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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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留宿證心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민선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660년 - 이해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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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711년 - 이해조 사망 |
배경 지역 | 증심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
성격 | 한시 |
작가 | 이해조 |
[정의]
조선 후기 문인인 이해조가 전라도 광주 지역에 있는 증심사에서 머물며 겪은 밤의 흥취를 쓴 한시.
[개설]
「유숙증심사(留宿證心寺)」를 지은 이해조(李海朝)[1660~1711]는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동(子東), 호는 명암(鳴巖)이다. 1681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벼슬을 단념하였다가 1694년 갑술환국 이후 빙고별검(氷庫別檢), 전주통판(全州通判) 등을 지냈다. 1702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조선 시대에 유능한 젊은 문신들을 뽑아 휴가를 주어 독서당에서 공부하게 하던 일]한 뒤 대제학·수원부사(水原府使) 등을 거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시문에 뛰어나 김창흡(金昌翕)에게 천재라 격찬을 받았다. 저서로 『명암집(鳴巖集)』이 있다.
「유숙증심사」는 『명암집』 권 2에 실려 있다. 「유숙증심사」 바로 앞에 「장등서석산(將登瑞石山) 모두징심사(暮投澄心寺) 정중여(鄭重汝) 선이부급상대(先已負笈相待)」가 있고, 바로 뒤에는 「서석산입석대(瑞石山立石㙜)」가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서석산에 오르기 전에 증심사에서 정진하(鄭鎭河)[1667~1710]와 만나 하루를 보낸 뒤 입석대에 간 것으로 추정된다. 시의 제목은 「유숙징심사(留宿澄心寺) 야심주성(夜深酒醒) 산월만창(山月滿窓) 청철불매(淸徹不寐) 잉성일률(仍成一律)」[증심사에서 유숙하던 중 깊은 밤에 술에 깨니 산 달이 창 가득 맑고 환하여 잠들 수 없어 이에 율시 한 수를 지었다]이다.
[구성]
「유숙증심사」는 1구에 7자씩 모두 8구로 이루어진 칠언율시이다.
[내용]
유숙증심사(留宿澄心寺)[증심사에서 유숙하다]
거연신세와초제(居然身世卧招提)[신세 편하게 절간에 누워 있으니]/ 운각향정몽리미(雲閣香亭夢裏迷)[운각이며 향정은 꿈속처럼 희미하다]/ 청경욕명고월효(淸磬欲鳴孤月曉)[외로운 새벽 달빛에 풍경 소리 맑고]/ 원인무수일견제(遠人無睡一鵑啼)[두견새 우는 소리에 나그네 잠 못 드네]/ 휴내죽장조등령(携來竹杖朝登嶺)[장죽 이끌며 아침에 산봉우리 오르니]/ 점진라의작도계(霑盡蘿衣昨度溪)[어제 계곡 건널 때 입었던 옷이 다 젖었네]/ 기척산창중환주(起拓山窓重喚酒)[일어나 산창을 열고 다시 술을 달라고 하니]/ 불등화하접리저(佛藤花下接䍦低)[불등화 아래 고개만 숙이네그려]
[의의와 평가]
「유숙증심사」는 이해조 시 세계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한시로, 이 시기 문인들의 무등산 유람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