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07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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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潭陽平章洞光山金氏遺墟碑 |
이칭/별칭 | 신라왕자유허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에 있는 광산김씨 유허비.
[개설]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는 광산김씨 세거지 내력을 기록한 유허비로, 광산김씨 시조인 신라 신무왕의 3남 김흥광(金興光)이 둔거한 곳에 1739년(영조 15) 김진동 등이 주도하여 세웠다. 건립 당시에는 전라도 광주에 속하였으며 1914년에 담양군으로 편입되었다.
[위치]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는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대아제 서쪽에 있다.
[형태]
좌대와 비신(碑身),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고 비각(碑閣)은 1칸의 팔작지붕이다.
[금석문]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의 앞면에는 큰 글자로 '신라왕자유허비(新羅王子遺墟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에 유허비명, 왼쪽에 건립에 참여한 4명의 이름과 관직, 뒷면에 김진상이 쓴 유허비 음기(陰記)가 있다. 유허비명에는 "생각건대 우리 시조는 신라의 왕자로다. 나라 운수가 막힐 때에 여기에서 숨어서 살았네. 이미 밝고 또 어지니 성조(聖朝)에서 아름다움을 표창하였네. 빛을 감추고 덕을 길러 이에 후손에게 미쳤네. 팔세에 평장사는 동국사기에 빛났도다. 마을이 아름다운 이름을 점령함이 실로 이런 때문이다. 팔백 년이 지났으되 지금도 옛터가 있네. 어렴풋이 상상하고 사모함에 어찌 그 끝이 있으리. 일가와 의논하고 돌을 세워 전말을 기록하였네. 맑은 향기와 먼 자취는 솟구쳐서 보이는 듯하다. 불대산이 서쪽이요, 서석산이 동쪽이다. 산신령과 땅 귀신이 또 응하고 보호하여 없어지지 않을 일을 도모하니 천백만 해 하리로다."라고 새겨져 있다.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의 음기에는 "광주 고을 서북 30리[약 12㎞]에 불대산을 짊어지고 서석산을 안대(案對)한 이른바 평장동이 있으니 곧 예전 서일동이요, 우리 시조 신라 왕자 김공의 유허이다. 왕자의 휘는 흥광이니 신라 말에 종국(宗國)이 장차 난리가 있을 줄 짐작하고 이곳에 둔거하였으니 김씨의 적(籍)을 광산으로 함이 이때부터이다. 아들 휘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어서 여덟 명의 평장사가 나왔으므로 동호를 평장동이라 하였다. 고려를 지나 조선조에 들어와서 자손이 더욱 번창하여 이름난 상신과 큰 선비가 혁혁하게 서로 이으니 이는 진실로 왕자공이 감추어진 빛과 기른 덕이 후손을 덮어 줌이요, 또한 사천의 영수한 정기가 도와줌이다. 아 애처롭게도 왕자공의 묘소가 실전될까 두려워 종인들과 모의하고 돌을 깎아 기록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는 2002년 1월 12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담양평장동광산김씨유허비는 성과 본관 생성에 관한 연구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