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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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瑞山鄭氏二孝一烈之閭 |
이칭/별칭 | 운림동 정려비석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길 87[운림동 660-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희태 |
건립 시기/일시 | 1797년 - 서산정씨이효일렬지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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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복원 시기/일시 | 1937년 - 서산정씨이효일렬지려 보수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10년 - 정봉서 출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27년 - 추성전씨 출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50년 - 정덕방 출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67년 - 정봉서 사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778년 - 추성전씨 사망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819년 - 정덕방 사망 |
현 소재지 | 서산정씨이효일렬지려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길 87[운림동 660-1] |
성격 | 정려비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정봉서|추성전씨|정덕방 |
재질 | 석재 |
소유자 | 서산정씨 종중 |
관리자 | 서산정씨 종중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에 있는 정봉서· 정덕방 부자와 추성전씨의 정려비.
[개설]
서산정씨(瑞山鄭氏) 정봉서(鄭鳳瑞)와 정봉서의 아내 추성전씨(秋城田氏), 정봉서의 셋째아들 정덕방(鄭德邦)의 효행과 열행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 이다. 정봉서의 자는 현거(賢舉), 호는 만오(晚悟)이다. 정봉서는 여섯 살 때 모친상을 당해 예를 갖추었고, 부친상 때 삼년 시묘살이를 하였다. 추성전씨는 남편 정봉서의 임종 직전에 다섯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사흘 간을 연명하도록하였다. 정덕방은 모친의 임종 때에 다섯 손가락을 잘라 수혈하여 사흘 간을 더 살게 한 효자이다. 1937년에 중건하였다. 운림동 정려비석(旌閭碑石)이라고도 부른다.
[건립 경위]
1797년(정조 21) 어사(御史) 이승익(李承益)이 천거하여 명정(命旌)되어 세웠다.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광주학운초등학교 인근에 있다.
[형태]
석조로 되어 있으며 담장도 화강암제 석재로 되어 있다.
[금석문]
효자통정대부서산정공봉서지려(孝子通政大夫瑞山鄭公鳳瑞之閭), 열녀숙부인추성전씨지려(烈女淑夫人秋城田氏之閭), 효자증통훈대부사복시정정공덕방지려(孝子贈通訓大夫司僕寺正鄭公德邦之閭)라 새겼다. 곁에 있는 비석은 정부인하동정씨선덕비(貞夫人河東鄭氏善德碑), 가선대부서산정공만재정부인하동정씨쌍효실적비(嘉善大夫瑞山鄭公萬在貞夫人河東鄭氏雙孝實蹟碑)이다.
[현황]
석조로 된 보호각 안에 3기가 있고, 곁에 2기의 비석이 있다.
[의의와 평가]
명정을 받은 부자 효자와 열녀의 정려로, 조선시대 효열 표창 제도사를 알 수 있고 후대의 추숭활동도 알 수 있어 향토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