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12
한자 所台洞所台-堂山祭
이칭/별칭 소태동 소태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70년대 - 소태동 소태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소태마을 뒷산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소태마을 앞산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느티나무]|할머니당산[소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소태동 소태마을에서 질병을 쫓고 가정의 평안, 득남, 가축과 곡식이 번성하기를 바라며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냈던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소태동 소태마을 당산제는 마을 앞산과 뒷산에 위치한 두 곳의 당산에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셨던 마을 제의이다. 해마다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왔으나, 1970년대 미신 타파 등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소태마을에는 본래 솥을 만드는 솥부리가 있어서 '솥실'이라 부르다가 이후 '소태실'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태동 소태마을 당산제는 가정의 평안과 질병 방지, 가축과 곡식의 번성을 기원하며 지내오다가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1970년대에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신당/신체의 형태]

소태마을의 당산은 두 곳으로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이 있었다. 할아버지당산은 마을 뒷산 중턱의 느티나무로 고사(枯死)하여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할머니당산은 개울 건너 마을 앞산 기슭의 소나무였다. 현재 앞산은 개발되어 대명아파트 등의 주거시설이 들어서 있고, 할머니당산은 대명아파트 앞쪽에 들어선 광주교회 마당에 있다.

[절차]

소태동 소태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 마을회의를 통해 축관, 제관, 유사, 집사 등을 각 1명씩 선출한다. 제일(祭日)인 정월 열나흗날의 일진과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맞춰서 선정하는데, 특히 유사(有司)[당산제나 모임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는 어린아이나 임산부가 없는 사람으로 선정하며, 선출된 날부터 궂은 음식과 부정한 곳을 피해야 한다. 제비(祭費)는 인구전으로 태아까지도 자진해서 냈기 때문에 비용의 어려움은 없었으며, 제기(祭器)는 매년 새로 구입하고 제 후에는 유사가 사용한다. 제물(祭物)은 떡, 술, 삼실과, 마른명태, 나물 등이며, 고춧가루와 마늘 등의 양념을 하지 않으며 맛을 보지 않는다.

제일(祭日) 아침에 당산 주변과 마을을 청소하고, 저녁 6시 무렵 농악대는 마을과 당산을 오르내리며 굿을 치다가 10시가 되면 유사의 집으로 가서 유사와 함께 제물을 챙겨 할아버지당산으로 오른다. 제의(祭儀)는 일반적인 유교식으로 '진설→강신→재배→독축→소지→헌식'의 순으로 진행한다. 할어버지당산에서의 제가 끝나면 다시 유사집으로 돌아가 할머니당산에 드릴 제물을 챙겨 당산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당산에서와 같은 절차로 제를 지내고 나면 나발을 불어 제의가 끝났음을 알린다. 이를 듣고 비로소 각 가정에서는 선영에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가 모두 마무리되면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으로 나와 농악을 치고 음식을 나누며 밤새 놀았다.

[부대 행사]

당산제 다음 날인 정월대보름날부터 각 가정을 돌며 마당밟이를 한다. 이때 각 가정에서 걷은 돈과 곡식으로 마을 자본을 마련해 왔다. 이어 2월 초하루가 되면 마을회의를 개최하여 한해를 결산하고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였다.

[현황]

소태동 소태마을 당산제는 미신 타파 등 새마을운동의 여파로 1970년대에 중단되어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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