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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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 지역 유학자들의 계회(契會). 조선 초기의 재지사족들은 중앙의 숭유억불 정책에 힘입어 성리학을 수용하여 정착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었으며, 강릉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리학을 수용한 재지사족은 기본적으로 성리학을 교양으로 하여 입신출사를 지향하였으며, 나아가 성리학적 향촌질서를 추구하였다. 강릉 지역 금란반월회의 성향도 이와 같았다. 한편, 조선 초기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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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광철(金光轍)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 김광철의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다. 헌납(獻納)을 지낸 김대(金臺)의 후손이다. 후손 김한성(金漢星) 등이 묘비를 세워 그의 행적을 후세에 전했으나 세월이 지나 마모되어 그 행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1931년 다시 건립하였다. 김광철의 묘가 있는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핸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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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등가(登可), 호는 반곡(盤谷). 진사출신으로 전객령(典客令) 김천(金蕆)의 5대손으로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현령인 김윤귀(金允貴)이며, 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고 어머니는 강릉왕씨(江陵王氏)로 현감 왕갱(王䡖)의 딸이다. 김대(金臺)는 명주군왕인 김주원의 21대 후손으로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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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대(金臺)의 무덤 앞에 세운 비. 1831년(순조 31)에 세웠다가 비문의 자획이 마모되어 1985년에 다시 세웠다. 12대 손인 김병혁(金秉爀)이 지었고, 17대 손인 김수남(金壽南)이 글씨를 썼다.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탑동에 있다. 비석은 전체높이 183㎝, 비신 130㎝, 폭 43㎝이다. 비의 제목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통훈대부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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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퇴옹(退翁).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5대손으로 현령 김윤귀(金允貴)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대(金臺)이고 어머니는 강릉권씨 권경수(權景壽)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진(金光軫)과 김광철(金光轍)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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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인(金訒)의 묘지석(墓誌石). 김인[1516~1571]의 자는 대인(大仁)이다. 본관은 강릉이며 김주원의 후손이다. 증조는 증통정대부 예조참의 행봉정대부 사간원헌납(贈通政大夫 禮曹參議 行奉正大夫 司諫院獻納)을 지낸 김대(金臺), 할아버지는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봉정대부 종부시첨정(贈嘉善大夫 吏曹參判 行奉正大夫 宗簿寺僉正)을 지낸 김세훈(金世勳),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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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향촌 사회 운영을 주도한 세력. 사족은 조선 사회의 지배계층으로서 향촌 내에서 통혼권과 학맥의 형성, 농장 소유로 인한 경제적 토대 마련 등을 통해 지역적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동시에 과거급제를 통한 정계진출과 조선시대 국가통치 이념인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지역사회에 구축하면서 향촌사회 운영을 주도하였다. 조선 초기에 향촌세력은 향리를 중심으로 한 이족과 고려 말 품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