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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242
영어공식명칭 Yang Hoenam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진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50년 2월 16일연표보기 - 양회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80년 5월 21일 - 양회남 국군광주병원 앞에서 계엄군으로부터 총격
몰년 시기/일시 1980년 5월 22일연표보기 - 양회남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5월 - 광주소년원 뒷산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
거주|이주지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지도보기
활동지 옛 국군광주병원 -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대로 1028 지도보기
묘소 국립5.18민주묘지 - 광주광역시 북구 민주로 200[운정동 563]지도보기
성격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성별
대표 경력 광주 시민

[정의]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개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양회남[1950~1980]은 자택 근처 국군광주병원 앞에 쓰러져 있는 단기사병[방위병]을 발견하고 도우려 다가갔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양회남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국군광주병원 근처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화내동[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살고 있었다. 5월 21일 전라남도청 앞 계엄군 집단 발포 이후, 시민군의 거센 저항을 견디지 못한 계엄군은 국군광주병원으로 퇴각하면서 화내동을 거점 지역으로 삼았다.

5월 22일 오후 5시경 양회남국군광주병원 방향에서 총성이 울려 집 밖으로 나가보니, 국군광주병원에서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방위병이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양회남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는 방위병을 도우려고 다가갔다. 순간 총성이 다시 울렸고, 양회남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양회남국군광주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가족들이 양회남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였으나, 국군광주병원에서는 사체를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며 내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계속 국군광주병원양회남의 시신을 넘겨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총으로 위협하며 거부하였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양회남이 사망하자 계엄군은 곧바로 전투교육사령부 101사격장에 양회남을 가매장하였기 때문에 시신을 가족들에게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가족들은 양회남이 사망한 지 몇 달이 지난 뒤에야 양회남이 묻혀 있는 곳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족들은 양회남을 광주소년원[지금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임곡로 634] 뒷산에 안장하였다. 1997년 5월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묘소]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지번호는 1-81이다.

[상훈과 추모]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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