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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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지명 유래에 관한 내용을 다룬 책. 지명은 지역민들에 의해 구전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생명이 끈질긴 언어로 설화적 가치와 언어적 가치,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언어전승의 문화유산이다. 또 지명에는 민중들의 언어습관이 담겨 있어 공시적 언어와 통시적 언어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강릉 지역 지명 유래(江陵地域 地名由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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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2동 화부산 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낙향하여 가작다리[鵲橋, 假作橋, 假鵲橋]에 살면서 화부산 아래쪽에 있는 향교에 자주 다녔는데, 이때 집에서 길을 따라 향교까지 가면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질러가기 위해 집 앞에 있는 도랑에 나무로 다리를 놓고 건너 다녔다. 참판 벼슬을 지낸 사람이 손수 나무로 다리를 놓았는데, 그 다리가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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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위치한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둔다. 당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강릉 대창리 당간지주 주변에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어 이 주변이 절터였음을 알 수 있을 뿐 구체적으로 전하는 기록은 없다.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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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위치한 당간지주.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둔다. 당을 달아 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강릉 수문리 당간지주는 옥천동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일대가 절터로 추정되나 지금은 주거지로 변하여 절터의 존재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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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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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미국의 선교사 래시(R.M.Rash, 羅時得)가 전도를 목적으로 강릉 지역에 설립한 교회. 1958년에 미국의 래시 선교사가 강릉에 도착하여 교회를 열었으며, 다음해인 1959년 3월 옥천동에 선교부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다. 1959년 옥천동 232번지에 선교부 건물을 기공, 1964년 율곡로 2834[옥천동 157-3번지]에 교회 예배당 신축 기공, 1978년 옥천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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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을 중심으로 전개된 항일학생운동. 독서회는 1925년 이후 광주 지역에서 고조된 분산적이고 개인적인 항일투쟁을, 기조적 교양(基調的敎養)과 추진력에서 체계적·통제적으로 배양시켜 나갈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서회중앙본부 밑에 각 학교에 단위 독서회를 조직하여 기반을 확대시켜 항일학생층을 폭넓게 수용하고 중앙에서 지도 통제함으로써, 막강한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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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인 1955년에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됨과 동시에 강릉군을 명주군으로 개칭 분리하였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1995년에 다시 강릉시와 명주군이 통합되어 강릉시로 개칭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대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일제강점기 이후, 강릉시는 도시 개발에 따라 크게 3단계에 걸쳐 구조변화를 겪어왔다. 1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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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택지개발은 기존 도심인구 분포의 변화도 가져 왔다. 주거공간이 이동하면서 기존 도심 내 인구가 택지로 이동하였는데, 이는 도시 내 전체인구의 변화가 적은 데 비해 택지 내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홍제동, 옥천동 등 기존 도심은 도시 중심기능을 잃어가면서 자산가치 하락과 주거환경 악화로 인구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반면 새로 조성된 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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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玉川洞)에서 출토된 석불. 강릉석불입상은 옥천동 민가에 있었던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 양식의 석불로 1992년에 강릉 향토 사료관[현 오죽헌·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강릉석불입상은 대좌와 신체가 별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오랫동안 풍우로 마모되었으나 원만한 얼굴과 유려한 의문,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좌는 원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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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위치한 영동 지방의 중심 도시. 강릉시는 강원도 백두대간의 동쪽 영동 지역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동해 바다가 있고, 서쪽으로는 평창군·정선군과 인접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동해시와, 북쪽으로는 양양군과 각각 인접해 있다. [표1] 강릉시의 위치[출처:시정백서(강릉시, 2016)] 강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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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에 있는 지방 자치 행정 기관. 강릉시의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55년 9월 1일 법률 제369호로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병합하여 강릉시로 승격되었다. 당시의 강릉시 행정 구역은 38개동 489개 반이었다. 강릉읍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강릉군은 명주군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1월 1일에는 강릉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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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있는 영동선의 종점이 되는 철도역으로 영동선과 경강선의 종착역. 1962년 11월 6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1979년 3월 1일 경포대역이 폐쇄됨으로써 영동선(嶺東線)의 종착역이 되었다. 강릉역은 강릉시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경포대(鏡浦臺)와 오죽헌(烏竹軒), 선교장(船橋莊),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 정동진 등을 여행하기에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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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일대에서 발견된 석탑의 부재. 석탑의 일부분으로 화강암 재질로 이뤄졌으며, 2기가 발견되었다. 석탑의 일층 옥신석의 한 면으로 보이는 것에는 여래좌상이 양각되어 있고 우주 한 개가 조각되어 있다. 상층기단의 한 면으로 보이는 것에는 팔부신상(八部神像)이 양각되어 있다. 여래좌상은 얼굴의 마모가 심해 정확한 표정을 읽을 수 없지만, 강조된 양감과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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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내동·명주동·용강동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 강릉부의 행정성(行政城). 읍성(邑城)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치소지(治所地)에 축조한 성곽으로 조선 전기에는 대략 120여 곳이 유지되었다. 상비군에 의한 충분한 조치가 어려웠던 당시 불시에 발생하는 외침으로부터 주민의 생명은 물론, 지방 관아의 각종 행정 자료와 물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읍성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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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읍성은 근대 이전 고려와 조선시대에 강릉 지역의 치소(治所)가 위치했던 행정중심지에 조성되었던 성곽을 말하며, 관아 유적은 강릉읍성 내에 존재했던 치민을 위한 시설물을 일컫는다. -읍성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 강릉읍성과 관아 유적 강릉은 지리적으로 한반도 중부의 동해안에 위치하며, 서·남·북으로 고도 약300~1,000m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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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동과 초당동에 속한 법정동. ‘강문’은 ‘강이 흐르는 입구 또는 강릉의 문’ 이란 뜻인데, 옛날 강릉 시내로 관류하던 물줄기가 공제[홍제동], 경방을 지나 옥거리[옥천동]에서 궁개[포남동], 보남이, 도투재 밑 베루끝[한국 전력 공사 아래쪽]으로 돌아 초당[쏠터]에서 강문으로 흘러 경포호 하구 죽도봉 앞에서 바다로 빠졌다. 그래서 ‘강문’은 강릉 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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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산업 중 토목·건축 기타 이와 관련되는 건설 공사의 도급을 받는 영업. 건설업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인공 시설물들인 토목과 주택·상가·공장·사무실 등의 건축물을 건설하는 공사를 맡아 수행해 주는 영업이다. 건설업은 첫째, 시장 구조면에서 주문 생산적 기업 즉 수주 산업이다. 둘째, 생산 활동이 옥외적·분산적이다. 셋째, 생산 대상이 특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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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중학교 교육을 기초로 하여 중등 교육 및 실업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해방 후 강릉의 고등학교 교육은 해방 전 설립된 강릉농업학교, 강릉상업학교[2002년 강릉제일고등학교로 교명변경], 강릉여자고등학교를 비롯하여 1962년에 설립된 강릉고등학교가 급격히 성장하였고, 명륜고등학교[1963] 영동여자고등학교가 개칭된 강일여자고등학교[1967], 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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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을 실시하는 곳.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교육은 국민 사이의 강렬한 교육열과 정부 차원의 행정력이 전국에 획일적으로 미치면서 전개되어 왔으며 정부수립과 함께 교육 팽창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강릉 지역의 교육은 획기적 발전을 거듭하였다. 특히 교육열 증대와 현대적 가치관에 따라 남녀교육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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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강릉시의 중심부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포남동, 서쪽으로는 임당동·교 1동, 남쪽으로는 옥천동, 북쪽으로는 운정동과 접해 있다. 교통의 중심지이며, 기차역이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강릉 향교가 있어 향교 마을·향교말 또는 교촌(校村)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 강릉군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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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공동체.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들어와 체계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884년 흐레이스 뉴톤 알렌에 의해서였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885년 부활절에 장로교의 호레이스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라 목사가 제물포에 도착함으로써 우리나라에 새문안교회와 정동교회의 터전이 마련되었다. 한국에 선교하기 위해 진출한 개신교의 각 교파는 전교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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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문동과 명주동의 노후·쇠퇴한 구도심 지역과 골목을 활성화하는 사업. 일반적으로 도시는 발달 과정에서 늘어나는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신시가지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때 구시가지는 정주 인구가 감소하고 상업, 문화, 교육, 복지 등 도시 기능이 급격히 약화되는 등 구도심의 중심 시가지를 중심으로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심화된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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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 있는 시민 문화 예술 공간. 구슬샘 문화 창고는 강릉시의 대표적인 쇠퇴 지역인 강릉시 옥천동의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주민들의 문화 예술 참여 및 활동 공간 확보 차원에서 2019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2021년 준공되었다. 산업화 시기 마을의 쌀 창고로 쓰이던 유휴 건물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하였으며, 계획 당시의 명칭은 옥천동 시민 예술촌이었으나,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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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출신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북경대학을 졸업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 회원, 강릉농민동맹 회원 그리고 가두노동조합 조합원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0년 5월 1일 강릉군[지금의 강릉시] 옥천동(玉川洞) 자택에서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강릉농업학교 독서회는 사회과학 및 일반서적을 윤독하여 교양을 높이고 일제 식민교육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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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에서 성남동에 이르는 도로. 금성로는 강릉 읍성 동문 밖을 나와 강릉의 상가 밀집 지역인 옥천동과 성남동 사이에 있는 상가 도로이다. 강릉의 번화가인 금학동과 강릉 중앙 시장이 있는 성남동을 잇는 도로여서 두 행정동의 첫 글자를 따 금성로라고 이름 붙였다. 금성로는 상가 밀집 지역인 강릉 중앙 시장과 성남 시장을 다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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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중앙동에 속한 법정동. 강릉시 중심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교통망이 잘 발달되어 있다. 금학동(錦鶴洞)은 지형이 학의 모양이고, 옥녀가 비단을 짜는 옥녀 직금(玉女織錦)의 형상으로 직금형에 학체가 있다고 생긴 이름이다. 옛 농산물 시장 자리가 학의 머리에 해당된다. 강릉군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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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방의 매년 되풀이되는 정상 상태에 있는 대기 현상의 종합된 평균 상태. 강릉을 중심으로 한 영동 지방의 기후는 태백산맥이 겨울철의 북서계절풍을 차단하고 동한 해류(東韓海流)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 남단의 다도해 다음으로 따뜻한 지역이다. 연평균 12~13℃이고, 서해 사면보다 2~3℃ 높다. 강수량은 다도해보다 많아, 연평균 1,300㎜ 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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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남동과 노암동을 연결하는 다리. 시멘트로 건설한 다리이다. 남천교(南川橋)는 남대천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강릉 시내로 관류하는 남대천에 있는 다리로 성남동과 노암동을 어어주는 강릉의 관문으로서, 교통량과 물동량을 수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남천교는 7번 국도가 지나가는 다리로 다리 남쪽은 노암동이 되고, 다리 북쪽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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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진행되는 도시 재생 사업. 도시 재생이란 인구의 감소, 산업 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 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도시 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약칭 도시 재생법] 등에 의거하여 지역 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 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도시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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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릉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강릉의 독립운동은 영동 지방에서의 의병 활동의 연계선상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을미의병 당시 민용호(閔龍鎬)에 의해 강릉에 설립된 관동구군도창의소(關東九郡都倡儀所)는 영동 지방 전체를 활동무대로 강릉의 대표적인 유림인 권인규(權仁圭)[건국훈장 독립장 추서]의 지원을 받으면서 전국 최대의 규모로 일제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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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과 교동에 걸쳐 있는 상설시장. 강릉시의 상권은 중심시가지인 옥천동·중앙동·임당동·교동에 집결되어 있다. 강릉시의 가장 큰 중심상업 집적지는 중앙동의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에 발달한 상점군이다. 중앙시장은 강릉시의 생성과 더불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어 대 생활권 중심을 이루면서 팽창하여, 현 시점에서는 본래의 시장보다 몇 배나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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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임당동에 있는 마을. 말루[斗樓]는 예전에 최문한(崔文漢)이 타고 다니던 말을 매어 두었던 누대가 있었던 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말루로 흐르는 물줄기는 홍제동 골말에서 흘러오는 도랑물과 남대천 경방에서 흘러오는 물이 합쳐져 교동을 지나 포남동의 넓은 들로 흘러간다. 말루는 성산 주령의 마지막 낙맥으로, 강릉 시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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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사망·화재·사고 등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미리 일정한 보험료를 내게 하고, 사고가 일어났을 때 일정한 보험금을 주어 그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과 관련한 서비스업. 생명보험회사와 체신보험은 금융기관의 보험기관에 해당한다. 생명보험회사가 금융기관으로 분류되는 것은 손해보험과는 상이하게 손해의 발생 여부에 관계없이 기간이 경과된 후 약정된 보험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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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이 있었던 터나 현재 전해지는 불교 관련 물건. 강릉 지역의 불교 유적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지고, 조사된 폐사지로는, 향호리사지(香湖里寺址)[주문진읍 향호2리 816], 삼교리사지(三橋里寺址)[신사동사지(新寺洞寺址), 주문진읍 삼교리 572], 삼산리사지(三山里寺址)[청학암(靑鶴菴), 연곡면 외동길 111[삼산2리 259]], 장덕리사지(長德里寺址)[원당사지(元堂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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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에 남아 있는 절터. 강릉 지역의 사지에는 굴산사지(掘山寺址), 보현사(普賢寺)[지장선원], 신복사지(神福寺址), 방현사지(坊縣寺址), 한송사지(寒松寺址)[문수사], 등명사지(燈明寺址), 안국사지(安國寺址) 등이 있고, 이들 사지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이 있다. 그밖에 특별히 지정된 문화재가 없는 사지들도 다수 있다. 사찰이나 사지는 여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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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의 조직화된 집단. 강릉은 인심이 후하고 선현들의 얼이 지속적으로 이어 온 전통적인 문향·예향의 도시이다. 1955년 강릉읍과 경포면, 성덕면을 합해 시로 승격된 강릉은 2011년 9월 말 현재 1,040㎢의 면적에 인구 220,121명에 이르는 영동의 교육·문화·교통·행정의 중심지이면서 동해권의 중추적 도시로 발전하였다. 강릉은 백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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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 지역의 산업 중 물자의 생산 대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 제조업은 물건을 생산하는 것이고 서비스업은 용역을 생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형재의 생산은 제조업으로, 무형재의 생산은 서비스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서비스업의 범위는 단순 노동에서 광범위한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구체적으로는 도소매업, 음식 및 숙박업, 부동산 및 임대업,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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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있는 마을. 송촌(松村)이라는 명칭은 예전에 이 지역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생긴 이름이다. 송촌은 괘방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있으며, 앞은 군선강의 하류와 넓은 안인들이 펼쳐져 있다. 송촌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대포동이 있고, 북쪽으로 가면 안인리의 장터말이 있다. 송촌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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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사고 파는 거래장소. 시장은 재화,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로 여기에서 가격이 결정된다. 광의의 개념으로는 금융시장, 석유시장 등 세계 무역의 모든 것을 포괄한다. 여기서는 시장 개념의 원론적 서술이 아니라 강릉 지역의 재래시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시장의 1차적 기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만나 거래를 하는 행위에 있다. 즉 팔사람[상인]과 살사람[고객]의 흥정으로 상행위가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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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진리 서낭당에는 오래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처녀가 바닷가에서 미역을 따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마침 한 수려한 청년이 배를 저어 그 앞을 지나갔고 처녀는 청년에게 한눈에 반했다. 상사병에 걸린 처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는데, 이상하게도 처녀가 죽은 다음부터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부의 꿈에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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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 또는 한약사가 의약을 조제하거나 판매하는 곳.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약국을 개설할 수 없으며, 약국을 개설하려는 사람은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에게 개설 등록을 하여야 한다. 약국과 약국이 아닌 의약품 판매업체와의 차이는 조제의 여부뿐만 아니라, 취급되고 있는 약의 종류에도 큰 차이가 있다. 약국이 아닌 의약품 판매업체에서는 전문지식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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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서 보호자의 위탁을 받아 영유아를 보육하는 기관. 「영유아 보호법」에 의해 설치되는 어린이집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국공립 어린이집 :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설치·운영하는 어린이집 2. 사회 복지 법인 어린이집 : 「사회복지사업법」 에 따른 사회복지법인[이하 "사회복지법인"이라 한다]이 설치·운영하는 어린이집 3. 법인·단체 등어린이집: 각종 법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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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에 있는 마을. 역말[驛村]은 조선시대 강릉 대창도에 딸린 안인역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역말 뒤에는 산 능선이 이어지고 앞에는 안인들이 펼쳐지고, 군선강이 흘러간다. 군선강 양쪽으로는 모전의 넓은 들과 안인의 넓은 들이 펼쳐진다. 역말에는 7번국도가 지나가는데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장거리, 지서거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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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강원도 강릉시의 역사. 강릉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선사 유적지를 통해 그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 선사 유적지는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송림리, 사천면 가둔리·판교리, 강동면 안인리·하시동리, 강릉시 토성지와 지변동·교동·안현동, 옥계면 금진리 등 대부분 바닷가 호수변이나 하천 유역의 낮은 구릉 지대에서 발견되었다.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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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있었던 예국시대의 고대 성곽. 예국고성(濊國古城)은 강릉이 동예의 중심이었던 고대에 축조되었던 성곽으로 추정하며 명칭은 고대 부족국가의 명칭 ‘예(濊)’ 또는 ‘동예(東濊)’에서 유래한 것으로 판단된다. 강릉(江陵)은 본시 예(濊)의 고도(古都)로 철국(鐵國) 혹은 예국(蘂國)이라고도 하였으며 고구려의 하서량(何西良)이었다가 후에 신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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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오거리에서 교동 강릉역 육거리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지나가는 옥천동의 옛 속명을 옥거리, 옥가라 부른 데서 옥가로라고 이름하였다. ‘옥가’란 금옥상쟁(金玉相爭)이란 말에서 금옥가(金玉街)라 하였다가 ‘금(金)’ 자를 빼고 옥가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길이 723m, 폭 25m의 4차선 도로이다. 옥가로는 옥천 오거리에서 율곡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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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옥천(玉川)’이라는 이름은 옥천동 남쪽에서 수문리 쪽으로 흐르는 남대천 물이 구슬처럼 깨끗하고 맑아서 생긴 이름이다. 옥천동의 속명인 ‘옥거리’란 이름은 금과 구슬이 서로 다툰다는 금옥상쟁(金玉相爭)이란 말에서 금옥가라 하다가 ‘금’ 자를 빼고 ‘옥가’라 하다가 후에 순수한 우리말인 ‘옥거리’로 바뀐 것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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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옥천동 남대천 수문에서 교동 강릉 대로에 이르는 도로. 옥천로가 지나는 옥천동 지역은 공공 기관, 금융·보험 업체 및 의료 기관이 밀집된 강릉시의 전통적 상업 중심 지역이다. 도로가 통과하는 지역이 옥천동이어서 옥천로라고 이름하였다. 길이 764m, 폭 12m의 4차선 도로이다. 옥천로는 남대천 수문-동부 시장-강릉 대로를 연결하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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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있는 연못. 용지는 고려 말 충숙왕의 부마인 최문한(崔文漢)이 타고 다니던 말의 말굽을 고치기 위해 연못가 버드나무 가지에 매어 놓으니 갑자기 말이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연못 속으로 용이 뛰어드니 서서히 안개가 피어오르며 말이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서쪽 쑥두드렝이, 발락고개, 코풀재, 북바위, 북일로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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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입암동 입암로 삼거리에서 교동 강릉 기차역에 이르는 도로. 용지로는 강릉시의 강남 지역인 성덕동·입암동과 강북의 옥천동·교동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월드컵교가 개통되면서부터 활성화되었다. 연못가에 매어 두었던 말이 연못에 뛰어들어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강원도 기념물 제3호인 용지(龍池)를 지나므로 용지로라고 이름 붙였다. 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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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릉~원주 고속 철도 도심 구간 지하화로 생긴 폐철도 부지에 조성 중인 거리 공원. ‘월화거리’라는 지명은 강릉 지역의 고유 설화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남대천 옆 연화봉 반석 위에 정자가 있었는데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6세손인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의 아버지인 무월랑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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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또는 집단. 인구는 인간 집단의 계수로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구획된 일정한 지역 내에 있는 주민의 총체를 의미한다. 지리, 인종, 종교, 국적, 자연, 사회 등 경험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집단을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세계 인구, 한국 인구, 여자 인구, 불교 인구, 노동 인구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또한 인구는 어떤 특정 시간에 일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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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교의 교황권을 부정하고 교회의 운영을 장로들의 합의제로 하는 개신교 교파. 장로교회가 강릉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45년 9월의 일이다. 1945년 9월 금학동 92번지에 있던 강릉금정교회가 강릉중앙교회로 이름을 바꾸게 되자 1944년 7월 폐교된 대화정 교회의 교인 가운데 이학원, 박병수 등 장로교인들은 1945년 9월 19일 강릉읍 임당동 133번지 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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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생활 형태로 삶이 바뀌면서 재래시장은 점차 그 거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젊은 사람들의 기호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재래시장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지역민들의 삶과 함께 해왔다. 재래시장 속에서 강릉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재래시장은 조상 때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온 삶의 터전으로, 지역 사람들의 삶의 냄새가 배어나는 곳이다. 삶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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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마을. 제멩이[濟民院]는 조선시대에 이곳에 관원들의 숙소인 제민원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제민원은 대창역에 딸린 구산역[강릉시 성산면 구산리 소재]과 횡계역[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소재] 사이에 있었다. 제민원이 변천하여 제멩이가 되었다. 아랫제멩이 앞으로는 가마골에서 흘러온 물이 흐르고, 윗제멩이 앞으로는 대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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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중앙동은 강릉시의 중심부에 있는 지역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3년에 남문동과 성남동이 중앙동으로 통합되었다가 다시 1998년 중앙동이 임당동과 합쳐져 중앙동으로 되었다. 1955년 9월 1일 강릉시 승격 당시 남문동, 성남동, 임당동으로 나누어졌다. 그 후 1983년 10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남문동과 성남동을 통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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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창녕조씨의 시조는 신라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조계룡(曺繼龍)이다. 신라 진평왕의 장녀로 후에 선덕여왕이 된 덕만공주(德曼公主)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강릉에 입향한 시조는 부원군파(府院君派)의 후손인 직장공(直長公) 조철(曺哲)과 창산군파(昌山君派)의 후손인 조학서(曺鶴瑞)이다. 조학서(曺鶴瑞)는 임진왜란 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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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예국의 신화적 인물로 강릉의 육성황신(肉城隍神)으로 봉안된 설화 인물. 창해역사에 대한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장량열전(張良列傳)」, 홍직필(洪直弼)[1776~1852]의 『창해역사 유허기』, 홍만종(洪萬宗)의 『순오지(旬五志)』 등에 나타나고 있다. 창해역사는 강릉이 낳은 인물로, 신비한 탄생설화와 장사설화의 형태로 전승된다. 창해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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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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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릉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릉 지방의 3·1 독립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초순 강릉 읍내에서 시작되어 외곽 면 소재지로 확산되면서 5월까지 지속되었다. 강릉 3·1 독립 만세 운동은 강릉 보통학교 이명의(李明儀)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비밀 결사 조직, 강릉 청년회 최선재(崔善在)·조대현(曺大鉉)·최선근(崔善根)·최돈옥(崔燉玉)·김진숙(金振淑)·최돈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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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홍제동 주민 센터 앞에서 옥천동 율곡로에 이르는 도로. 도로가 옛날 강릉 읍성의 토성이 있던 곳을 지난다고 하여 토성로라고 이름 붙였다. 토성로는 과거 강릉 읍성 지역이던 임당동, 용강동, 홍제동 일대의 구시가지 주택 밀집 지역을 따라 오래전에 개설되고 정비 확충된 도로이다. 길이 1,974m, 폭 12m의 2차선 도로이다. 토성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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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연곡면에 있는 행정리. 임진왜란 때 군량을 헌납한 공으로 동지중추의 벼슬을 한 권신이 퇴곡장을 짓고 살았고, 권신의 후손 퇴곡공 권칭이 강릉 옥가[옥천동]의 노남[옥천 초등학교 일대]에서 벼슬을 하다가 그만두고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권신의 호를 따서 ‘퇴곡’이라는 마을 이름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로는 마을에 안동 권씨가 들어오기 전에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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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속하는 행정동. 경포호 남쪽에 있다 하여 포남동이라 하였다. 또, 옛 지역명인 ‘보람이’를 한자화한 음이기도 하다. 즉, ‘남쪽을 보다[見南]’라고 하여 남쪽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보람이를 한자화하여 ‘포남(浦南)’이라고 한 것이다. 본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으로 1914년 운곡리(雲谷里), 대창리(大昌里)와 수문리(水門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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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포남동에 속하는 행정동. 경포 남쪽에 있다 하여 포남동이라 하였다. 또한 이 동네 옛 이름인 ‘보람이’를 한자화 하여 ‘포남(浦南)’이라고 하기도 한다. 보람이는 ‘보다(見)+남(南)’라는 말로 ‘남쪽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본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으로 1914년 운곡리(雲谷里), 대청리(大昌里)와 수문리(水門里) 일부를 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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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경포호 남쪽에 있는 법정동. 경포 남쪽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포남(浦南)’이라고 하나, 포남동의 옛 이름이 보람이로 ‘포남’은 ‘보람이’를 한자화한 음이다. 포남동은 원래 강릉군 북일리면 지역으로 1914년에 운곡리(雲谷里), 대창리(大昌里)와 남일리면의 수문리(水門里) 일부를 합하여 군내면에 편입하였다가, 1955년 9월 1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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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명주동 남대천에 있는 보(洑). 하평보(下坪洑)는 하평들에 물을 대기 위해 남대천[홍제동 경방 앞]에 보를 만든 데서 유래되었다. 남대천 하구 북쪽에 있는 하평들이 남대천 하구의 강바닥보다 높아서 남대천의 물을 끌어다 쓰지 못하기 때문에 남대천 상류 내곡교 아래에 만든 보이다. 1994년에 하평보 개량 공사를 하였다. 원래 하평들로 흐르는 물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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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일정 구역. 강릉 지역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동해안 한가운데 위치하여 오랫동안 영동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선사 시대부터 영동의 중심지로서 경상북도 동해안의 울진·평해와 평창군 봉평면·용평면·진부면·대관령면, 정선군 임계면 등의 광역 생활권의 행정·군사 중심지였다. 좁지만 남북으로 길게 들을 이루어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