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4년(충렬왕 즉위년) 원나라에서 고령현의 반룡사에 게시한 방문. 「반룡사 방문(盤龍寺榜文)」은 여원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원(元) 황제 세조가 자국의 군사들이 의안(義安)의 단성촌(丹城村)에서 마소를 놓아기르면서 인근 반룡사 등에 피해를 줄 것을 경계하고자 반룡사에 게시한 방문이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9권 고령현 불우 반룡사조에...
-
1592년 고령 개산포에서 김면이 이끈 의병이 왜적을 물리친 전투. 개산포대첩은 의병장 송암(松菴) 김면(金沔)이 노고산성(老姑山城)과 무계리산성(茂溪里山城)에 의병을 집결시켜 왜군의 낙동강 운행에 일대 타격을 가한 전투이다. 개산포는 김면이 살았던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서 낙동강 쪽으로 불과 6~7㎞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면서 현풍의 도동 쪽에서 고령으로 바로 건너오는 길목...
-
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고령 지역 역사. 통일신라시대 고령군은 야로현과 신복현을 영현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후삼국 시기 고령 지역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뚜렷한 호족이 없는 반면 인근의 성주 지역에서는 이총언(李悤言) 등이 고려 태조 왕건에 귀부하여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성주 지역은 940년(태조 23) 주부군현의 명호 개정 때...
-
고려시대 고령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관청.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려시대에 고령 지역을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 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에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구곡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는 다산면과 개진면 일대의 저평한 침식 구릉 지대에는 제4기 홍적세 층이 발달하였다. 그곳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으로는 상곡리 구석기 유적, 구곡리 구석기 유적, 반운리 구석기 유적이 있다. 구곡리 구석기 유적은 낙동강 하안 단구 지대의 고령기와공장 주변에 있다. 현재는 제방을 높게 쌓아 낙동강의 범...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대흥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2004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현풍·김천 간 고속국도 건설을 위해 2004년 3월 2일에서 12월 30일 사이에 성산면 대흥리 일대의 고속국도 건설 예정지 15,000㎡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유적의 전모가 밝혀졌다. 대흥리 유적 발굴 조사 결과 25기의 유구에서 토기와 도기류 207점, 금속류 3점, 옥석류 9...
-
1597년 고령 둔덕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완전히 점령한 뒤에 북상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작전 계획에 따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의 군사 1만 명이 의령현과 삼가현을 거쳐 성주 방면으로 북상함과 동시에 배를 통해 낙동강을 올라오기도 하면서 1597년(선조 30) 8월 초순...
-
고려 무신정권시대 고령 반룡사에서 승려 요일이 일으킨 화엄종 결사 운동. 고려 무신정권시대에 오면 불교계에서 결사 운동이 일어났다. 결사 운동은 불교가 당시 사회에서 이념적·윤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한계를 자각하고 반성하여 이를 개혁하려는 사회 변혁 운동으로 일어났다. 결사 운동은 중앙 집중적인 교단 체제에 대해 독자적인 지방 불교의 형태를 지향하였다. 주도 세력 및 구성원은...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개진면 반운리에 있는 독산 일대에는 고령 지역의 대표적인 원삼국시대 고분 유적과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구석기 유적이 발굴된 독산과 서쪽의 양전리마을 사이에 있는 들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홍적세층이 발달해 있다. 양전리와 반운리 일대에 있는 들은 회천과 관련된 침식평야로서 선사시대 유적이 분포할 가능...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적. 대가야읍 동쪽 금산재를 넘어서면 남동쪽으로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들판 중앙에 솟은 독산[일명 와룡산, 127m] 남쪽 반천마을 쪽으로 이어진 완만한 구릉지에 반운리 선사 유적이 있다. 독산 서쪽에 반운리 와질토기 유적, 동쪽에 신안리 토기산포지가 있다. 계명대학교 박물관이 1989년부터 1990년까지 개진면 반운리...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반운리에 있는 삼한시대 분묘 유적. 대가야읍에서 국도 26호선을 따라 대구 방향으로 가다가 금산재를 넘어 남동쪽으로 넓게 펼쳐진 들, 즉 대가천과 안림천이 합류하여 회천(會川)이 시작되는 곳 동쪽 기슭 평지 가운데 솟은 독산[일명 와룡산, 127m] 능선에 있다. 계명대학교 박물관이 1989에서 1990년까지 반운리 일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반운리 와질토기...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강정리에 있는 가야시대~조선시대의 봉수 터. 조선시대의 봉수 터가 남아 있고, 가야시대의 보루로 추정되는 석축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야시대~조선시대까지 봉수 터 등의 군사 시설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봉수는 국가의 정치, 군사적인 전보 기능을 목적으로 설치되었는데, 횃불과 연기로 급한 소식을 전했다. 봉화산 봉수는 낙동강을 따라 부산~서울까지 연결되는...
-
경상북도 고령군 다산면 상곡리, 곽촌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다산면 상곡마을과 곽촌마을 사이에 작은 골짜기가 있으며, 그 위쪽에 있는 주을지로부터 용수로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곡리 구석기 유적은 이 골짜기의 남쪽 사면 일대의 완만한 구릉성 야산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다. 앞쪽으로는 낙동강과 접해 있고, 그 건너편으로는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금호강의 하구를 마주보고 있다. 최근...
-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김해김씨가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 규슈[九州...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신안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신안리 유적은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취락이 있었던 생활 유적으로 추정되며, 주로 구릉성 산지에 위치한 주변의 유적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독산(獨山)[127m]의 동쪽 기슭에 자리한 신안리 신촌마을 앞의 도로변에 있는 해발 20m 정도의 평야에 위치하고 있다. 기와 공장의 기와 제작용...
-
경상북도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 금산재에서 양전리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동남쪽 능선을 타고 첫 번째 정상을 지난 산 능선의 편평한 대지에 분포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알려져 왔으나 아직까지 한 차례도 발굴 조사된 바가 없었으며, 2007년 처음으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다. 과거 산림이 우거지기 전에 채집된 유물들은 주로 평저의 민...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어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어곡리 보건진료소 유적은 대구에서 고령으로 이어지는 고속국도 12호선 동고령 성산나들목으로 나와 국도 26호선을 따라 고령 방면으로 약 600m 떨어진 성산면사무소 북쪽 담장과 접한 곳에 있다. 이전에는 전답과 과수원 묘목장으로 사용되었다. 2007년 대동문화재연구원이 성산면 어곡리 225-2번지에 보건지소를 신축하기에...
-
1592년 고령 지역에서 김면이 의병을 일으켜 벌인 전투. 송암(松庵) 김면(金沔)이 고령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첫 전과는 6월 9일 개산포대첩에서 거두었지만, 고령을 떠나 거창으로 가기 전 4월 말에서 5월초 연강(沿江)에서 한 차례 왜군과 전투를 벌인 것이 연강전투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김면은 1592년(선조 25) 4월 하순 가솔을 피난시키고 사촌 아우들과 가동(家...
-
고려시대 고령 지역의 지명. 1425년(세종 7)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에 고령 지역을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상도지리지』 고령현조에 고령을 “전해 오는 이야기로서 고려 때 고양대도호부로 칭하였고, 또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在高麗時稱高陽大都護府又稱靈州牧官此則諺傳也]”라고 한다. 그러나 『고려사(高麗史)』 등의 다른 자료에는 영주목관으로 칭하였다는...
-
1472년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관청과 민간에서 사용하는 일본 상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창고. 조선시대의 대일 관계는 1년 3사(使)의 정기 사행이 규정되었던 중국과 달리 교린(交隣) 체제에서 비정기적인 사행이 오갔고, 무역도 회사(回賜)·답례(答禮)·하사(下賜)를 바탕으로 하는 공무역과 사행의 왕래에 부수하여 허용된 사무역 외에는 민간 차원의 사무역을 일체 금지하였다. 공...
-
1597년 고령 둔덕에서 정기룡이 왜장 다이라 스키마스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선봉장으로 한 다이라 스키마스[平調益]가 이끄는 왜군 1,000명이 1597년(선조 30) 8월 초순에 고령 서남방 둔덕(屯德)[현 고령군 대가야읍 중화리]에 주둔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의 명을 받아 기병 150명과 보병 800명을 거느리고 고령에...
-
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김면이 왜선 두 척을 포획한 전투. 2차 무계전투에 대한 기록은 『문수지』와 『용사일기(龍蛇日記)』에만 보이고 『모계일기(茅谿日記)』나 『고대일록(孤臺日錄)』 등의 다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2차 무계전투의 노획 물품은 개산포대첩의 노획품과 함께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보내졌기 때문에 개산포대첩에서 획득한 것으로...
-
고령 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경상북도 지방을 대표하는 도자기 주산지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고령현 소속 공장에 소속된 사람들을 보면 야장(冶匠)·시장(矢匠)·피장(皮匠)·목장(木匠)·석장(席匠)·칠장(漆匠)·유구장(油具匠) 각 1명, 지장(紙匠) 3명, 사기장(沙器匠) 6명 등 모두 16명이다. 이 중 도자기를 제조하는 사기장이 6명으로, 경상...
-
1592년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무계리에서 손인갑과 정인홍의 부대가 왜군을 물리친 전투. 1592년(선조 25) 4월 13일, 왜군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후 동래로부터 좌·중·우의 삼로(三路)로 갈라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다. 이때 우로의 왜군은 동래-김해-무계-지례-금산-추풍령-영동-청주-경기도를 따라 진군하였고, 경상북도를 장악한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는 개령현에 주둔하고 5월...
-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에 맞서 고령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포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왜군의 주력 부대는 동래-기장-좌수영-울산-경주-영천-의흥-군위-문경의 좌로(左路)와 동래-양산-밀양-청도-경산-대구-안동-선산-상주의 중로(中路), 동래-김해-창원-영산-창녕-현풍-성주-지례-금산-추풍령-영...
-
1597년 정유재란 때 고령 지역에서 정기룡 부대가 왜군에 맞서 싸운 전투. 1597년(선조 30) 왜군이 조선을 재침략한 정유재란이 일어났다. 8월 초순 왜군이 고령 방면으로 침입하자 정기룡(鄭起龍) 장군이 고령에서 왜군과 맞서 7월 15일 도진리전투, 8월 7~8일 둔덕대첩, 8월 16일 용담천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정유재란을 일으킨 일본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경상도,...
-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간 고령의 도공 팔산(八山)이 이룩한 일본 도자기 문화의 일맥. 오늘날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도자기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강토 방방곡곡에서 무차별로 끌고 간 수많은 조선 도공들을 일본의 사쓰마[薩摩]와 아리타[有田]·가라쓰[唐津]·아가노[上野]·다카도리[高取]·하기[萩]·야쓰시로[八代]·소다이[小代]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