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오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2117
한자 朴五鳳
영어공식명칭 Bak Ob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박오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박오봉 죽구인쇄소 근무
활동 시기/일시 1929년 11월 4~5일 - 박오봉 자기 집에서 장재성, 장석천, 강석원, 국채진 등과 회합을 갖고 선전물 제작 및 시위 결의
활동 시기/일시 1929년 12월 - 박오봉 제2차 학생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30년 10월 27일 - 박오봉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형 선고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9년연표보기 - 박오봉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박오봉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전라남도 광주군 기례방면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 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광주일보』 인쇄공|광주청년동맹 집행위원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오봉(朴五鳳)[1904~1949]은 전라남도 광주군 기례방면[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서 태어났다. 1929년 11월 조선인 학생에 대한 편파적이고 가혹한 처사에 반항할 목적으로 선전물을 만들어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학생들에게 살포하였고, 1929년 12월 제2차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박오봉은 16세 때부터 『광주일보』 인쇄공으로 일하였으며, 19세 때인 1923년에는 광주읍 서광산정(西光山町)에 있는 죽구인쇄소(竹口印刷所)에 고용되면서 사회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어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 집행위원과 광주청년회(光州靑年會) 및 인쇄공조합원(印刷工組合員)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발발하자, 11월 4~5일 무렵 박오봉장재성(張載性), 장석천(張錫天), 강석원(姜錫元), 국채진(菊埰鎭) 등과 자기 집에서 회합을 가졌다. 민족적 차별에 의한 조선인 학생에 대한 편파적이고 가혹한 처사에 반항할 목적으로 선전물을 만들어 전라남도 광주에 있는 학생들에게 살포하고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고, 4000부를 인쇄하여 살포하였다.

1929년 12월 제2차 학생 시위를 단행하게 하였으며, 시위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9년 4월 2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으며, 2002년 박오봉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옮겨 안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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