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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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지방에서 베를 짤 때 부르는 민요. 「베틀가」는 가내 노동요로 여성들이 길쌈 작업을 할 때 부른다. 여성 노동요인 「베틀가」는 「길쌈노래」나 「삼삼기노래」, 「물레노래」와 연관되는 일련의 작업 과정에서 불려지는데, 모두 사설이 풍부하고 여성 생활을 잘 반영하고 있다. 「강릉연곡베틀가」는 시집살이의 애환 뿐 아니라 베를 짜는 과정을 노래로 엮어서 비유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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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김몽상(金夢相), 김몽상의 처 강릉김씨, 김석진(金錫晋), 김석진 처 강릉최씨, 김구(金坵) 등 삼세삼효이열(三世三孝二烈)의 효열 행적을 기록한 정려 기문. 「안동김씨 삼효이녀려기(安東金氏三孝二女閭記)」는 강릉시 교2동 "안동김씨 삼세삼효이열지각(三世三孝二烈之閣)" 안에 있다. 제목은 '효열각 행적기(孝烈閣行蹟記)'이다. 이 효열각 행적기는 18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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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강동면(江東面) 모전리(芽田里) 심씨 댁에서 구득(求得)한 화전가. 본가(本歌)는 심씨가 회산 심씨 댁에서 얻은 것으로 심씨가 회산(淮山)에서 시집올 때 베껴 온 것이라 한다. 심씨[1854년 10월 10일생]는 삼척심씨(三陟沈氏) 심문한(沈文漢)과 최씨(崔氏) 사이에서 태어난 분으로 한시와 제문에 능하다. 회산은 본래 글곳으로 유명하며 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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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향현사(江陵鄕賢祠)에 배향하고 있는 12향현의 언행과 업적을 수록한 책자. 향현사가 창건된 지 288년 되는 해인 1931년 가을에 편찬한 12향현 언행록이다. 책자에는 도면으로 화부산도와 사우도가 들어 있다. 강릉향현사는 1645년 강릉부사 강백년 등이 창건하고 조운 최치운, 수헌 최응현, 삼가 박수량, 사휴 박공달, 원정 최수성, 도경 최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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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12향현, 조선시대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충·효·예의 성리학적 이념을 실천했던 강릉의 대표적인 열두 명의 학자를 일컫는다. 이들은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강릉을 빛낸 열두 명의 선비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100분의 선조들을 생각한다. 그 인물들이 노래에 나오는 대로의 훌륭한 생애를 살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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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 본관을 둔 성씨. 『경주최씨상계세보』에 의하면 강릉최씨 시조 최필달은 경주최씨 시조 최치원(崔致遠)의 후예로 전해지나 정확히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필달은 고려 초기에 경주최씨에서 분적(分籍)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최필달은 고려 초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삼한벽상개국찬화공신(三重大匡三韓壁上開國贊化功臣)이 되었으며, 영첨의좌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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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강릉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 1260년(원종 1)에 설치되어 1263년에 강릉도(江陵道)로 개칭되었다. 고려 고종 때 당시 무인집정자 최의(崔竩)를 죽임으로써 최씨 정권을 무너뜨린 공을 세운 낭장(郞將) 김홍취(金洪就)의 공을 포상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강릉의 읍호를 승격시켰다. 1258년(고종 45) 김홍취는 유경(柳璥)·김준(金俊)·박송비(朴松庇)·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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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친족, 혈연, 지연, 학연, 촌락, 동문수학, 나이(동갑) 등을 매개로 결성되는 결사체. -‘계(契)’를 아십니까 - 강릉 지역의 전통적인 계문화 계라고 하면 ‘아줌마들’이 식당에서 벌이는 회식 자리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계모임, 계가 깨졌다, 패가망신… 이런 말부터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목돈을 모으는 위험하고 원시적인 방식이 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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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22세 때 남편이 병이 나자,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해 남편을 낫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남편의 병이 위독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그 피를 입에 넣어 주었으나, 남편은 끝내 죽고 말았다.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최씨는 시부모께 영결을 고하고 조용히 남편을 따라 죽었다. 권진수(權震洙)의 처 최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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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있던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만든 조선 시대의 창고. 조선 시대 강릉 관아에는 척번대(滌煩臺)가 있었는데, 객사 동북쪽에 있었으며, 얼음을 저장하는 창고였다. 이른바 이 척번대는 내빙고(內氷庫) 기능을 갖고 있었다면, 금산리 얼음 창고는 외빙고(外氷庫) 기능을 갖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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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죽만 먹었으며, 상을 마친 뒤에도 의복과 음식을 화려하게 하지 않았다. 아들 김석진(金錫晉)도 부친의 병에 배설물을 맛보아 가며 간호하였고, 어머니의 병에도 마찬가지로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각기 3년씩 죽을 먹으며 시묘살이를 하였다. 김석진의 후처인 최씨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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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평소 효성을 다해 시부모를 섬겼다. 하루는 시어머니와 함께 자다가 시어머니가 변소에 간다기에 부축하여 문을 나섰는데, 그때 갑자기 호랑이가 시어머니를 잡아가려 하였다. 최씨는 한 손으로 시어머니를 껴안고 다른 한 손으로 호랑이를 내리쳤다. 호랑이는 몇 발자국을 끌고 가다 버리고 달아났다. 최씨는 시어머니를 업고 돌아와 정성껏 치료하였으나 이튿날 아침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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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 김습(金習)이 죽자 3년 동안 죽만 먹었고, 머리 빗질과 세수도 하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3년상을 무사히 끝내고 제사를 마친 최씨는 다음날 앓지도 않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김습 처 최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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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남편 김시린(金始麟)이 애통한 나머지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남편의 입에 흘려 넣어 사흘을 더 살게 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했다. 집안사람들이 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상을 마친 뒤 남편을 따라서 세상을 떠났다. 김시린 처 최씨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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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어려서부터 가정의 엄한 가르침을 받고 자랐으며, 시집을 가서는 남편 김시중(金始重)과 시부모를 정성껏 모셨다. 남편인 김시중이 기랑(騎郞)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오는 중 양근현(楊根縣)에서 갑자기 병이 나 위독하게 되었다. 마침 김시중의 종이 밤새 달려와 병세를 알리자 팔순인 부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시어머니를 위로한 후,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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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이 중병에 걸리자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간호하였고, 남편의 변을 맛보며 병을 관찰하였다. 남편이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호숫가로 달려갔는데, 그때 마침 커다란 잉어가 뛰어올라 물 밖으로 나왔다. 그 잉어를 잡아 남편에게 먹였지만, 남편의 병이 더 위급해졌다. 그러자 손가락을 잘라 수혈(輸血)하였다. 김원의 처 최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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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나이 24세 때 남편 김작(金焯)이 중병에 걸리자 온갖 정성을 다해 치료하였지만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생각한 바가 있어 슬픔을 참고 예를 다해 장례를 치렀다. 그러다 남편이 죽은 지 석 달이 지나 졸곡(卒哭)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작 처 최씨에 대한 효열 기사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인물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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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내곡동에 있는 마을. 예전에 이 지역에 벼농사를 천석 씩 거두는 강릉 최씨 집안 7가구가 살았는데 가을이 되면 소작인들이 지어놓은 곡식을 도지로 받아갔다. 그런데 도지를 받으면서 소작인들이 먹을 양식까지 모두 걷어갔다고 하는데, 소작인들이 인색한 최씨 형제들에게 가져간 곡식을 ‘다 도로 내 놓아라’라고 항변한 말이 변해서 ‘뇌눌’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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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梵日)은 사굴산문(闍堀山門)의 본산인 굴산사(屈山寺)를 창건한 신라시대 선승(禪僧), 굴산사지(屈山寺址)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었던 굴산사(崛山寺)의 옛 절터.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는 굴산사지가 있다. 창건연대와 연혁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으나, 범일이 입당구법(入唐求法)한 후 귀국하여 851년(문성왕 13) 명주도독 김공(金公)의 청을 받아 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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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열녀. 시아버지가 병에 걸려 노루고기를 먹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라 구할 길이 없었다. 이에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기원하자 어디선가 노루가 나타나 마구간으로 들어왔다. 얼른 노루를 잡아 시아버지에게 먹였다. 얼마 후 시아버지의 병이 다시 위독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끊어 그 피를 입에 흘려 넣어 시아버지가 3일을 더 살게 하였다. 최씨는 시집간 지 3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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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나 선현의 신주(神主)나 영정을 모셔두고 배향하는 곳. 사우(祠宇)는 선현 봉사와 후학 양성을 목적으로 건립된 서원과 문중의 중요 인물의 제향처로 활용되었던 재실의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강릉 지역에서는 서원은 2개이고, 사우는 12개, 당은 4개, 재사는 56개이고, 기타로 문정공부조묘와 종선각이 있다. 위의 현황에서 향중사림이나 부민 발의로 건립된 오봉서원,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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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최씨 종중 입지계에서 선조 추모와 문중 회합의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세운 정자. 강릉시 장현동 장현저수지 근처의 송현(松峴)에 있다. 강릉최씨 판서공(判書公) 입지계의 최사광(崔斯廣)과 춘헌공(春軒公) 최수(崔洙)의 묘소 인근이다. 1946년 후손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누정이 있는 장현동은 동원군(東原君) 최씨 세거지이다. 이곳 세거지에 장현저수지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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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류서화가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 초서로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 6수의 8폭 병풍. 「신사임당 초서 병풍」은 신사임당이 쓴 당시(唐詩) 오언절구(五言絶句) 6수의 초서를 뒤에 병풍으로 꾸민 것으로 강원도 강릉시 두산동의 최돈길(崔燉吉) 고가(古家)에서 지속적으로 전해내려 왔으며, 1971년에 강릉시가 넘겨받아 현재 율곡기념관[현 강릉시오죽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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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박월동에 있는 심주한(沈周瀚)의 처 강릉 최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선조의 효행을 본받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심붕황(沈鵬潢)·심걸황(沈杰潢)·심태황(沈泰潢)이 주축이 되어 건립하였다. 받침돌에 높이 100㎝, 너비 36.5㎝, 두께 6.5㎝ 크기의 몸돌을 세웠으며 비신은 청석(靑石)이다. 전면 비제는 “열녀 통정대부 심주한 처 강릉최씨지려(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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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유서 깊은 마을 위촌리에 여러 가지 민담과 전설이 없을 리가 없다. 민담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추리 호랑이”다. 옛날에 아전이 한 사람 있었는데, 글을 잘했다. 고을 원님이 그 사실을 알고 “저녁 때 글을 좀 짓다가 가라.”고 지시했다. 아전이 저녁에 남아 글을 짓다가, 한 부분을 완성하고 보니 글의 기상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밤이 늦어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나섰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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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대전동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문신 이수혼의 묘지명. 이수혼(李守渾)[1502~1577]은 본관은 안성이고, 증조할아버지는 만호 이계량, 할아버지는 훈련참군 이득원,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이덕진이다. 강릉부 선무랑 종성 교수(宣務郞鍾城敎授)를 지냈다. 부인 최씨와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이수혼 묘지(李守渾墓誌)는 1980년대 후반 강원도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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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 신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는 아버지 생원 이사온(李思溫)과 어머니 최씨(崔氏) 사이에 태어난 무남독녀(無男獨女)로 남편 신명화(申命和) 보다는 네 살 아래이다. 생전에 다섯 명의 딸들에게 재산을 분배하기 위해 분급문기(分給文記)를 작성하였다. 분배내용이 먼저 나오고 재주(財主)인 용인이씨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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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대보름부터 3~4일간 행해지는 농악대의 민속놀이. 음력 정초에 지신을 진압함으로써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의 안강과 풍작 및 가정의 다복을 축원하는 신앙적 의례가 포함되어 있다. ‘지신(地神)을 밟아준다’는 뜻으로 땅의 신이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지역에 따라 ‘마당밟기’, ‘매구놀이’, ‘마당굿’이라고도 하는데 놀이절차나 복색 등은 약간의 차이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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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시에 있는 행정동. 조선 시대 광해군 때에 초당 허엽은 당파 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을 때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좋은 현 안초당 연화지 자리인 강원도 강릉시 난설헌로193번길 1-16[초당동 475-3] 지역에 기거하였다. 여기서 조선 시대의 유명한 여류 시인 허난설헌과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허균이 태어났다. 마을이 번성하자 허엽 선생의 호를 붙여 초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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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이라는 이름은 조선 광해군 때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의 부친 초당(草堂) 허엽(許曄)[1517~1580] 선생이 이곳에 살면서 붙인 것이라고 한다. 한편, 이곳에 사는 최씨들은 최씨들의 초당이라고도 하며, 조선 선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유동석이 초당을 짓고 후진들을 가르쳤다는 연유에서 초당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초당에 있는 여러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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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동은 상고시대에는 예(濊)의 속국으로 있었으며 기원전 127년에 창해군으로 편입되었고 한무제 때에는 임둔(臨屯)의 땅이었다. B.C. 30년에 동예의 땅으로 계승되어 고구려 시대에는 하슬라로, 신라시대에는 하서소경의 땅으로 고구려 때에는 동원경의 속현으로 이어져 조선시대에는 진관부에 속해 있었다. 1913년 군내면, 1916년 강릉면, 1931년 강릉읍에 속했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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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주민이 거주하는 일정 규모의 집단. 인간이 생활하기 위하여 지표공간을 점거해서 거주하는 집단을 취락(聚落)이라고 한다. 취락의 규모가 큰 것을 도시(urban settlement)라 하고, 작은 것을 촌락(rural settlement)이라고 한다. 도시와 촌락을 나누는 인구의 기준도 국가마다 다르다. 국제적 기준은 2,000명이다. 한국은 이 수치의 10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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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과 효자·효부 그리고 열부·열녀의 총칭. 1. 충신 강릉에는 많은 충신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강릉 출신으로 나라와 향리를 위하여 헌신한 열두 명을 강릉향현사에 모셔놓고 그 뜻을 기리고 공로를 추모하고 있다.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을 비롯하여 눌재(訥齋) 이성무(李成茂), 수헌(睡軒) 최응현(崔應賢), 춘헌(春軒) 최수(崔洙), 괴당(槐堂) 김윤신(金潤身), 사휴당(四休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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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재지 씨족집단의 성씨에 대한 총칭. 강릉은 토성들의 재지적 기반이 강했던 지역이다. 토성은 대체로 고려시대의 향리출신으로서 여말선초에는 신흥사대부를 성장시켰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조선 초기 강릉 지방 성씨에 대해 “토성이 여섯이니 김(金)·최(崔)·박(朴)·곽(郭)·함(咸)·왕(王)이요, 사성(賜姓)이 하나이니 옥(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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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대표명절인 음력 8월 15일. 한가위는 한민족 고유의 보름명절로서 설, 한식, 단오, 동지와 함께 민속명절로 이어지고 있다. 정월대보름과 함께 팔월한가위는 우리 민족의 2대 명절이며 보름주기의 세시명절로 민족상징의 달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전승된다. 강릉 지역은 옛날부터 5개의 달이 뜬다고 전하는 경포대와 달이 정면으로 뜬다는 이름의 월대산[월정산] 달맞이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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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인 정곤(鄭鵾)의 처 강릉최씨의 정려. 최씨의 행동은 집안의 명예인 동시에 고을의 자랑이었으므로 후손들에게 훌륭한 조상을 기리고 또한 그 효성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강릉시 옥계면 현내2리 869번지 성재(城村)에 있다. 정렬각(旌烈閣)이라 이름 지어진 비각 안에 받침돌 위에 높이 110㎝, 두께 14㎝, 너비 35㎝의 몸돌을 세웠다. 전면비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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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곤(鄭鵾)의 처 강릉최씨(江陵崔氏)의 열녀각(烈女閣). 집에 큰불이 났을 때 시어머니는 미처 집에서 피해 나오지 못했다. 이때 최씨는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시어머니를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부인은 시어머니를 껴안은 채 함께 죽었으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시신은 알아볼 수 없게 타버려 손에 낀 가락지로 식별하였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열...