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백현
-
1894년 고창 무장 봉기 당시 전봉준 등의 지도부가 만천하에 봉기할 것을 포고한 글. 「무장포고문」은 고부 농민 봉기 이후 전봉준(全琫準), 김개남(金開男), 손화중(孫華仲)을 중심으로 한 농민 지도부가 무장에서 재봉기를 선언하면서 발표한 글이다. 글은 유학적 소양이 있었던 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이나 문장이 탁월하고 전봉준과 친분이 있었던 옹택규(邕宅圭), 또는 전봉준의 비서 역할...
-
조선 시대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소재로 전해온 문서. 문서란 경우에 따라서 서책·서적을 뜻하기도 하였고, 추안(推案)·국안(鞫案) 등 재판 관계의 신문·진술 기록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또한 개인과 개인 간에 토지·노비·가옥의 매매, 재산의 상속, 전곡(錢穀)의 차용 시에 주고받는 글은 주로 문권(文券)·문계(文契)·문기(文記) 등을 썼으나, 흔히 땅문서·종문서·...
-
1894년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진짜 이야기 들여다 보기. 고창군 무장 지역에서의 농민 봉기는 고을 단위의 농민 봉기였던 고부 봉기가 국지성을 벗어나 전국적인 농민 봉기로 가는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 따라서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은 현재 고창군에 속하는 무장현에서의 농민 봉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창 지역은 전봉준 생가, 무장기포지, 손화중...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영암(榮庵), 본명은 흥관(興寬)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칠(金聲七)이다. 김흥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성칠과 함께 동학에 입교(入敎)해 활동하였다. 김성칠은 1893년 12월,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仲)·정백현(鄭白賢) 등과 함께 송문수(宋文洙...
-
개항기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봉기. 손화중포(孫化中包)를 중심으로 한 고창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과 수탈에 맞서 일어난 각 지역 민란이 전국적인 항쟁으로 옮아 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하였지만 동학농민혁명군이 제시한 폐정 개혁안은 갑오개혁에 일부분 반영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군들 중 일부는 국권피탈...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휘는 근영(根永), 호는 진암(眞庵)이다. 백현(伯賢)은 자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태어났다. 정백현은 농민 봉기 와중에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지도자급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백현은 1894년 3월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 때, 전봉준(全琫準)의 처 칠촌으로 뒷날 전주대...
-
무장기포는 1894년 3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되었다. 당시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리[현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는 수천 명의 동학 농민군이 모였는데, 이들은 죽창을 만들고 무기와 식량을 확보한 뒤 대오를 정비하였다. 준비를 마친 이들은 마침내 3월 20일 이곳에서 창의문을 낭독하고 기포하였다. 무장기포 직전 무장현 일대는 동학의 교세가 대단히 컸다. 동학의 교세는 전라도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