은 현대적인 시설로 모두 정비되었다. 건물은 4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산물, 수산물, 공산품, 기타 물품을 취급하는 340여 개의 점포가 있다. 양동시장은 특히 제수용품이나 혼수용품으로 유명하다.

[현황]

1990년대 이후로 양동시장은 위기를 맞이하였다. 1991년 농산물도매시장이 각화동으로 이전하면서 농산물의 도매 기능을 잃게 되었고, 1995년 국내 3대 백화점이 모두 광주에 분점을 내면서 소매 상권도 타격을 받게 되었다. 양동시장은 새롭게 변모하기 위해 자생조직인 상인회 건물을 개축하고 상품의 차별화를 시도하면서, 호남지역의 풍성한 먹을거리와 남도의 인심을 여전히 느낄 수 있는 전통시장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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