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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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芝橋 |
영어공식명칭 | Wonjigyo Brid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도로와 교량 |
지역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소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현명 |
준공 시기/일시 | 1954년 - 원지교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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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설|폐설 시기/일시 | 1979년 - 원지교 증설 |
증설|폐설 시기/일시 | 1994년 - 원지2교 확장 가설 |
전구간 | 원지교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소태동 |
해당 지역 경유 구간 | 원지교 -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소태동 |
성격 | 교량 |
길이 | 28.5m |
차선 | 7차선[상 : 3차선, 하 : 4차선] |
폭 | 34.8m |
[정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과 소태동을 연결하는 교량.
[개설]
국도 제29호선에 설치된 소교량으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과 소태동을 연결하고, 증심사천을 건널 수 있도록 가설된 교량이다.
[명칭 유래]
원지교(元芝橋)라는 교량명은 조선시대에 원지교에 자리한 분수원(分水院)이라는 여관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분수원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조선시대 학자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화순으로 유배가는 길에 분수원 앞에서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을 만났다. 박상은 조광조의 손을 부여잡고 다음과 같이 말하며 마지막을 배웅하였다.
분수원전회파수(分手院前會把手)[분수원 앞에서 일찍이 악수하면서 헤어졌는데,]
괴군황각낙주애(怪君黃閣落朱崖)[그대가 황각[정부]에서 주애[낭떠러지]로 떨어지다니 괴이하게 생각했소.]
주애횡각막분별(朱崖黃閣莫分別)[주애[낭떠러지]와 황각[정부]을 분별하지 마소.]
경도구원무등차(經到九原無等差)[구천[황천길]에 이르러 보면 차등(差等)이 없다오.]
이처럼 눌재는 정암을 위로하며 마지막 길을 전송하였다. 지금도 전송한 터에 '원머리'라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분수원에서 유래한 것이다.
[제원]
원지교는 왕복 7차선의 교량으로 특이하게 상행은 3차선, 하행은 4차선으로 건립되었다. 총 길이는 28.5m, 총 폭은 34.8m, 유효 폭 22.5m, 높이는 5.2m이다. 경간 수는 3개이고, 최대 경간장은 9.9m이다. 상부구조 형식은 RCT형 교이고, 하부구조 형식은 라멘식이다. 난간 재질은 알루미늄을 사용하였고, 설계하중은 DB-18이 적용된 2등교이다.
[변천]
원지교는 1954년 첫 준공하고 교량의 차량 통행량을 늘리기 위해 1979년 증설되고, 1994년 원지2교가 확장 가설되면서 광주천 위로 건립된 교량들을 대표하는 교량이 되었다. 현재 원지교 인근에는 광주광역시 시민들의 기상을 표현한 초승달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현황]
원지교는 광주광역시 종합건설본부에서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