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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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내숙(來叔), 호는 모산(茅山). 강희맹(姜希孟)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세거하다 처가[진주정씨(晉州鄭氏)]와 외가[무송유씨(茂松庾氏)]가 있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강민저(姜敏著)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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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에서 세조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강희맹의 둘째 아들 강학손(姜鶴孫)의 여섯째 아들 강흔수(姜欣壽)가 강응환(姜膺煥)의 9대조인데, 그의 6대조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외가인 무송유씨(茂松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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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당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의 지형이 용이 잠긴 형국이라 ‘용계(龍溪)’로 불렸다. 진주정씨(晉州鄭氏) 정회찬(鄭悔燦)이 이주한 뒤 호를 따 ‘계당(溪堂)’이라고 불렀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말 신천강씨(信川康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선 중기 진주정씨 정회찬이 괴치마을에서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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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순서(舜瑞)·응중(應仲), 호는 방산(方山). 증조할아버지는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이고, 할아버지는 고재경(高在慶)이다. 아버지는 고우용(高友龍)이며,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이인발(李仁馞)의 딸이다. 부인은 진주정씨(晋州鄭氏)로 정상악(鄭象岳)의 딸이다. 고한벽(高漢璧)은 5세 때인 1722년(경종 1)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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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괴치리는 괴목숲이 우거진 산으로 회화나무[槐]와 재[고개, 峙]가 많은 것을 본 따 ‘괴치(槐峙)’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괴칫재 밑이라 ‘괴치’라고도 했다고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피해 진주정씨(晉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성동면(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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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는 남산 밑이라서 남산리라 하였다. 임진왜란 전 서당골에 당씨, 변적골에 해주오씨, 지사골에 경주이씨가 살았고, 그 뒤 광주이씨를 비롯하여 진주정씨·상산김씨·창녕조씨 등 여러 성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조선 말기에는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남산·용장(龍庄)·흥룡(興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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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는 정희주(鄭熙周), 정민상(鄭敏相), 정유상(鄭有相),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조선 후기 사당. 진주정씨(晋州鄭氏) 종모재(終慕齋) 정희주(鄭熙周)와 야은(野隱) 정민상(鄭敏相), 송은(松隱) 정유상(鄭有相), 항사재(恒思齋) 정취규(鄭聚奎)를 모신 사우(祠宇)이다. 도봉사는 공음면 군유리 상군마을에 있다. 1827년(순조 27)년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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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에 있는 고려 시대 불상. 무송리 석불좌상은 성송면 무송리 갈산마을 뒷산에 진주강씨와 진주정씨 재실의 중간 부분인 야산에 봉안된 것으로, 앞뒷면에 선각과 조각 기법을 사용하였다. 2002년 11월 15일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무송리 석불좌상은 가운데가 잘록한 주형의 광배(光背)를 지녔으며, 머리는 소발로 표현되었고, 육계는 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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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수리는 산수가 좋으므로 ‘산수매’ 또는 ‘산수(山水)’라고 하였다 한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 진주정씨(晉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원송면(元松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외원리(外院里)·삼태리(三台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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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에 분포하고 있는 수령 약 200~350년 된 9그루의 소나무 노거수. 소나무는 겉씨식물 구과목 소나무과로 한국, 중국 북동부, 우수리,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솔, 소나무, 소오리나무라고 한다. 줄기는 높이 35m, 지름 1.8m 정도이며 나무 껍질은 붉은빛을 띤 갈색이나, 밑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바늘잎은 2개씩 뭉쳐서 나고 길이 8~9㎝, 너비 1.5㎜이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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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에 있는 정휴탁이 살았ㄴ던 조선 시대 고가. 조선 후기 장수군수를 지낸 정휴탁의 고가로, 조선 시대에 지어진 반가(班家)의 건물이다. 성송면 하고리 삼태마을 개천을 끼고 길을 따라 경로회관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솟을대문이 보인다. 원래 여러 채의 건물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구조가 바뀌어 현재는 건물 4채만 남아 있다. 정휴탁 고가는 안채,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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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계오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진주강씨(晉州姜氏) 시조 강이식(姜以式)은 고구려의 도원수로서 수나라 침략군을 여러 차례 토벌한 공을 세웠고, 후손 강진(姜縉)은 신라인으로 숭인전 사운과(崇仁殿四韻科)에 장원을 하여 판중의령(判中議令)을 지내고 진양후(晉陽侯)에 봉해졌다. 이에 후손들이 진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강학손(姜鶴孫)이 평양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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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를 시조로 하고 정종순·정택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진주정씨는 고려 때 영절공 정예(鄭藝)를 시조로 하고, 문익공 정시양(鄭時陽)을 중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진주정씨는 충장공파(忠壯公派)와 참판공파(叅判公派)가 알려져 있다. 진주정씨 고창군 입향조 정종순(鄭宗舜)은 충장공 정황(鄭璜)의 7대손으로 1515년(중종 10)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월악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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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군유리에 있는 진주정씨 가문의 정문. 진주정씨(晉州鄭氏)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누대에 걸쳐 정려를 하사받았다. 진주정씨 삼강각에는 하나의 비석과 열세 개의 현판이 있어 이들의 활동 사항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정흘(鄭屹)은 정유재란 때 창의하여 의진에 임했으나, 전라감사가 무장현[현 무장면]에 현감 자리가 공석이자 현감 직책을 맡아 성을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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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토성과 세거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고창 지역의 세거성씨를 보면 고창현의 토성은 오(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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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내리는 풍수지리상 말이 먹은 풀밭이라 하여 ‘초내’라 부르고 있다. 초내리 부근의 추산봉에 천마시풍이라는 ‘혈명’이 있는데, 이는 말과 관련된 지형이다. 한편, 초내마을이 백제 때 초아지, 초나지로 불린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는 설도 있다. 진주정씨(晋州鄭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그 시기에 관한 뚜렷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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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춘산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춘산리(春山里) 명칭과 함께 마을 뒷산에 서 있는 바위를 상징하여 ‘입암(笠岩)’이라 하였고, 현재는 ‘입암(立岩)’으로 고쳐 쓰고 있다고 한다. 1550년경 신천강씨(信川康氏)가 입암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