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양말공장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119
한자 無等洋襪工場
이칭/별칭 무등양말 합자회사,무등양말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서구 독립로204번길 17[양동 13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재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5년연표보기 - 무등양말공장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36년 11월 23일연표보기 - 무등양말공장에서 무등양말 합자회사로 개칭
최초 설립지 무등양말공장 - 광주광역시 서구 독립로204번길 17[양동 131]
현 소재지 무등양말 합자회사 - 광주광역시 서구 독립로204번길 17[양동 131]지도보기
성격 근대기업
설립자 양태승

[정의]

1936년 광주광역시에 설립된 양말 제조업체.

[개설]

설립자인 양태승(梁泰承)[1889~1955]은 화순 능주 출신으로 융희학교(隆熙學校)와 정리사(精理舍) 고등과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고베신학교(神戸神学校)를 졸업한 인물이었다. 그는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고, 1928년부터는 대구의 계성학교에서 교감으로 활동하는 등 민족 교육에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1933년 계성학교를 떠나 광주 지역에 자리잡은 이후에는 민족자본 설립에 뜻을 두게 되었다.

[설립 목적]

양태승은 양말 보급을 통한 의복 문화 개선과 일본 자본 위주의 양말산업의 지나친 폭리를 개선하기 위해서 무등양말공장을 설립하였다.

[변천]

무등양말공장은 1935년 양태승이 주도하여 설립한 회사이다. 광주천변에 광주목장이라는 큰 규모의 목장과 유제품 가공 공장을 운영하였던 양태승은 광주 지역 민족주의 성향 인사들의 모임인 계유구락부 활동도 시작하였는데, 광주목장 운영이 실패한 이후 이들과 함께 무등양말공장을 설립하게 되었다.

1936년 11월 23일 무등양말 합자회사로 체제를 개편하고 대표 김시중(金時中)이 취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무등양말공장은 저렴한 가격과 조선인 회사라는 강점을 앞세워 짧은 시일에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당시 만주 지역까지 수출이 될 정도로 품질을 인정받았다. 이후 무등양말공장은 사업 규모를 확대하게 되어 자본금 15,000엔의 합자회사로 경영체제를 개편하고 취급 품목 역시 양말 이외에 메리야스 셔츠 등 내의류 등을 추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호남 지역은 조선 후기부터 대표적인 목화 생산 지역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풍부한 자본을 앞세워 자본금 6,000만원의 종연방적(鐘淵紡績)을 세워 이 지역의 면공업을 장악하였다. 이에 무등양말공장은 비록 종연방적 등에 비하면 소규모였지만 이 지역 면공업을 통해 민족 자본의 회사를 성장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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