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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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봉곡리·봉의리·봉암리 3개 마을의 ‘봉(鳳)’자를 따서 삼봉리(三鳳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곡리·봉의리·봉암리·계암리 일부, 남면 송정리·유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봉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을 금산면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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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봉곡리·봉의리·봉암리 3개 마을의 ‘봉(鳳)’자를 따서 삼봉리(三鳳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수류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곡리·봉의리·봉암리·계암리 일부, 남면 송정리·유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삼봉리라 하고 김제군 수류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수류면을 금산면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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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유학자. 송기면(宋基冕)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군장(君章), 호는 유재(裕齋)이다. 1882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아버지 송응섭(宋應燮)과 어머니 전주최씨 사이에서 5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절의와 순국의 의리를 강조한 교육자이자 만인에게 사표(師表)가 되는 호남의 거유(巨儒)로서 숭앙받았다. 송기면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였으며,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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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도면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김제군 쌍감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옥성리를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옥성리가 되었다. 북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는 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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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말기 금구군 이북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도면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김제군 쌍감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옥성리를 김제군 금구면에 편입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제시와 김제군이 통폐합됨에 따라 김제시 금구면 옥성리가 되었다. 북으로 두월천(斗月川)이 흐르는 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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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뒷산이 마치 누워 있는 용이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것과 같은 와룡망해(臥龍望海) 형국이어서 와룡리(臥龍里)라 하였다. 한편, 용 두 마리가 싸움을 벌이다 한 마리가 지쳐 쓰러져 죽어서 산을 이루었는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마을 이름을 와룡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말기 김제군 모촌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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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반리의 ‘용’자와 유산리의 ‘산’자를 따서 용산리(龍山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금구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반리·유산리·등룡리 각 일부, 서도면 용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산리라 하고 김제군 하리면에 편입하였다. 1935년 용산리를 금산면에 편입함에 따라 김제군 금산면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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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일을 시조로 하고, 서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이천서씨(利川徐氏)는 신라 효공왕 때에 아간(阿干)을 지낸 서신일(徐神逸)을 시조로 한다. 서신일이 이천(利川) 효양산록에 복성당(卜聖堂)을 짓고 살면서 가칭 처사라 부르며 후진 양성에 힘썼는데, 이로 인해 후손들이 이천을 본관으로 삼고 있다. 이천서씨의 김제 입향조는 서관(徐寬)이다. 조선 세종 때에 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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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석리에 있는 이천서씨 가문의 효열을 기리는 정려. 서택진의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덕유이다. 절효공의 후예로서 증호조판서(贈戶曹判書) 서봉정(徐鳳廷)의 아들이다. 서택진은 12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예절을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더 자라서는 어머니가 병으로 몸져눕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였다. 어머니 또한 세상을 떠나자 장례를 치르고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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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장산리에 속하는 법정리. 장산은 마을의 산이 길게 뻗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말기 만경군 북일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청운산 고개에서 여자 장수가 태어났다 하여 씩씩할 ‘장(壯)’자, 뫼 ‘산(山)’자를 써서 장산이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차리·거산리·공향리·신월리·관원리 일부, 김제군 마천면 청하리·제상리·제하리·거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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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최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전주최씨는 고려 전기인 1090년(성종 7) 삼중대광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최군옥(崔群玉)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중시조 최양(崔瀁)은 조선의 건국을 반대한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고려 후기의 충신이었다. 1392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전라북도 전주시 대승동 봉강리에 은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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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전주최씨 종중 묘역. 산동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은 전주최씨 집성촌인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둔산마을 뒤편 구릉상의 대나무 숲에 위치하고 있다. 산동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에는 2기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문인석은 1기만 존재하는데 그마저도 기울어져 있다. 문인석은 얼굴이 몸에 비해 크고, 입술과 눈이 두텁게 표현되었다. 손가락은 세밀하게 표현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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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주최씨 종중 묘역. 황산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은 김제시 공덕면 황산리 산 구릉에 있다. 묘역 바로 아래에 재각이 있으며, 옆에는 황산리 문화유씨 종중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황산리 전주최씨 종중 묘역에는 10여 기 정도의 묘가 있는데, 그 가운데 3기의 묘 앞에 문인석이 각 한 쌍씩 세워져 있다. 문인석이 서 있는 무덤 중 2기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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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성씨 집단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인데,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는 혈연이다. 삼국시대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이다. 17세기 이후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널리 퍼지면서 가부장제가 정착되고, 이에 따른 혈연의식이 강화된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농업경제를 바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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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광두의 정려. 최광두(崔光斗)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최광두는 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여러 방면으로 약을 구하여 봉양하였으나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일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또한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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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광악의 정려. 최광악(崔光岳)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용와(龍窩)이다. 만육 최양(崔瀁)의 13세손이다. 최광악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깨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 리 밖에 있을 때 어머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밤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의원에게 약을 지어 회복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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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달호의 정려. 최달호(崔達昊)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만육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최달호의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자 변을 맛보아 가며 약을 쓰고 정성을 다하니, 1851년(철종 2) 3월 19일 도승지(都承旨) 김병기(金炳冀)가 왕에게 아뢰고 같은 달 27일에 예조판서(禮曹判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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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명서의 정려. 최명서(崔命瑞)는 전주최씨 최군옥을 시조로 하고 만육 최양을 중시조로 하는 최여정 도사공파의 후손이다. 호는 낙촌으로 참봉 최응삼(崔應三)의 7세손이다. 전주최씨 도사공파는 금구면 둔산, 신흥, 광현, 용사, 용전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최명서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부모님을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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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식의 정려. 매촌 최식(崔湜)은 충익공 최만육의 증손이다. 부모를 기쁘게 하고자 글공부를 열심히 하여 생원·진사 시험에 급제하는 등 정성을 다하였으며, 부모가 위독하자 자신의 손끝을 잘라 피를 먹여서 수개월 동안 연명하게 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최식의 효행을 칭찬하며 조정에 알리자, 이에 조정에서는 증직 3품의 벼슬을 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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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응삼의 정려. 최응삼(崔應三)의 자는 춘향, 호는 애일당으로, 아버지는 역시 효자로 정려를 받은 최식(崔湜)이다. 최응삼은 부모님의 생일과 연중 좋은 철이나 명절이 되면 동네 사람들과 각지의 선비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부모님을 위로하며 오래오래 살기를 빌었다. 행여나 부모님이 병을 걸리면 겨울에도 죽순과 잉어를 구해다 드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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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화의 정려. 학은(學隱) 최화(崔和)는 어려서부터 모든 일을 어른같이 하면서 부모님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공부도 열심히 하였다. 어느 날 최화는 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자 한밤중에 10리나 떨어진 깊고 깊은 산중에 있는 의원에게 약을 구하러 가게 되었다. 때는 겨울이라 눈과 바람까지 세차게 불어와 눈앞을 가리는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