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진
-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명단과 행적을 기록한 문집. 강릉김씨 본관의 근원과 보배로운 책자라는 뜻으로 『명원보감(溟源寶鑑)』이라 하였다. 동성으로 관향이 다른 동성이관(同姓異貫)은 경주김씨를 위시하여 84개 성씨이고, 동원이성(同源異姓)은 강릉왕씨 등 5개 성씨이다. 강릉을 관향으로 하고 있는 강릉김씨 문중에서 시조인 명...
-
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임(子任), 호는 이설당(梨雪堂). 김세훈(金世勳)의 아들이고, 애일당(愛日堂) 김광철(金光轍)의 아우이다. 1519년(중종 14) 사마시 생원에 입격하였고, 1526년(중종 21) 별시에 을과로 합격하였다. 성품이 중후(重厚)하고 덕이 높고 도량이 컸다고 한다. 당시 이기(李芑)나 윤원형(尹元衡)이 세력을 떨치며 권력을 농단할 때에도 자신의 뜻을 전혀...
-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광철(金光轍)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 김광철의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다. 헌납(獻納)을 지낸 김대(金臺)의 후손이다. 후손 김한성(金漢星) 등이 묘비를 세워 그의 행적을 후세에 전했으나 세월이 지나 마모되어 그 행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1931년 다시 건립하였다. 김광철의 묘가 있는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핸다리에...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퇴옹(退翁). 부정(副正) 김경생(金慶生)의 5대손으로 현령 김윤귀(金允貴)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김대(金臺)이고 어머니는 강릉권씨 권경수(權景壽)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진(金光軫)과 김광철(金光轍)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합격...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판교리의 옛 이름. 너다리[板橋]는 마을 앞으로 조그마한 내가 흘렀는데, 사람들이 내를 그냥 건널 수가 없어서 널빤지를 올려놓고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너다리를 한자로 판교(板橋)라 했고, 판교는 나중에 행정리 명이 되었다. 너다리마을 뒤에 길게 내려진 산 능선이 지네 형국인데, 이 줄기는 운계봉...
-
조선시대 향촌 사회 운영을 주도한 세력. 사족은 조선 사회의 지배계층으로서 향촌 내에서 통혼권과 학맥의 형성, 농장 소유로 인한 경제적 토대 마련 등을 통해 지역적 기반을 확고히 하였다. 동시에 과거급제를 통한 정계진출과 조선시대 국가통치 이념인 성리학적 지배질서를 지역사회에 구축하면서 향촌사회 운영을 주도하였다. 조선 초기에 향촌세력은 향리를 중심으로 한 이족과 고려 말 품관을...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천진리에 있는 김광철(金光轍)이 살았던 집터. 김광철은 조선시대의 문인으로 예조참판을 지냈고, 대문장가 허엽(許曄)의 장인이자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외조부이다. 김광철은 아들을 얻기 전에는 외손이라도 자신의 집에서 잉태시키지 않으려 했으나 출가한 첫째 딸이 애일당에서 허엽과 동침하여 허봉(許篈)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
조선 중기의 선비. 최운우(崔雲遇)는 강릉 12향현 중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강릉. 최문한(崔文漢)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교수 최담(崔澹)이고, 어머니는 진주 강씨(晋州姜氏) 참봉 강준지(姜俊智)의 딸이다. 진사 최호(崔浩)에게 입양되었다. 김광진(金光軫)에게서 수학한 최운우는 1552년(명종 7) 생원에 급제하였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는 못...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에 있는 행정리. 판교리의 옛 이름은 너다리이다. ‘너다리’는 판교리 마을 앞으로 조그마한 내가 흘렀는데 사람들이 그 내를 그냥 건널 수가 없어서 냇가에 널빤지를 올려놓고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1916년 이설당리와 조부동을 합하여 판교리가 되었다. 1955년 9월 1일 법률 369호에 의거하여 강릉읍이 강릉시로 승격함...
-
하평마을에 남아 있는 문화유적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화가 남아 있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운양초교 아래에서 옛 철길까지의 넓은 들을 향교평(鄕校坪)[생계들]이라고 한다. 옛날 이 논이 강릉향교의 소유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논 부근에 12가구가 살았으나 병자년 포락 이후 모두 이사하여 지금은 그 터가 다 논이 되었다....
-
하평마을이 배출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정리해본다. 먼저 이설당(梨雪堂) 김광진(金光軫)[1495~?]이 있다. 그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임(子任)이며 본관은 강릉 사천이다. 아버지는 김세훈(金世勳)이고, 형은 동지중추사 김광철(金光轍)이다. 1526년(중종 21) 생원으로서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1537년 시강관이 되어 궁중의 법률을 엄격하게 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