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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58
한자 崔秀香
영어공식명칭 Choe Suhyang
이칭/별칭 최현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송보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3년 1월 27일연표보기 - 최수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0일 - 최수향 광주 3.10만세운동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최수향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형 선고받음
활동 시기/일시 1928~1940년 8월 - 최수향 『동아일보』 광주지국 총무 겸 기자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84년 7월 25일연표보기 - 최수향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6년연표보기 - 최수향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최수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
학교|수학지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13[양림동 242]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정신여자고등학교 -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4길 16[잠실동 50-4]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수피아여학교 학생|『동아일보』 광주지국 총무 겸 기자

[정의]

일제강점기 광주 3.10만세운동에 참여한 전라남도 광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수향(崔秀香)[1903~1984]은 전라남도 광주군 효천면 양림리[지금의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최현숙(崔賢淑)이다. 수피아여학교[지금의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학생으로 광주 3.10만세운동 때 직접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주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최연소자로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개된 3.1운동은 1919년 3월 10일 부동교 아래 작은장터에서 일어났다. 작은장날이었던 1919년 3월 10일 부동교 일대의 넓은 벌판에는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1000여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불렀다.

최수향은 1919년 3월 10일 시위 군중에게 직접 제작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나누어 주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 중 최연소자[16세]로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 정신여학교[지금의 정신여자고등학교] 재학 중 야학을 지도하며 청소년에 대한 계몽과 독립정신의 고취에 이바지하였으며, 1928년부터 1940년 8월까지 『동아일보』 광주지국 총무 겸 기자로 임명되어 민족정신 계몽과 민족지 보급을 위해 활동하였다.

최수향은 1984년 7월 2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선홍, 『광주 1백년』1(광주문화재단, 2012)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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