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 하씨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기리 출신 근현대 유학자 이재근의 문집. 이재근(李在根)[1892.6.7~1960.1.29]의 자는 회장(晦章)이고, 호는 건재(健齋), 본관은 하빈(河濱)이다. 아버지는 이희도(李希道), 어머니는 진양 하씨 하상연(河尙涓)의 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기동(基洞)[지금의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기리]에서 출생하였다. 면우 곽종석...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근대 유학자 이경균의 문집. 이경균(李璟均)[1850~1922. 10. 9]의 자는 성오(星五), 호는 계헌(稽軒),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아버지는 이규성(李圭性)이고, 어머니는 야성 송씨(冶城宋氏) 송응도(宋應度)의 딸이다.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 고헌(顧軒) 정래석(鄭來錫)에게 수학하였다. 장석영(張錫英) 등...
-
경상남도 거창군 출신의 조선 후기와 개항기 유학자 표응기, 표상규, 표동화 3대의 유고집. 표응기(表應基)[1783.12.23~1865.윤5.26]의 자는 평수(平叟), 호는 계은(溪隱), 본관은 신창(新昌)이다. 증조할아버지 표징태(表徵泰)는 1738년에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의 문묘 배향을 소청했다. 아버지는 모암(茅菴) 표이문(表以文)이고, 어...
-
1919년 거창군의 곽종석이 유림 대표로 파리 평화 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한 사건. 1894년 봉건적 사회질서와 외세의 침략에 맞서 봉기한 가조면의 농민들은 거창읍을 향해 진군하다 관군과 일본군에 진압당하였다. 유생들은 신분 질서를 뒤흔드는 농민군들을 스스로 민보군을 조직하여 처단하였다. 개항 초기 ‘근대’의 변화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절, 민중과 유생이 꿈꾸던 나라는 달랐...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의 9개 법정리 중 한 지역이다. 박암리(朴岩里)에는 공수리, 박암리, 옥산리 등 3개 행정리와 행정리 공수리에 속하는 공수 마을, 행정리 박암리에 속하는 박암 마을[속칭 ‘박바우’라고도 함], 신기 마을[속칭 ‘샛터’라고도 함], 호암 마을[속칭 ‘범바우’라고도 함], 행정리 옥산리[속칭 ‘늘미기...
-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우리나라의 성씨에 관한 최초의 구체적인 자료는 조선 세종 때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 조(姓氏條)다. 이 자료에 의하면 거창현(居昌縣)에는 토성(土姓)이 다섯, 내성(來姓)이 하나이고, 거창현의 속현(屬縣)이었던 가조(加祚)에는 다섯 성이 있었다. 현재 거창군에 편입된 안음현...
-
일제 강점기 거창에서 활동한 문인. 신희성(慎熙晟)[1874~1945]의 본관은 거창(居昌)이고, 자는 문여(文汝), 호는 초헌(蕉軒)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신유성(愼惟誠), 증조할아버지는 신수행(愼脩行)이다. 할아버지는 신영채(愼永采)이며, 아버지는 신종장(愼宗璋)이다. 어머니는 하택동(河宅東)의 딸 진양 하씨(晉陽河氏)이다. 부인은 서해규(徐海奎)의 딸 달성 서씨(達城...
-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마을. 집성촌은 대체로 하나의 지배적인 동성 동족 집단이 특정 마을의 주도권을 가지고 집단적으로 거주하여 온 마을을 말한다. 이들은 문중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선산과 묘소를 마련하고 재실을 건립하여 족계를 조직하였다. 이에 더하여 문중의 서원과 사우를 건립하는 등 친족 조직을 공고히 하며 집성촌을 형성하고 발전시켰다....
-
특산물 해따지 사과와 함께 마을 만들기의 성공 사례로 이름난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의 자연 마을. 경상남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거창군 고제면 봉계리의 원봉계 마을은 2015년 문화 체육 관광부 주최 생활 문화 공동체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성공적 마을 만들기의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300년 전통의 원봉계 마을과 한국 전쟁 난민 정책 사업으로 탄생한 내당 마을은 비록 이질적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