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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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主敎 |
영어공식명칭 | Roman Catholicism |
이칭/별칭 | 가톨릭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용민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 교파의 종교.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은 서부 경상남도의 최북단이다. 서쪽은 덕유산 줄기가 전라도와 경계를 이루고 동쪽은 가야산 줄기가 경상북도와 맞물려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일찍부터 박해를 피한 천주교도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러나 워낙 험준한 지역이라 선교사들의 방문은 늦게 있었다. 첫 기록은 조조(Jozeau)[1866~1894, 한국명 조득하(趙得夏)] 신부의 1893년 보고서에 나오는 가섭 공소이며, 당시 신도 수는 35명으로 보고되어 있다. 가섭 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에 있었다. 당시 천주교도들은 이 일대에 흩어서 살았고 공소 건물도 없었다. 조금 넓은 신도의 집을 조조 신부는 ‘가섭 공소’라 기록한 것이다. 이들 역시 박해를 피해 호남 지역에서 넘어온 천주교도들이었다.
1900년 전라북도 진안 본당이 설립되고 김양홍 신부가 부임하면서 경상남도 거창군의 마리면, 위천면, 북상면이 진안 본당 관할로 편성된다. 그만큼 이 지역에 호남 출신 천주교도들이 많았던 것이다. 김양홍 신부는 거창군 북상면 소리전에 당산말 공소를 신설했다. 한편 거창군 가북면에도 오래된 공소가 있었다. 몽석리에 있었던 덕동 공소다. 덕동 공소는 훗날 거창군 가북면 박암리로 옮겨 박암 공소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거창군 거창읍에 있었던 공소는 학리 공소와 양평 공소다. 1917년 신치산은 경상북도 선산[현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에서 거창군 거창읍 학리 구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옹기를 구원 팔던 신치산은 자신의 집에 공소를 꾸몄다. 이것이 학리 공소의 시작이다. 1924년 신치산이 구례 마을에서 거창군 거창읍 양평리 앙평 마을으로 이사하여 자신의 집에서 공소를 시작했다. 이것이 양평 공소의 시작이다.
이 무렵 천주교 대구 교구에서는 거창 본당 신설을 고려하다가 1928년 5월 6일 조차성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면서 거창 지역 최초의 성당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