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심사오층석탑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641
한자 證心寺五層石塔
영어공식명칭 FIve-story Stone Pagoda of Jeungsim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염승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증심사 - 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 177[운림동 56]지도보기
성격 석탑
재질 석재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증심사오백전 오른쪽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

[개설]

증심사오층석탑(證心寺五層石塔)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있는 석탑으로,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 오른쪽에 증심사 범자칠층석탑(證心寺梵字七層石塔)과 나란히 있다. 증심사오층석탑은 증심사 지장전(地藏殿) 뒤쪽으로 옮겨진 것을 다시 증심사오백전 오른쪽으로 이전한 것이다.

[형태]

증심사오층석탑은 기단(基壇) 갑석(甲石)과 옥개석(屋蓋石),의 손상이 심하고 상륜부가 완전히 사라졌다. 기단부는 단층 기단으로 지대석(地臺石)은 매몰되어 있어 살펴볼 수 없다. 면석(面石)은 4매, 갑석은 1매로 구성되었다. 면석 각 면에는 2개의 우주(隅柱)와 1개의 탱주(撑柱)가 돋을새김되었다. 갑석은 3단의 두꺼운 각호각형(角弧角形) 1층 탑신 받침이 있다. 1층 탑신 받침은 증심사삼층석탑(證心寺三層石塔)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호형(弧形) 받침은 높고 나머지 각형(角形) 받침은 낮다. 갑석은 손상이 심하여 면석 상면의 일부가 보인다.

탑신은 5층이다. 탑신과 옥개는 모두 각각 한 돌로 이루어졌다. 1~4층 탑신의 각 면에는 2개의 우주가 돋을새김되었다. 5층 탑신에는 우주가 새겨지지 않았다. 1층 탑신은 우주 옆에 보조우주가 있다. 5층 탑신의 우주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1층 탑신의 중앙에는 방형 구획을 돋을새김하였고, 그 안에 8엽의 화문(花紋)을 새겼다. 2~5층 탑신 받침은 모두 2단 각형 받침이다. 옥개 받침은 모두 3단이다. 옥개석 낙수면의 경사는 매우 완만하고, 전각의 반전은 매우 급하다. 우동(隅棟)은 뚜렷하다. 처마는 완만하게 반전한다. 물끊기 홈과 풍탁공(風鐸孔)은 없다. 옥개석 남동쪽의 손상이 심하다. 5층 탑신은 넓이는 4층 옥개석 상면보다 좁으며, 높이는 4층 탑신보다 높다. 5층 옥개석 또한 완만하게 체감되는 1~4층 옥개석에 비해 급격히 작아진다. 이를 살펴봤을 때 5층 탑신과 옥개석은 본래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증심사오층석탑은 1990년까지는 상륜부가 있었고, 옥개석의 손상이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다. 기단부도 2000년 초반에 비해 손상이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특징]

증심사오층석탑증심사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3단 각호각형 1층 탑신 받침이 있다. 1층 탑신 받침은 증심사삼층석탑에 비해 두꺼우나 세부적인 형태에서 증심사삼층석탑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호형 받침은 높고 나머지 각형 받침은 낮다. 이런 점에서 증심사오층석탑증심사삼층석탑과 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살펴볼 수 없으나, 증심사오층석탑의 기단 갑석에는 2단 각형의 부연(副椽)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인 갑석의 부연과 다른 독특한 형태라는 점에서 증심사삼층석탑과의 친연성을 살펴볼 수 있다.

증심사오층석탑의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독특한 1층 탑신이다. 1층 탑신은 변형된 화문과 보조우주가 새겨졌다. 천득염은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和順雲住寺九層石塔)과 비교하면서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의 이중 마름모형 구획 안에 4엽의 화문이 새겨진 문양이 증심사오층석탑의 문양보다 퇴화된 것으로 여겼다. 보조우주는 운주사 석탑들에서 흔히 살펴볼 수 있는 운주사 석탑의 특징이며, 화순 운주사 구층석탑 또한 탑신부에 보조우주가 새겨졌다. 운주사 석탑의 건립 시기는 대개 고려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증심사오층석탑은 1993년 해체·복원할 때 금동불 2구, 5층 철탑[높이 19㎝], 소형 철불 2구, 수정 1점, 청옥세주(靑玉細珠) 23주 등이 발견되었다. 이 중 금동불 2구[금동석가여래상, 금동보살입상]는 국보로 지정되었으나 6.25전쟁 때 잃어버려 문화재 지정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증심사오층석탑 일부는 원형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손상이 심하고 전반적으로 퇴화된 양식을 보여주지만, 증심사오층석탑만의 독특한 점과 발견된 많은 유물 등을 살펴봤을 때 증심사 중창[1094년(고려 선종 11)] 이후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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