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선비. 지봉(芝峰) 김몽호(金夢虎)의 후손이다. 사람됨이 준엄하고 기풍과 도량이 뛰어 났으며, 기강을 바로잡아 세우며 엄숙단정 하였다. 강릉부사 소두산(蘇斗山)이 벼슬이 갈려 돌아갈 때 대관령을 넘으면서 “내가 비록 너희 고을을 떠나지만 김격(金格), 김니(金柅) 형제는 정말로 두려워하였다.”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통덕랑(通德郞) 김니(金柅)를 기리는 재실. 소실된 재실을 6·25사변 직후 몇 년 지나서 재건립하였으나 우중(雨中)을 제외하고는 재실 오른쪽 옆 산에 있는 묘소에서 제사(음력 3월 20일)을 지낸 까닭에 재실은 무명무실 한 채 오늘날까지 이른다. 재사는 목조와가(木造瓦家)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주위는 슬레이트로 벽을 두르고 있다. 형태는 남아 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