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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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김담(金譚), 아들 김경황(金景滉)·김경시(金景時) 형제, 손자 김한(金垾) 등 삼세사효자의 행실을 기록한 글. 김담, 김경황·김경시, 김한 등은 강릉김씨로 3대에 걸쳐 4명의 효자였다. 이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삼세사효자(三世四孝子)의 행실을 기록하여 정려각에 걸었다. 송시열이 관동지역을 유람하면서 강릉에서 삼세사효자의 효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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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연곡면 행정리에 있던 강릉김씨의 정려각을 강릉시 대전동 선영 인근으로 이건한 사실을 기록한 기문. 절부 강릉김씨의 열녀각은 원래 강릉시 연곡면 행정리에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되어 마모가 심해지고 또 도로 개설로 인해 이건이 불가피하였다. 이에 족인들은 이건을 논의하여 선영에 있는 강릉시 대전동 소재 문토 인근 대로변에 정려각을 이건하고 그 이건 사실을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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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남대천 옆 연화봉의 반석 위에 있는 월화정의 김무월랑과 연화부인에 관련된 전설. 월화정은 신라 명주군왕의 부모인 김무월랑(金無月朗)의 ‘월(月)’자와 박연화부인(朴蓮花夫人)의 ‘화(花)’자를 따서 명명한 정자이다. 이 정자는 1933년 강원도지사 이범익으로부터 하천부지 점용허가를 받아 공사비 3,730원을 모금하고 강릉 임영관 건물 일부를 옮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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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이 지은 별연사의 고적에 대한 기록. 「별연사 고적기」는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7에 수록되어 있다. 강릉에 있는 별연사에 전승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는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어머니인 연화부인(蓮花夫人) 박씨의 일화가 수록되어 있다. 허균이 기록한 이 글은 서술 전개상 다섯 개의 문단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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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한림공파 관련 아홉 인물들의 위패를 창덕사(彰德祠)에 봉안하며 기록한 기문(記文). 강릉김씨 한림공파 후손들은 1965년 선조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강릉시 홍제동에 창덕사를 창건하고 선조 9명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994년 도시계획으로 사우를 현재의 위치인 강릉시 운정길 107-11[운정동 292번지]로 이건하면서 9명의 위패도 함께 옮겨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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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강릉김씨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보를 정리하여 간행한 족보.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은 크게 족도(族圖)·대동보(大同譜)·파보(派譜)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반 족보처럼 정간(井間)을 지어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계보만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가계를 기록한 것이다. 대동보가 전국적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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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1434~1493]의 시문집. 김시습(金時習)은 자를 열경(悅卿)이라 했고, 관향은 강릉이며, 호를 청한자(淸寒子)·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매월당(梅月堂)이라 했고 한때 불교에 귀의한 바 있어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했다. 어려서 세종대왕 앞에서 시를 지어 놀라게 했고 상으로 받은 비단을 이어 끌고 가지고 나와 그 지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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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을 중심으로 후손들의 명단과 행적을 기록한 문집. 강릉김씨 본관의 근원과 보배로운 책자라는 뜻으로 『명원보감(溟源寶鑑)』이라 하였다. 동성으로 관향이 다른 동성이관(同姓異貫)은 경주김씨를 위시하여 84개 성씨이고, 동원이성(同源異姓)은 강릉왕씨 등 5개 성씨이다. 강릉을 관향으로 하고 있는 강릉김씨 문중에서 시조인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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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재실 관련 사항과 김시습(金時習)의 저술 등을 묶어서 편찬한 문중의 자료집. 강릉김씨는 신라 명주군왕 이래 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씨족으로 시조인 김주원(金周元)과 관련된 재실 상량문을 비롯하여 중수기, 신도비문과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의 「금오신화(金鰲新話)」 등 관련내용을 모아서 강릉김씨대종회에서 편찬한 문집이다. 『명원산고』의 서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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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江陵金氏) 왕족과 분파의 사료와 시조 김주원(金周元) 관련 사적을 정리한 책. 김연희(金演禧)의 서문에 의하면 1천여 년의 역사 사료를 모아 선조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하였는데, 이 책은 김봉기(金鳳起)가 편찬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상권과 하권으로 나누어 상권에는 왕족도, 분파도와 역사, 본기 등을 싣고 하권에는 구체적인 명주군왕(溟州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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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의 전설과 전통민요 가사를 엮은 책. 이 책은 국판 114쪽 분량으로 ‘우리 마을 이야기’와 ‘우리 마을 노래’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17건의 전설을 102쪽까지 싣고 ‘우리 마을 노래’는 103쪽부터 끝까지 민요, 동요 등의 가사를 담았다. ‘우리 마을 이야기’에는 강릉김씨 시조와 연화봉 자리, 경포호의 전설, 고양이밥 삼백 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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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 혼인, 입양 등으로 관계되어 공동 생활체를 꾸려가는 구성원을 총칭하는 말. 가족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공동체 단위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구성원은 시대마다 혹은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약간씩 차이를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남녀 부부가 중심이 되고 여기에 성혼하지 않은 자녀와 부모를 토대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입양, 친분 등과 같이 법적 절차에 따른 구성원도 가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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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중리에 있는 마을.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냇가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갈대가 많은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갈골 뒤에는 산 능선이 이어져 동쪽으로 내려가고, 마을 앞에는 넓은 들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 사천천이 흐르고 있다. 갈골 가운데로 흐르는 내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흰재와 석구가 있고, 내를 따라 내려가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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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모산로 170-52[담산동 313번지]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전통 한옥. 원래 강릉김씨가 대를 이어 살았으나 후에 찰방이라는 벼슬을 지낸 남석이 이사하면서 찰방집이라고 불렸다. 이후 남석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았으며 1992년에 현 소유주로 바뀌었다. 강원도 강릉시 모산로 170-52[담산동 313번지]에 있다. 강릉시 남서쪽 방향으로 2㎞쯤 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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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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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김주원이 787년에 당시 북빈경(北濱京)이었던 강릉으로 옮겨 명주 지역 9군(郡) 25현(縣)을 관장하는 명주군왕에 책봉된 이래 후손들이 누대에 걸쳐 세습하면서 형성되었다. 김주원은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이며,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6세손이다. 785년 선덕왕이 죽고 후사가 없자 신하들은 무열왕계의 직계인 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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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부정공파(副正公派)의 시조인 김경생(金慶生)의 비. 김경생은 1326년(고려 충숙왕 13)에 출생하여 조선조에 종3품 중직대부(中直大夫)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냈고, 부인은 숙인(淑人) 강릉최씨로 판서 육성군 최안호(崔安灝)의 딸이다. 둘째 부인은 숙인(淑人) 삼척심씨로 내사사인(內史舍人)을 지낸 삼척심씨 시조 심동로(沈東老)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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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88-11번지에 위치한 강릉김씨 종친들의 모임.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유덕(遺德)을 흠모하고 종친의 친목을 도모한다. 1565년(명종 20)에 숙간공 김첨경(金添慶)[1525~1583]이 명주군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 능소 앞에 재실을 지어 종중회의 장소로 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재실 전체가 소실되자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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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 박혁거세(朴爀居世)의 후손인 박순(朴純)이 1200년대에 강릉에 정착한 이후 누대에 걸쳐 세거한 박씨. 박씨는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본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중 박혁거세의 4세손 파사왕의 후손인 박순이 1200년대 강릉으로 이주한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를 이어 강릉 지역에 살면서 대성(大姓)을 이루었으며,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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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은 뛰어난 자연 경관을 가지고 있어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이를 소재로 시문을 지었고, 또 이 지방 문인들과 교유(交遊)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자연의 정취에 몰입되어 감흥을 읊던 이런 정서는 신라의 화랑들로부터 고려, 조선의 시인 묵객들로 이어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누구라도 시인이 되는 고장, 강릉의 문인들- 아름답고 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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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경주최씨상계세보』에 의하면 강릉최씨 시조 최필달은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의 후예로 전해지나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필달은 고려 초기에 경주최씨에서 분적(分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필달은 고려 초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삼한벽상개국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이 되었으며, 영첨의좌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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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족, 혈연, 지연, 학연, 촌락, 동문수학, 나이(동갑) 등을 매개로 결성되는 결사체. -‘계(契)’를 아십니까 - 강릉 지역의 전통적인 계문화 계라고 하면 ‘아줌마들’이 식당에서 벌이는 회식 자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계모임, 계가 깨졌다, 패가망신… 이런 말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목돈을 모으는 위험하고 원시적인 방식이 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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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리선발 시험. 과거시험은 문과·무과·잡과로 나뉘어 실시되었다. 문과는 식년시와 별시로 나누어 시행되었는데, 식년시는 초시[향시]·복시[회시]·전시의 세 단계를 거쳐야 했다. 강원도의 경우 초시에서 15명을 선발하여 복시에 응시토록 하였다. 또한 사마시는 초시와 복시로만 실시하였는데, 강원도 향시에서는 45명이 선발되어 복시에 응시할 수 있었으며, 이 중 복시에 합격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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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소설가 허균(許筠)의 「누실명(陋室銘)」을 써놓은 시비. 1569년(선조 2) 강릉시 사천면 교산 애일당(愛日堂)에서 태어난 허균의 문학사상을 기리기 위해 1983년 8월에 세운 시비이다. 교산 시비는 이곳을 가로질러 애일당을 감싸 안고 바다로 향하는 교산의 이름을 따서 아호를 삼은 허균과 관련된 시비를 세운 것에서 유래되었다. 1983년 8월 전국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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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상(權殷常)과 그의 부인 강릉김씨의 효자비. 부효부열(夫孝婦烈, 남편은 효자이고 부인은 열부)은 예나 지금이나 드문 경우이어서 반드시 그 정신을 숭상하고 널리 알리기 위하여 현손인 권오식(權五植)이 자료를 수집하여 이 비석을 세웠다. 이 효자비는 권은상이 돌아가신 지 71년이 되는 1944년에 세웠다. 김윤경(金潤卿)이 글을 짓고 최돈국(崔燉國)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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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1리와 금산2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릉김씨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 금산리(金山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조선 중종 대 김광헌(金光軒)이 세운 마을이라 하여 건금리(建金里)[갱금]라 하던 것이 1916년 장안동(長安洞), 제동(堤洞), 구동(鷗洞), 성하(城下)를 합하여 금산리라 했다. 금산리에는 강릉 최씨 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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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강릉. 자는 자용(子容). 강릉김씨 부정공파(副正公派) 효자공 금산파(金山派) 파조이다. 아버지는 김당(金譡)이고, 어머니는 강릉최씨 최대연(崔大連)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김광헌(金光軒)이다. 부인은 강릉최씨 참봉 최읍(崔浥)의 딸과 강릉함씨 함비용(咸備容)의 딸이다. 함비용의 딸은 오봉서원 건립을 주도했던 함헌(咸軒)의 증손녀이다. 숙부 김담(金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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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광철(金光轍)의 행적을 기록한 신도비. 김광철의 자는 자유(子由),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다. 헌납(獻納)을 지낸 김대(金臺)의 후손이다. 후손 김한성(金漢星) 등이 묘비를 세워 그의 행적을 후세에 전했으나 세월이 지나 마모되어 그 행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1931년 다시 건립하였다. 김광철의 묘가 있는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 핸다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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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효자인 김담(金譚)[1522~1605]의 효행을 기리는 묘비. 김담의 자는 담지(譚之), 호는 보진재(齋眞齋), 본관은 강릉이다. 강릉김씨 부정공파(副正公派) 보진재공(葆眞齋公) 노암파(魯巖派) 파조(派祖)이다.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강릉부사로 있을 때 김담의 효행을 천거하며 시를 지었다. 사후에는 첨지중추부사에 증직되고 정려가 내려졌으며, 「삼강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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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대(金臺)의 무덤 앞에 세운 비. 1831년(순조 31)에 세웠다가 비문의 자획이 마모되어 1985년에 다시 세웠다. 12대 손인 김병혁(金秉爀)이 지었고, 17대 손인 김수남(金壽南)이 글씨를 썼다.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신복탑동에 있다. 비석은 전체높이 183㎝, 비신 130㎝, 폭 43㎝이다. 비의 제목은 “증가선대부 이조참판 행통훈대부 사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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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득의(金得毅)[1595~1653]의 묘비. 김득의는 강릉김씨로 자는 임경(任卿)이다. 김주원의 후손이며, 5대조는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이다. 김득의의 묘비는 1818년(순조 18)에 세워졌다.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김득의의 묘 앞에 있다. 안인 대동마을에서 영동화력발전소 사원 사택을 지나자마자 우측 야트막한 산에 있다.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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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숙무(叔武), 호는 지봉(芝峰). 김주원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수(金鐩)이다. 1582년(선조 15)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좌랑, 호조좌랑, 정언, 공조참의, 판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써서 세상에 이름이 났다.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정경세(鄭經世)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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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김반석(金盤石)의 묘비. 김반석(金盤石)의 자는 자안(子安), 1455년에 출생하였고, 1522년에 병으로 졸하였다. 아버지는 홍천훈도 김지(金墀), 할아버지는 김필양(金匹陽), 증조는 김윤귀(金允貴), 외조는 강릉최씨 최백종(崔伯宗)이다. 부인은 강릉최씨 최유남의 딸이다. 아들은 김광주(金光輳), 김광헌(金光軒), 김광로(金光輅), 김광복(金光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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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 김연생(金演生)[1859~1921]은 강릉김씨 김병도(金秉鍍)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성심껏 공경하였으며,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부모를 봉양함에 있어 맛있는 나물이나 고기가 생기면 자기의 입에 대는 일이 없이 아버지에게 드렸으며, 혹간 밖에서 별미의 음식을 보게 되면 그것을 나무 잎사귀에 싸서 아버지에게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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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인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의 묘비. 김열은 1506년(중종 원년)에 출생하였으며 강릉김씨 시조 김주원(金周元)의 25세손으로 진사 김광헌(金光軒)의 장자이다. 관직은 평강훈도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세칭 임영처사(臨瀛處士)로서 강릉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1812년(순조 12)에 6세손 김처진(金處鎭), 김국명(金國嗚), 8세손 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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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인 김영연(金永淵)의 묘비. 김영연은 강릉김씨로 아버지는 호조참의를 지낸 회정(檜亭) 김자흠(金子欽)이다. 어머니는 청풍군수를 지낸 강릉최씨 최득유(崔得濡)의 딸이다. 부인은 강릉최씨 생원 최맹섭(崔孟涉)의 딸이다. 성품이 고명하여 시주(詩酒)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묘소 앞에 있던 옛 묘비가 오래되어 글자를 판독하기 어려워지자 1959년 15세손 김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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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덕수(德叟), 호는 괴당(槐堂). 김주원(金周元)의 후손이다. 부친은 김여명(金汝明)이고, 모친은 김지(金輊)의 딸이다. 1468년(세조 14)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476년(성종 7)에 별시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 사록(司祿), 전적(典籍), 주부(主簿),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전중감찰(殿中監察)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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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인 김윤신(金潤身)의 묘비. 김윤신(金潤身)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강릉 출신이다. 호는 괴당(槐堂), 자는 덕수(德叟)이다. 금란반월회를 창계했던 인물 중에 한사람이다. 김윤신 사후에 후손인 판서(判書) 김상익(金尙翼), 김형진(金衡鎭) 등이 주도하여 비를 세웠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강릉김씨 옥가파 종산(宗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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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왕족이며 강릉김씨의시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은 김경신(金敬信)과의 왕위 계승전에서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退去)하였다. 원성왕은 786년(원성왕 2)에 김주원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책봉하고, 명주·익령(翼嶺)[지금의 양양]·삼척(三陟)·근을어(斤乙於)[지금의 평해]·울진(蔚珍) 등을 식읍으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김주원의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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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재상인 김주원이 명주군왕의 봉작(封爵)과 함께 받은 강릉 일대의 수조지(收租地). 785년 선덕왕이 죽은 후에 김주원(金周元)은 김경신(金敬信)과 왕위계승을 위한 다툼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김경신이 원성왕으로 즉위하였고, 김주원은 패배하여 명주(溟州)[지금의 江陵]로 퇴거(退去)하였다. 명주는 김주원의 선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는데, 특히 김주원의 아버지인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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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입향한 남양(南陽)을 본관으로 하는 홍씨(洪氏). 남양홍씨의 시조는 홍은열(洪殷悅)이고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일대에 입강한 시조는 홍대기(洪大棋),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일대의 입강시조는 홍충양(洪忠陽)이다. 홍충양은 강릉김씨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세 아들을 두었는데 생원공 홍인국(洪仁國), 홍인업(洪仁業), 홍인선(洪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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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명절날·조상의 생일 등에 지내는 제사. 절사(節祀) 또는 차사(茶祀)라고도 하며 아침에 올리는 제사이다. 현재는 설과 추석에 가장 많이 지내고 지역이나 가문에 따라 대보름·한식·단오·칠석·중양절·동지 등에 지내기도 한다. 조상에게 달·계절·해가 바뀌고 새로 찾아옴을 고하고 절식(節食)과 절찬(節饌)을 올리는 의례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성씨별로 유지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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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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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신라 하대에 쌓은 것으로 추측되는 성. 신라 하대에 원성왕과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실패한 김주원(金周元)이 명주(溟州)[지금의 강릉]로 퇴거한 이후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에 있다. 명주성(溟州城)은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 장안동의 북쪽 구릉(122m)을 정점으로 그 남사면의 2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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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본동마을과 성산면 보광리 삼왕 사이에 있는 골짜기. 무일(舞日)은 예전에 강릉김씨들이 시조인 김주원(金周元)의 잃어버린 묘(명주군왕릉)를 찾으러 다니다가, 이곳 숲에 와서 능을 찾게 되자 기뻐서 춤을 추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무일은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곤신봉 줄기가 동쪽으로 내려오는 넓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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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자는 자소(子昭). 강릉박씨 양주파(襄州派)의 파조이다. 고조는 박연(朴演)으로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였고, 증조 박지계(朴之桂)는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냈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박중신(朴中信)으로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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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고조는 고려 때 국자박사(國子博士)였던 박연(朴演), 증조는 고려 때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이다. 조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낸 박중신(朴中信)이 아버지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과 광주이씨 이초지(李初之)의 딸이다. 박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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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호는 수암(修庵). 고려 때에 국자박사(國子博士)를 지낸 박연(朴演)이 고조이고, 고려 때에 예문관제학참지정사(藝文館提學參知政事)를 지낸 박지계(朴之桂)가 증조이다. 할아버지는 박자검(朴自儉)으로 조선 세종 때에 단천군수를 지냈다. 아버지는 세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고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된 박중신(朴中信)이다. 어머니는 강릉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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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박제상의 후손이며 종성부사(鍾城府使) 박희유(朴希有)의 5대손으로 중서령 박종대(朴從台)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전객(典客)인 박령연(朴令演)이다. 아버지는 참지정사인 박지계(朴之桂)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김언지(金彦之)의 딸이다. 1364년에 태어나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충효를 잘 실천하였고 백성들에게는 덕을 세우는 데에 힘써서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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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자(字)는 숙립(叔立). 할아버지는 봉선대부서운부정(奉善大夫書雲副正) 박지계(朴之桂)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지단천군사(通政大夫 知端川郡事)를 지낸 박자검(朴自儉)이며 어머니는 봉정대부 봉상부령지제교 겸 예문춘추관편수관 성균직강(奉正大夫 奉常副令知製敎 兼 藝文春秋館編修官 成均直講) 밀성김씨 김지(金祗)의 딸이다. 먼저 강릉김씨 김예(金輗)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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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김담(金譚)을 제향한 재실. 보진재(葆眞齋)는 강릉김씨 노암파 종손 김재인(金載仁) 소유로, 하늘이 내린 효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효자 김담의 제향을 위한 재실이다. 제향 시기는 매년 음력 9월 10일이다. 강릉시 모산로223번길 28-10[장현동 334번지]에 숭모재(崇慕齋)가 따로 있다. 보진재는 원래 정려각이었다. 1571년(선조 5)에 강릉부사 봉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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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나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 사우(祠宇)는 선현 봉사와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된 서원과 문중의 중요 인물의 제향처로 활용되었던 재실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강릉 지역에서는 서원은 2개이고, 사우는 12개, 당은 4개, 재사는 56개이고, 기타로 문정공부조묘와 종선각이 있다. 위의 현황에서 향중사림이나 부민 발의로 건립된 오봉서원,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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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명주군왕릉(溟州郡王陵) 앞에 있는 마을. 명주군왕(溟州郡王)인 김주원(金周元)과 그의 아들 두 분이 이곳에 있어 ‘삼왕(三王)’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다. 처음에 ‘삼왕동(三王洞)’이라 하였지만 ‘왕(王)’자를 지명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여 ‘왕’자와 음이 같은 ‘왕(旺)’자를 썼다. 삼왕동 사람들은 보광리[보겡이] 삼왕이라 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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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운정동과 회산동 지역에 형성된 삼척심씨들이 함께 모여 사는 마을. 삼척심씨는 고려 공민왕 때 심동로(沈東老)가 개성으로부터 강원도 삼척군으로 이주하면서 강원 영동지방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심동로 이후 자손들이 강릉으로 이주하여 이 지역에 영구히 정착하였다. 이후 그 자손들이 번창하여 강릉시 운정동, 회산동, 그리고 강동면 모전리 일원에 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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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성씨. 성(姓)은 혈족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제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성을 널리 쓰게 된 것은 고려 중엽부터이다. 성에는 관(貫)이 있는데, 적(籍)·본(本)·본관(本貫)·관향(貫鄕)이라고도 한다. 강릉에 거주 해 온 성씨와 관련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를 통해 그 초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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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에 있는 마을. 송촌(松村)이라는 명칭은 예전에 이 지역에 소나무 숲이 우거져서 생긴 이름이다. 송촌은 괘방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있으며, 앞은 군선강의 하류와 넓은 안인들이 펼쳐져 있다. 송촌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대포동이 있고, 북쪽으로 가면 안인리의 장터말이 있다. 송촌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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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평의공파 선조들의 묘제를 위해 건립한 재실(齋室). 강릉김씨(江陵金氏) 평의공파(評議公派) 재실로 주변에는 평의공파 묘소가 다수 분포해 있다. 김지(金輊), 김자흠(金子欽), 김자장(金子鏘)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재실의 구성은 정면에 숭덕재, 좌우측에 동재와 서재 그리고 입구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담 밖에는 숭덕재중건기념비(崇德齋重建記念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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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 평의공파 종중 소유의 숭덕재 건립 내력과 중수 사실을 적은 기문. 숭덕재(崇德齋)는 일명 두호미재(豆乎彌齋)로 강릉김씨 평의공파(評議公派)의 파조(派祖)인 김지(金輊)를 모신 곳으로 1564년에 건립되었다. 1564년 김지의 후손들이 숭조애친사상(崇祖愛親思想)을 고취하고 종친화합(宗親和合)을 도모하며, 종토(宗土)에서 생산되는 도조(賭租) 및 기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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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을 모신 사당. 여말선초에는 흥복암(興福庵)이라 하였으나 17세기에 숭의재라 하였다. 숭의재(崇義齋) 안에는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5대조인 태종무열왕의 위패를 봉안한 숭열전이 있다. 오래 전부터 종묘를 세워 태종무열왕에 대한 향화(香火)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훼철된 후 강릉김씨 자손들의 숭조 정신에 입각하여 김진만(金振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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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군왕 전사청인 숭의재와 태종무열왕을 추모하기 위한 숭렬전(崇烈殿)의 창건과 중수의 내용이 담긴 기문. 1818년 유학 김성일(金聲鎰)과 진사 김학무(金學娬)가 쓴 「사촌재사중수기(沙村齋舍重修記)」, 1823년 후손 김계급(金啓汲)이 쓴 「재방중수기(齋房重修記)」, 1871년 교삼(敎三) 김병락(金秉洛)과 김연학(金演翯)이 쓴 「재사중수기(齋舍重修記)」, 1885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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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류서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초서로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의 8폭 병풍. 「신사임당 초서 병풍」은 신사임당이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五言絶句) 6수의 초서를 뒤에 병풍으로 꾸민 것으로 강원도 강릉시 두산동의 최돈길(崔燉吉) 고가(古家)에서 지속적으로 전해내려 왔으며, 1971년에 강릉시가 넘겨받아 현재 율곡기념관[현 강릉시오죽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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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사길(士吉), 호는 동해낭옹(東海浪翁). 삼척심씨로 시조로부터 8세손이다. 아버지는 심준(沈濬)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 아우는 심언광(沈彦光)이다. 1479년(성종 10)에 태어나 대과를 통해 관직에 출사하였으며 1556년(명종 11)에 세상을 떠났다. 1510년(중종 5)에 생원(生員)과 진사시(進士試)에 모두 합격하였고,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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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강릉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삼척. 자는 사형(士炯), 호는 어촌(漁村). 강릉 지역에 세거해 온 삼척심씨의 8세손이다. 사정(司正) 심충보(沈忠甫)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증 병조판서 심문계(沈文桂)이다. 부친은 예조좌랑을 지낸 심준(沈濬), 모친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 사직 김보연(金普淵)의 딸이다. 형은 찬성을 지낸 심언경(沈彦慶)이다. 1487년(성종 18)에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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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의 효자비와 열녀비가 보존된 비각. 열녀비 2기, 효자비 1기, 열녀 명정판(命旌版) 1개를 보존하고 있는 비각이다. 열녀비 2기는 임진왜란을 겪는 동안 정절을 지킨 권처평(權處平)의 처 강릉최씨와 권처진(權處眞)의 처 강릉김씨의 열녀비이다. 효자비 1기는 권처평의 아들로서 자결한 어머니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고 죽으로 연명하면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 권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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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안동김씨 시조에 대해서는 신라 경순왕의 손자인 김숙승(金叔承)이라는 설, 김숙승의 손자인 김이청(金利淸)이라는 설 등이 있다. 그러나 『안동김씨 세보』에는 김이청의 증손이며 고려조 명장인 김방경(金方慶)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강릉 입향시조는 김방경의 9세손인 김기(金沂)이다. 김기의 자는 영이(詠而)이고 조선 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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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교동에 있는 안동김씨 3대와 그들의 아내 2명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각. 안동김씨 삼세삼효이열지려(安東金氏 三世三孝二烈之閭)는 안동김씨 김몽상(金夢相)의 효자비와 그의 처 강릉김씨의 열녀비, 김몽상의 아들 김석진(金錫晋)의 효자비와 그의 처 강릉최씨의 열녀비, 김석진의 아들 김구(金坵)의 효자비가 있는 효열각(孝烈閣)이다. 김몽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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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진리 서낭당에는 오래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처녀가 바닷가에서 미역을 따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마침 한 수려한 청년이 배를 저어 그 앞을 지나갔고 처녀는 청년에게 한눈에 반했다. 상사병에 걸린 처녀는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을 거두었는데, 이상하게도 처녀가 죽은 다음부터 바다에서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부의 꿈에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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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진리는 조선시대의 기록부터 남아 있는 오래된 마을이라 문화유적도 많다. 안인포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남아 있다. ‘부 동남쪽 25리에 있다. 예전에는 만호영(萬戶營)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인포진은 부의 동남으로 20리에 있고 수군만호를 두었는데 성종 21년에 양양대포로 옮겼다고 한다. 안인역은 현 행정구역으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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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에 전하는 「명주가」 배경설화의 주인공. 연화부인은 강릉김씨 시조로 명주군왕이 된 김주원(金周元)의 어머니 박씨로 전해지고 있다. 연화부인과 관련된 이어척소(鯉魚尺素) 설화는 아름다운 만남으로 전한다. 신라 왕족 김주원의 강릉 이주 문제와 함께 강릉 출신 연화부인과 경주의 서생 김무월랑의 결연(結緣)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설화가 전한다. 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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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문(張振文)의 처 강릉김씨(江陵金氏)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정려각은 원래 강릉시 옥천동에 세워졌으나 장씨들이 고흥으로 낙향하면서 정려각을 가지고 가서 비(碑)만 남았었다. 1962년 강릉 시가지를 확장할 때 강릉김씨 옥가파(玉街派) 종중에 서 현재 괴당 김윤신 신도비 자리[남편인 장진문의 묘 반대편]에 이건하였으나 이 자리에 신도비를 이건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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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신세린(辛世麟)과 열부인 처 강릉김씨 그리고 아들인 신붕(辛鵬)의 효행을 기린 효열비. 영산신씨 집안에서 조상의 효행과 절의를 기리고 본받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비각에는 2개의 비가 있으며 1기는 부모인 '효자 성균진사 공릉참봉 영산신공 휘세린(孝子 成均進士 恭陵參奉 靈山辛公 諱世麟) 처 열부 강릉김씨지려(妻 烈婦 江陵金氏之閭)'의 비석은 받침돌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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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신씨 신세린(辛世麟), 신세린의 처 강릉김씨, 신세린의 아들 신붕(辛鵬)의 효행과 열행을 기리는 효열각. 신세린(辛世麟)의 처 김씨(金氏)는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으며, 남편이 죽자 다락에서 떨어져 같이 죽으려고 하였으나 집안사람들이 구해주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씨는 늘 애통하게 울면서 간장을 먹지 않았다. 소상(小祥)을 맞아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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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는 임경당(臨鏡堂) 우물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행하는 민속놀이 . 용물달기는 용수(湧水) 기원제 형식의 정월 놀이로, 정월 대보름 전날 저녁 짚으로 수신(水神)인 용의 모양을 사람 크기로 만들어 마을의 동서남북 네 곳의 우물에 용을 잠시 담갔다가 자정 무렵에 꺼낸 다음 임경당(臨鏡堂) 우물로 옮겨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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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인(蓮花夫人)과 무월랑(無月郞)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연못 구지(舊址)에 있는 누각.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강릉에서 벼슬을 하던 무월랑은 연화(蓮花)라는 아가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연화 아가씨를 보고 말하기를 “만일 그대와 전생에 인연이 있다면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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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있으며, 마을 제일 안쪽 골에 있는 골아우에 와우형(소가 누워있는 형상)의 묘자리에서 소가 나왔다고 하여 우출(牛出)이라고도 하는 자연마을. 위촌리는 원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으로,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골아우, 새잇말, 새잇말, 송두골, 항생골, 지암골을 합쳐 위촌리(渭村里)라 했다. 위촌이란 지금부터 약 450여 년 전에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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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촌리에는 유서 깊은 몇몇 집안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데, 이들 세거성씨를 알아본다. 먼저 강릉 김씨[위촌파]를 들 수 있는데, 강릉 김씨 위촌파는 매월당 김시습의 양자로 입적된 김덕양의 아들 김준현이 파조가 된다. 김덕양은 김시습의 고조인 김한신의 아우 김한경의 5세손이다. 현재 마을에는 김준현의 15세 종손인 김덕래[73살] 씨가 살고 있다. 강릉 최씨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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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 대다수가 동일한 조상에서 파생된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촌락. 동족촌락은 생활공동체로서 동일 조상에 대한 제향, 마을 운영과 관련된 대동계, 동계(洞契)와 동약(洞約) 조직 및 관리, 문중서원과 사우의 건립 등을 공동으로 하고 있다. 종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동족마을은 동성 동족의 족통과 경제적 근거를 기반으로 사회경제적 특권의 유지와 존속을 도모하였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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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형진이 강릉시에 세운 누정. 18세기 후반 구산(丘山) 연어대(鳶魚臺) 위에 건립된 정자이다. 천연정을 건립한 김형진(金衡鎭)은 향리(鄕里)에서 높은 뜻을 세우고 은둔하면서 매학정(梅鶴亭)을 건립하였다. 김형진은 강릉 지방의 거성(巨姓)인 강릉김씨(江陵金氏)이며, 누대로 재산을 상속받아 재력을 갖춘 인물로서 백련거사(白蓮居士)라 불렸다. 김형진이 지은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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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지역에서 곡신(穀神)으로 추앙받아 온 여성신격. 강원도 강릉시 대성황사에서 모셔온 12명의 신위 중 하나이다. 초당리부인(草堂里夫人)은 충청도 출신으로 강릉 초당 지역에 시집온 뒤 이 지역 사람들에게 벼농사 짓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려준 인물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초당리부인신으로 신격화하여 대성황사에 신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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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동은 상고시대에는 예(濊)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기원전 127년에 창해군으로 편입되었고 한무제 때에는 임둔(臨屯)의 땅이었다. B.C. 30년에 동예의 땅으로 계승되어 고구려 시대에는 하슬라로, 신라시대에는 하서소경의 땅으로 고구려 때에는 동원경의 속현으로 이어져 조선시대에는 진관부에 속해 있었다. 1913년 군내면, 1916년 강릉면, 1931년 강릉읍에 속했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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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주민이 거주하는 일정 규모의 집단. 인간이 생활하기 위하여 지표공간을 점거해서 거주하는 집단을 취락(聚落)이라고 한다. 취락의 규모가 큰 것을 도시(urban settlement)라 하고, 작은 것을 촌락(rural settlement)이라고 한다. 도시와 촌락을 나누는 인구의 기준도 국가마다 다르다. 국제적 기준은 2,000명이다. 한국은 이 수치의 10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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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인 최세건(崔世楗) 처 김씨의 성명·생몰연월일·자손의 성명 등을 기록한 돌. 최세건 처 김씨는 강릉김씨로 김세량(金世良)의 딸이다. 남편 최세건은 승문원 교리 최자점(崔自霑)의 아들로 비안현감(比安縣監)을 지냈다. 최세건 처 김씨는 1457년 출생하여 1535년 9월 1일에 병으로 졸하였다. 1535년 11월 30일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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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자(字)는 성숙(盛叔). 이조참판을 지내고 강릉 향현사에 제향된 최치운(崔致雲)의 손자이며, 생원 최진현(崔進賢)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죽산안씨로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안치강(安致康)의 딸이다. 부인은 강릉김씨로서 주부(主簿) 김곤(金坤)의 딸이다.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에 올랐다. 성품이 호탕하고 고매하여 술과 시로써 평생을 보냈다고 한다.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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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 있는 최세창(崔世昌)의 부인 강릉김씨의 열행(烈行)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려(旌閭). 강릉최씨(江陵崔氏) 최세창의 처 강릉김씨는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겼으며, 남편에게 지극히 순종하였다. 남편이 죽자 며칠 동안 남편의 시신을 껴안고 자신도 따라 죽을 결심을 하여 치마 한 폭을 찢고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관에다 넣고 손가락의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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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강릉. 자는 경열(景說). 강릉군(江陵君) 최유련(崔有漣)의 5대손이고 고조는 좌찬성(左贊成)인 최이(崔迤)이며, 목사 최경지(崔景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사 최계원(崔季元)이고 아버지는 문장령 최홍(崔泓)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江陵金氏)로 현감인 김정(金精)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두루 경사(經史)를 섭렵하였다. 실학(實學)에 뜻을 두고 성명(性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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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강릉 지역에 거주하는 평해황씨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光武帝)의 한학사(漢學士) 황락(黃洛)의 후손들이다. 황락은 사신으로 월국(越國)으로 가는 도중 표류하여 경상북도 평해 월송정 인근에 상륙하였다. 황락은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황갑고(黃甲古)는 평해황씨 시조, 둘째 황을고(黃乙古)는 장수황씨 시조, 황병고(黃丙古)는 창원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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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평마을에 남아 있는 문화유적은,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화가 남아 있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운양초교 아래에서 옛 철길까지의 넓은 들을 향교평(鄕校坪)[생계들]이라고 한다. 옛날 이 논이 강릉향교의 소유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논 부근에 12가구가 살았으나 병자년 포락 이후 모두 이사하여 지금은 그 터가 다 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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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마을에는 1560년경 광천동씨, 평해황씨 등이 세거하여 살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영일정씨, 창녕조씨, 풍양조씨, 강릉김씨, 강릉최씨, 전주이씨, 안동권씨가 동족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지금은 희미해졌지만, 마을 대동회에는 입촌 순서대로 좌석이 마련되기도 하였고 이를 마을의 전통으로 여겼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학산은 1916년 재궁말, 설내말[설천(泄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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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학산(鶴山)·백월거사(白月居士). 아버지는 삼척부사를 지낸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강릉김씨로서 예조판서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으로 허성(許筬)이 있고, 동복형제로 허봉(許篈)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21세인 1589년(선조 22)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15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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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강릉에서 태어난 여성 시인.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강릉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蘭雪軒)이다. 초당 허엽(許曄)의 딸, 허성(許筬)과 허봉(許篈)의 동생이고 허균(許筠)의 누이이다. 강릉 교산 애일당에서 태어나 초당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5세 무렵 김성립(金誠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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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말·고려초 사회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지방세력. 신라말 진골귀족 내부 정쟁으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독자적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귀족이나 6두품 계통, 지방의 토착세력인 촌주, 해상 세력, 지방군사 세력에서 기원하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스스로 장군이나 성주를 자처하였다. 호족은 대토지를 지배하고 있고, 사병(私兵)을 중심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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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치르는 과정의 전통의례. 혼례(婚禮)에 ‘어두울 혼(昏)’자가 들어가듯이 옛날에는 저녁에 치르는 행사였다. 과거 고대사회에서는 아내를 사오던 동옥저의 구매혼인 민며느리제와 신랑이 처가살이를 하는 고구려의 서옥제가 있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동예조(東濊條)에 의하면, 고대사회에서도 같은 성씨끼리는 혼인하지 못했으며 혼로(婚路)가 먼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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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인 홍인국(洪仁國)의 묘비. 홍인국은 남양홍씨 시조 홍은열의 21세손으로 생원이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묘소 인근에 묘제를 위한 전청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홍인국의 아버지는 홍충양이고 어머니는 강릉김씨이다. 부인도 강릉김씨이다. 후손 홍재민(洪在珉) 등이 홍인국의 가계와 행적을 정리하여 세웠다. 건립시기는 병자년 윤3월로 되어 있으나 정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